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하는 우리 문화재의 두 얼굴-上
타향살이하는 우리 문화재의 두 얼굴-上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3.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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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교/진주문화원 연구실장·문화재청 무형유산지기
 

지난 13일 대지를 사르르 적시는 봄비가 내렸다. 이날 저는 계획한 대로 지인과 함께 진주지역 동부에 소재한 문화재를 탐사하여 그 자료를 교육용 매체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충의사 '북관대첩비'를 탐사했다. 함경북도 북평사 직을 맡고 있던 충의공 정문부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아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을 무찌른 전투를 소상히 기록한 전승비가 눈에 들어왔다. 300여년 전에 북평사 최창대가 함경북도 김책시 임면동에 세웠던 것이다.

그 후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으로 가져갔고 반환 때까지 야스쿠니 신사에서 보관되었다고 한다. 그 후 70여년 후 북관대첩비를 발견하여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에 반환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그리고 2005년 민간단체인 한일불교협의회가 최종적으로 북한에 반환하기로 합의했으나, 그해 한국으로 반환되어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개관식 때 공개되기도 했다. 그 이듬해 개성에서 인도하였으며 원래 자리에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타향살이 문화재를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곧 이어 북관대첩비의 복제비가 처음으로 건립되어 경복궁에 전시되었고, 2차로 독립기념관에, 3차로 농포 정문부 장군 묘소 앞에 건립됐다. 4차로 2013년 공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인 진주 충의사에 세워졌으며, 또다시 12월 해주정씨 종중에서 국역비로서는 처음으로 북관대첩비를 건립하게 되어 그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타행살이하는 문화재가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 된다.

타향살이 문화재를 소위 국외소재 문화재로 지칭하며, 이는 국외로 반출되어 현재 대한민국의 영토 밖에 소재하는 문화재를 일컬어지기도 한다. 현재 추산된 국외소재 문화재는 일본, 미국을 비롯하여 총 20개국 약 15만여점에 이르고 현재까지 확인된 문화재는 8개국 3만4000여점이라고 한다.

우리 문화재가 나라 밖에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필자는 타향살이하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약탈 문화재로 규정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국외소재 한국 문화재들은 여러 유형이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먼저 약탈 및 도난 등 불법부당하게 반출된 문화재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인양요, 신미양요, 러일전쟁,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침략과 전쟁의 역사를 거치면서 불법적으로 약탈된 문화재들이다. 이들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화재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환수를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외국인이 선물 받거나 수집해간 문화재를 들 수 있다. 우리 문화재가 외국인에 의해 조직적으로 유출되기 시작된 것은 구한말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문호를 개방하면서부터이다. 이 시기 조선인들은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없는데 반해 일본이나 서구 열강에서 온 외국인들은 고려자기를 포함한 조선의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다. 대한제국이 서구의 관리나 선교사, 군인들이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여 자국으로 가져갔던 것이다.

또 하나는, 외교, 통상, 주문 차원에서 우리가 보낸 것들이다. 조선시대 동래에 공·사무역을 통해 건너간 미술품인 구역품과 사절단이 예물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지고 간 재거품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외유출 경로를 알 수 없는 문화재들이다. 현전하는 국외소재 문화재 중 상당부분은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출처조사를 통해 이 문화재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갔는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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