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고(思以古)
사이고(思以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8.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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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조/Premiere 발레단 단장
일화 1.
이제는 어제의 시간이다. 어제(2011년 8월 21일 일요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두 시간 동안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길거리 공연을 가졌다. 부산 수영구청에서 실시하는 광안리 해변 차 없는 거리 행사의 일환으로 하게 된 공연이었다. 얼마 전부터 밴드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과 관련된 많은 일들을 이리저리 하고 있지만 원래가 밴드에서 기타를 쳤던지라, 찾아온 기회를 그냥 놓쳐버릴 수는 없었다. 미련과 그리움, 기대와 신바람이라는 여러 이름을 가진 한 친구가 나를 잡아끄는 그 힘이 어찌나 세던지… 결국에는 항복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 밴드의 이름이 지금 적어 내려가고 있는 글의 제목인 ‘사이고(思以古)’다.
공연을 위해 곡을 준비했다. 기존 밴드 멤버들의 자작곡들을 포함해서 대략 15곡 정도를 준비했는데, 그 중에는 몇몇 블루스곡도 있었다. 내가 사랑하고, 또 그래서 나름 자신 있어 하기도 하는 블루스… 공연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고, 드디어 내 차례. 블루스의 시간이 왔다. 광안리 해변을 거니는 많은 분들이 이 블루스라는 음악을 ‘사이고’라는 밴드와 함께 만끽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와 연주를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함께 즐기던 분들 중 반 이상이 자리를 떠 버리는, 나로서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의 몇 안되는 곡들이 신나는 것들이어서 블루스가 연주되던 이전의 상황으로 간신이 되돌려 놓기는 했지만, 그것은 밴드 구성원 모두가 다시 흥과 신명을 그 공간에 불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 정두순씨가 물었다. 블루스가 연주되던 그 시간동안 많은 분들이 공연장에서 발걸음을 옮긴 일로 속이 상하느냐고. 그녀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그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이제는 옛 것이, 지금의 바탕을 이룬 그 모든 것들이 잊혀져가는 때인 것 같아 그것이 속이 상하다고 했다. 하기야 내가 밴드를 했었던 20년 전에도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거의 모든 대중음악의 뿌리가 블루스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진대…
일화 2.
며칠 전 두순씨와 함께 한 편의 영화를 봤다. 오드리 햅번의 연기변신으로 당시에 주목을 받았던 ‘어두워질 때 까지(Wait Until Dark)’라는 1967년의 영화였다.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현재 상영 중인 ‘블라인드’ 라는 영화의 원형(原形)이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보게 된 영화였다. 기대 이상이었다. 한 마디로 아주 훌륭했다. 한 가정집이라는 아주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힘의 관계들의 변화. 보는 이들이 그 변화를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각기 다른 신체 감각에 엄습해 오는 자극들. 다양한 텍스트들은 시각적 영역에서 촉각적, 청각적 영역으로 점점 확장해 가고… 이와 더불어 진행되는 힘의 관계들의 전도(顚倒). 영화 속의 영화와 같은 가상 구조의 중첩 등. 무엇하나 나무랄 곳이 없는 영화였다. 제각각 다른 신체의 감각들이 생성해 내는 다양한 텍스트들이 그 몸이 놓인 정황들과 맞물리고, 또 그 몸이 만들어 가는 관계들과 부딪치며 불러일으키는 우발성은 정말이지 탁월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지금으로부터 40년도 더 지난 때에 만들어진 영화라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고전(古典)에는 고전만의 힘이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 영화 한 편이었다. 고전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 계기를 가져다 준 영화 한 편이기도 했다.
대중음악의 고전인 블루스, 그리고 고전 영화 한 편. 이들과 더불어 지금의 내가 만들어 내는 의미는 이러하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들에만 박수를 보낸다.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역사가 항상 새로운 것만으로, ‘오늘-여기’라는 시공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진대… 안타깝다.
옛것과 더불어, 옛것으로써 오늘을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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