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
어서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9.0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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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장
이순신 장군께서는 임진왜란의 매우 급한 상황에서 어렵사리 짬을 내어 여수에 계신 어머님을 찾아뵌다. 갑오년(1594) 정월 11일이다. ‘어머님께 가니 아직 주무시고 계시어 일어나지 않으셨다. 웅성대는 바람에 깨셨는데, 기운이 가물가물해 앞이 얼마 남지 않으신 듯, 하니 다만 애달픈 눈물을 흘릴 뿐이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데 착오는 없으셨다’

이제는 기력이 쇠하여져만 가는 늙은 어머님과 그 어머님 보이기에 민망하여 자신의 백발을 뽑는 50세의 아들의 만남이다. 두 분은 밤이 이슥하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으리라. 다음날, 아침상을 물리고 장군은 이승에서는 다시는 못 만나 뵈올 1박 2일 만남의 작별 인사를 올린다. 아침에 어머님께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 하고 두 번 세 번 타이르시며 조금도 이별하는 것으로 탄식하지 아니하셨다. (난중일기)
 8월 29일, 경술국치 101년을 맞이하기 전에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영원히 가슴에 새길 그 어머님과 그 아들의 대화이다.

그로부터 약 270여년 후인 1870년대부터 일본의 조야는 말끝마다 이미 ‘동양 평화’를 들먹인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조류 속에 미국으로부터 개항을 당하였고, 점차 국가적 적자가 누적되었다. 필사적으로 살 길을 찾는 일본에는 조선침략 책략인 정한론(征韓論) 역시 동양 평화가 그 명분이나 사실인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년 침략의 재판이다.

일본에서는 37년간 ‘정한론’이 지도자들에 의하여 범국가적인 시책이 되어 무르익어 조선 병탄이라는 열매를 맺을 때까지 조선의 대신들과 조야는 과연 무슨 정책을 폈는가. 중국 일변도의 모화사상에 따른 쇄국정책과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이 있었고, 매국 대신들의 경쟁적인 ‘일본 빌붙기’와 ‘부정부패’로 결국 나라를 잃고 만다. 대한제국의 대신들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게도 나라를 판 돈을 주지육림과 화투판에서 날리니 부패의 극치이다.

허랑방탕한 생활로 나라를 판 돈과 가산을 탕진한 조선 귀족은 윤택영, 조민희, 민형식 등 33명에 달한다. 그러나 그들은 일말의 가책도 없이 연일 삼삼오오로 모여서 주연(酒宴)과 화투판을 벌인다. 총리대신 이완용도 문객들과 화투를 쳤다. 그것도 시정의 도박꾼들이 아닌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대신들이 매일 하는 짓이었으니 어찌 그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취침 전에 식혜를 드신 후 갑자기 돌아가신다. 고종황제의 시신 상태는 몹시 처참하여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올라 바지를 찢어야만 했고, 이가 빠져 있고 혀가 닳아 있었다. 목과 복부엔 30cm가량의 검은 줄이 길게 나 있었다. (일본 궁내성 관리 구라토미의 일기) 그날 밤, 고종을 호위해야 할 궁성 총책임자는 총리대신 이완용이었다.

우리는 36년간의 필설로 이루 다할 수 없는 일제의 압제를 받고 결국 1945년, 유엔에 의하여 가까스로 나라를 되찾게 된다. 패전국이 된 일본의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는 항복문서에 사인을 한 날 일기를 쓴다.

“일본은 졌다. 그러나 조선이 이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조선인들의 머리에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지 교육을 심어 놓았다. 조선인들은 선조들의 찬란한 업적을 잊고 100년 이상 노예처럼 서로 헐뜯고 증오하며 분열할 것이다. …중략….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 올 것이다”

서기 2011년(단기 4344년), 지금의 대한민국 언론은 ‘부패공화국’이라는 자조서린 표현을 서슴없이 쓰고 있고, 모든 국가 시책은 남북으로, 동서로, 여야로 쪼개지고 갈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복지시책’으로 나라가 갈리니 극심한 ‘비 복지상태’ 가 되어간다. 이제 또 다시 400년 전, 100년 전의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베 노부유키의 망령이 되살아오는 비극의 전야제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 효(孝, 인간사랑), 충(忠, 나라사랑), 도(道, 지구사랑)의 홍익 중심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할 일이다. 바로 한민족의 국학정신인 것이다. 그것만이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 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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