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발발 422주년 그리고 최초 의병장
임진왜란 발발 422주년 그리고 최초 의병장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4.23 14: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구/함안군 예비군 함안면대장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한지 100년이 되며, 금년 4월은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422주년이 되는 해가 된다. 게다가 금년 4. 28일은 충무공탄신 469주년이 된다. 올해도 예전처럼 이순신장군 관련행사가 곳곳에서 있었거나 있을 것이다.


왜적은 1592년 4월 14일 부진진성을 점령한 기세를 몰아 보름만에 조선의 수도 한양까지 진격했다. 왜군의 침략으로 초기전쟁때 가장 피해를 많이 받은 곳이 경상좌도 였는데, 적의 침략을 쉽게 승낙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의병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조선의 정규군들이 왜적과의 전투에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일방적인 패배를 거듭하던 중 의병출현은 한줄기 희망의 빛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농구경기 때 적의 공격기세를 차단하기 위해 타임을 요구하는 것과 같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사실상 임진년에 발생한 朝日中 국제전쟁)과 관련하여 최초 의병장에 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었던 여러 자료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이런 논란이 나타나고 있다.

왜적의 초기 침략과정을 살펴보면 부산진성(4. 14일 함락)과 동래성(4. 15일 함락)을 함락시키고 이어서 밀양성(4. 19일 함락), 김해성(4. 20일 함락)으로 진격하였는데, 이때 의병장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령의 곽재우 의병장은 4. 22일에 창의(倡義), 즉 의병을 일으켰다.

앞의 주요성(城)들의 함락 날자를 봤을 때, 곽재우의병장의 창의 날자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것은 김해성전투(4. 19~20)에 참여하여 생존한 함안출신 의병중 박진영장군 등 일부가 곽재우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한 사실을 고려했을 때, 곽재우의병은 임진왜란 최초 의병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기록상 의병들이 전투에 최초 투입된 곳은 김해성전투(4. 19~20)이다. 이틀간 전투가 치열 했었는데 임진왜란 초기 이틀 동안이나 적의 공격을 막아낸 곳은 이 전투가 최초이자 처음 이였다. 물론 완패를 당했지만. 조선의 정규군과 의병들이 왜적과 제대로 한판을 겨룬 곳이 김해성 전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전투에서 드러난 의병장은 5명인데, 김해출신 의병장 4인(사충단)과 함안출신 이령(李伶)의병장이다. 특히 이의병장은 동래성(4.15) 함락소식을 듣고 100여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김해로 이동하여 김해성에 투입하여 4. 20일 새벽 전투중에 순직하셨다. 중요한 것은 김해출신 의병장들은 김해부사의 요청에 따라 의병들을 김해성으로 투입했으나, 이령은 함안이 아닌 타지역, 즉 김해성까지 걸어가서 자발적으로 투입했다는 점이다. 투입후 동문(東門) 수문장으로 전투중 애석하게 적의 손에 유명을 달리하셨는데, 후에 둘째 아들이 가져온 피 묻은 적삼으로 장사를 지냈다.

이제 김해성 전투에서 살신성인, 위국헌신한 4명의 김해 의병장과 함안 이령(李伶)의병장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무엇보다 이의병장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로 의병역사를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는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