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24시간
하루는 24시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8.2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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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순/부산 경성대 외래교수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는 소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신기하고 부럽기만 합니다.
“얼마나 좋을까. 난 하루가 48시간 이었으면 좋겠어. 차려진 식탁의 밥과 국, 반찬은 사용하기가 쉽지도 않은 두 가지의 도구, 즉 숟가락과 젓가락씩이나 사용해가며 골고루 잘도 먹으면서, 왜 다른 것들은 동시에 하지 못하는 걸까. TV보며 책도 보고 동시에 음악까지 들을 수 있다면… 게다가 너와 대화까지 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이지, 최고일 텐데… 그런데 난 그것이 잘되지 않아. TV를 볼 때면 TV만 봐야하고, 책을 볼 때면 책만 봐야하고, 음악을 들을 때면 음악만 들어야하고, 너와 대화를 할 때면 대화만 해야 하니… 이만큼 하기에도 나의 하루는 너무 짧아. 게다가 이것 말고도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학교가야지, 숙제해야지, 아르바이트해야지, 나무에 물도 주고 집의 먼지도 닦아내야지, 오, 분리수거… 그리고 놀기. 나는 도대체 언제나 되어야 쉬고 놀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할 수는 있을까.
더 심각한 것은 내가 이 현재-현대라는 시공간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현재-현대의 필수 조건인 이런저런 자격증이란 걸 따야한다고 강요하는 주위 사람들의 등살에 시달리게 될 때, 내가 나의 하루를 통해 갖게 되는 ‘24시간’은 너무 초췌한 모습으로 나의 늘어진 어깨위에 올라가 있어. 이 모든 걸 하나하나 하려면 나의 하루는 48시간 아니 72시간은 되어야할 것 같아. 왜 우리 엄마는 날 멀티탭처럼 낳지도 기르지도 못했을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신기하고 부러운 사람들은 나 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 현재-현대의 필수 조건인 자격증들까지 잔뜩 가진 사람들이야. 더욱이 그들의 이름 아래 달려있는 프로필이란걸 볼 땐 정말이지 놀라워.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다 하고 살 수 있는 건지, 24시간이라는 하루의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은 것인데…
얼마 전에 말이야, 뭔가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이라는 것에 도전해 그것을 따야만 한다는 강압 아닌 강압이 나를 괴롭힌 적이 있었어. 꾀나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지.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따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하고, 배움에 게으르지 않고 겸손함을 잃지 않을, 그리고 최선을 다할 마음의 준비,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는 체질 탓에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할 텐데 그로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정말이지 한 달은 고민한 것 같아. 나의 24시간 안에 고민이란 시간 까지 더해졌으니 내가 얼마나 더 바빠졌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아무튼 그 자격증을 따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는 하던 일을 모두 다 멈춘 채 주어진 기간 동안은 자격증 따기에만 혼신의 힘을 다했어. 그런데 말이야, 그 곳에서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됐어.
사람들의 관심은 배우는 것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격증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것, 그 자격증이 있으면 어디어디에 원서를 내서 어떤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다는 다는 것, 그리고 프로필이 한 줄 더 는다는 솔직히 부인하기는 힘든 사실… 내겐 배운 것조차도 기억하기에 부족한 시간인데 사람들은 동시에 저런 생각까지 할 수 있구나.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을 잘 쓰고 있구나 하고 느꼈어.
“넌 놀랍지 않니” 이 말을 들은 소년은 한참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한 가지만 잘하는 사람, 그래서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을 프로라고 하잖아. 그런데 그 프로라는 것이 조금은 오래된 사회적 인간상이라는 것에 약간의 문제는 있는 것 같기도 해. 하지만, 자격증 문제는 네 생각이 옳다고 믿어. 자격증이라는 것도 프로라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가르치는 일인 이상, 가르치는 사람은 뭔가를 먼저 배운 사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라기 보다는 먼저 배운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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