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이모든 것을 갈라놓았다
바다가 이모든 것을 갈라놓았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4.29 13: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비보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무슨 날벼락이며, 변고란 말인가.


지난 16일 아침, 476명이 탄 세월호 침몰사고를 접한 국민들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구조대원들과 가족들이 즉시 진도의 팽목항으로 달려갔으나 거센 바람, 거친 파도, 빠른 물살 때문에 발만동동 구르며 속수무책으로 애만 태웠다. 망연자실한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비탄의 마음으로 전원 무사귀환만을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구조작업은 계속되고 있고, 실망과 공분 속에, 국제적 망신과 집단우울 증세를 보이고 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희생당한 영령들께 삼가조의를 표하는 바이다.

실종자가족과 구조에 힘써주신 분, 자원봉사자, 모든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와 마음의 위로를 전해드리는 바이다. 고등학생이란, 말만 들어도 용감하게 느껴진다. 뜨거운 피와 힘차게 뛰노는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새가 우는 희망의 계절에 수학여행을 떠나는 그 기쁨, 아! 얼마나 가슴 설레고 아름다웠으랴. 허나, 바다는 동적(動的)이면서도 마성(魔性)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망경창파(萬頃蒼波)에서 탁랑배공(濁浪排空)이라, 험난한 파도가 솟구쳐 하늘에 닿을 듯. 미친 황소가 날뛰는 것같이 집채 같은 무서운 파도가 바다를 뒤집으며 쾅! 하는 굉음소리와 동시에 배는 빠른 속도로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겁에 질린 승객들은 이리저리 부딪치며 구명조끼를 서로에게 건네주며 엄청난 고통과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늘과 바닷물이 맞붙은 것 같은 어둠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부서지고, 깨지고, 흩어지며, 서로가 서로를 붙잡고 위로와 격려를 하며 살기위한 몸부림이 시작되었지만, 천지를 쓸어갈듯, 참았던 분노를 한꺼번에 폭발하듯, 거친 파도 속에 역부족이었다. 살아있는 자 모두는 괴로움과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 따뜻한 미소, 애교스러운 대화들이 아직도 귓전을 맴도는데, 성난 파도 앞에 대한민국은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었고, 국제적 망신까지 당하며 국 격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분하고 억울하고 창피한 일이다. 이게 무슨 운명의 섭리란 말인가. 소리쳐 불러도 대답 없는 공허한 메아리, 견딜 수 없는 이 쓰라림, 이정표조차 없는 길을 떠나보내는 우리들의 마음은 슬프고 괴롭기만 하다. 계절은 봄인데. 대한민국은 꽁꽁 얼어붙은 시리고 서러운 한 겨울이로다. 차가운 바다를 향해 절규하며 창자가 찢겨나간 아픔과 핏발선 눈으로 눈물마저 메말라버려 만신창이가 된 가족들의 통곡을 뒤로하고 우리아이들은 왜? 엄마아빠를 두고 떠나야했을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 이 심정, 얼마나 춥고, 배고프고, 무섭고 답답했을까. 빨리나와 공도차고 뛰어놀며 당찬 태도와 활기찬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일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며, 당당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을 선생님들, 끝까지 제자들을 살려내시고 죽음을 택하신 선생님들, 생각할수록 애석하기 짝이 없다.

제자들을 언제나 한사람의 인간으로 대접해주시며 장점과 단점을 놓치지 않고 충고와 격려로서 인간적인 친근감과 근엄함의 풍류사종 (風流師宗)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기둥이 쑥 빠져나가버린, 부모 잃은 아이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영혼이 고달플 때면 이제 어디 가서 위안을 받아야하는가. 바다가 이모든 것을 갈라놓았다. 유가족들은 당분간 우왕좌왕하는 날들이 계속될 것이다. 그 슬픔의 응어리를 풀어드리는 일은 살아있는 우리들 몫이다. 하루빨리 정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드리자.
떠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고혼들이시어! 부디 극락왕생 하옵소서. 나무아미타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