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정체성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정체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8.2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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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수필가ㆍ통영 효음종합학원장
우리 역사교육은 많은 국민에게 혼선을 불러일으키는 걱정거리의 하나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번에 확정한 2011년 역사교육과정을 놓고 자유민주주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2011년 역사교육과정은 앞으로 한국사 교과서를 제작할 때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집필 방향과 기준을 말한다. 교과부는 최종안을 발표하면서 시안(試案)에 들어 있던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 고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학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로 다시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며 반발했다.
자유민주주의와 그 용어의 기원은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군주제였고 정치권력은 국왕이나 귀족들에 의해 행사되던 시기였기에 당시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심각하게 고려되지는 않았다. 더욱이 인간은 본래적으로 폭력적이고 악하기 때문에 인간의 파괴적인 충동을 억제할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므로 민주주의는 인간의 본성과 배치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에 대해 도전을 감행한 세력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계몽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세상의 일은 인간의 이성, 자유와 평등의 원리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정치적 권력이 귀족의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서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법의 지배라는 생각 아래 법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에 대해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세기 말에 접어들어 이러한 사상은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영감을 주었고 두 역사적 사건은 자유주의 이념의 확산을 낳았고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세운 원리들을 실천으로 옮겨 새로운 정부 형태를 만들었다. 이는 훗날 자유민주주의의 원형이 되었다.
이번 논쟁은 결국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우리 사회에는 ‘민주’라는 말을 같이 내세우면서도 각기 다른 개념으로 바라보는 일이 두드러진다. 친북좌파 진영은 민주국가를 노동자 빈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으로 인식하는 민중 민주주의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가운데 역사 교육과정 초안(草案)을 제출했던 위원 24명 중 21명이 자신들이 개발한 초안을 교육과학부가 변경한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정부가 고시한 교육과정에 집단으로 반기를 드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전개되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나 지금의 한국사 교과서는 대부분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북한을 두둔하는 입장에서 서술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런 문제를 시정하고자 교육과정을 금년에 다시 개정하면서, 교과부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역사 교육과정 초안 개발을 위임했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한 연구위원들은 자유민주주의는 시장 자유와 정부 개입 반대를 뜻하는 편향적인 정치이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를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대한 제어를 말한다. 민주주의가 최소한의 기준에서 자유 공정 선거를 통해 공직자를 선출하고 시민 참여를 포용하는 것을 뜻한다면,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심화하면서 보다 높은 단계의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강한 통제, 강력한 법치주의, 정부의 높은 투명성, 개인 권리의 폭넓고 두터운 보호 등이 그 내용이다. 따라서 교과부가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더욱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학교나 사회에서 민주주의 개념이 혼동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민주주의에는 자유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민중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 등 여러 갈래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혼용하여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역사적 전개 과정을 통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것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올바른 민주주의의 참 뜻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학생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이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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