빛나는 솔로가 그립다
빛나는 솔로가 그립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8.2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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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옥/작가ㆍ약사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부제를 가진 TV 프로그램이 있다. 어느 날인가는 공개오디션으로 뽑은 객원 멤버를 더해 합창단을 조직하더니 꽤 이름 있는 합창대회에 정말로 참가했다.
합창단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였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는 눈도 있었고 한국판 ‘엘 시스테마’를 꿈꾸게 한다고 극찬하는 축도 있었으며 지도력 부재의 정치계가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든 그들이 부른 ‘넬라 판타시아’는 각종 포털 검색 순위에 올랐고, 라디오를 틀면 여러 버전의 ‘넬라 판타시아’ 일색이었던 기억이 난다. 덧붙여 솔로이스트로 누가 뽑힐 것인가도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였다. 결국 여성 후보 두 명으로 압축되었고, 제작진은 두 명 모두를 선택했다. 대회에서 그녀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무대를 장악했다. 합창의 백미였다.
교내 합창대회가 열렸던 내 여고 시절로 돌아가 본다. 치열한 고입 시험을 통과해 들어간,  오로지 대학 진학만이 목표인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서울내기 음악 선생님의 대단한 열의로 합창대회가 열릴 수 있었다. 물론 고3을 뺀 1, 2학년에게만 기회가 주어졌지만.
1학년 때 우리 반은 가곡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선택했다. 민요를 편곡한 이 노래는 참가한 열 반 모두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곡이었다. 음악선생님은 10반이 10등 하게 생겼다고, 무대에 오를 수나 있을지 걱정이라고 혀를 차셨다.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선곡에 시간을 많이 뺏겨 마음이 급했다. 연습은 지지부진했고 시간은 자꾸 흘렀다. 우리 스스로 미리 좌절하고 열패감에 사로잡혀 어렵게 선택한 곡을 다시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그때 우리를 구한 건 솔로 최미정이었다.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는 우리를 충분히 감동시켰고 “그래 우리, 미정이 솔로 나오는 데까지라도 한번 가보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솔로를 듣기 위해 우리는 노력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미정이가 솔로를 부를 수 있게. 연습에 가속이 붙었고 자신감이 생겼다.
“청포 자~앙수 울고 가~아안다”
미정이의 솔로는 이게 다였지만 우리를 이끄는 힘은 대단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미정이의 솔로 부분에서 만개했다. 마침내 공연 하루 전날 겨우 처음으로 곡을 끝까지 불러볼 수 있었던 우리는 대회를 망칠까 걱정이라는 음악선생님의 우려를 노파심으로 돌려놓으며 1등상을 거머쥐는 이변을 낳았다.
합창을 빛나게 하는 건 물론 조화다. 인간적 연대를 통한 조화에 그 미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성 있고 모가 난 단원 하나 하나가 합심하여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 지휘자와 반주자는 이에 조력한다. 하지만 마지막 방점을 찍는 것은 빛나는 솔로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곡에 임팩트를 주고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하여 관객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간다.
그런 솔로가 그립다. 소프트웨어와 콘텐트 쪽의 열세로 IT강국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있는 요즘의 한국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 앤디 루빈과 세르게이 브린. 지금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인물들이다. 합창에서의 조화와 화합과 끈기의 잣대로만 본다면 이들은 인재가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에 입사원서를 냈다면 모두 탈락했을 것이다. 형편없는 스펙에 서류 전형에서부터 제외되고 ‘무명’ 대학 출신이라 배제되고 멀쩡하게 다니던 명문대를 그만둔 모난 돌이라 정 맞고. 부존자원이 없는 좁은 땅에서 온 국민을 먹여 살리는 건 몇 %의 인재일 것이다. 숨은 보석임을 알아차리고 거둘 수 있는 안목이 절실하다. 빛나는 솔로의 가치에 대한 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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