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을 왜곡한 일제
단군조선을 왜곡한 일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5.2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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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곤/밀양동명고 교사·경남국학원 이사

일제는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탄을 강제로 체결 한 뒤 식민의 기본정책을 경제 수탈과 민족동화정책에 두면서 모든 정책의 입안, 집행을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하도록 했다. 일제는 민족동화정책의 최우선으로 한민족의 유구한 상고사를 조작, 왜곡하기 위해 우리의 상고서(上古書)를 수집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취조국의 조선사료 강탈기간 중이던 1916년 1월 중추원 산하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발족하여 1922년 12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로 바뀌었으나 다시 학문적으로 더욱 권위 있는 기구로 만들기 위하여 1925년 6월 일황칙령에 의해 조선사편수회로 명칭을 바꾸고 독립된 관청으로 확대 개편되어 1925년 10월 8일 제1회 위원회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결정한 주요 사항은 역사 자료의 수집 책이었다. 초기에는 강제 수색과 압수를 통해 사료를 수집했으나 수장자들이 비장(秘藏)하여 수집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1937년까지 27년간 전국을 누벼 조선 사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했고, 전국 도·군·경찰서 등 관청에 협력할 것을 강력히 지시하여 서울에서는 종로 일대의 서점을 샅샅이 뒤졌고 지방에서는 서사(서점),향교, 서원, 구가, 양반가, 세도가를 뒤져 다음 해 12월까지 조선총독부 관보를 근거로 판매 금지한 서적과 수서된 서적은 총 51종 20여만 권이 넘었다.

● 일제 강점기 단군신화 조작
특히 일제는 한민족의 정체성 말살을 위해 국조 단군을 없애려고 편찬기구의 개편 때마다 한국사의 상한선을 아래로만 끌어내렸다. 일제가 그들의 역사보다 2000년이나 앞서있는 단군조선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왜곡말살 시키기 위해 ‘일왕칙령’으로 승격시킨 ‘조선사편수회’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마니시(今西龍)는 조선사 편찬의 주역으로 조선사 왜곡 편찬 초기부터 16년 2개월 동안 앞장서 관여해 오면서 단군조선을 신화로 왜곡하고 한국사를 왜곡․말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1921년 ‘단군고’라는 ‘단군신화설’을 만들어 경도제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편 조선사편수회에 부일한 역적들은 이완용, 권중현, 등과 어용학자 이병도, 신석호등이 역할을 하였다.

● 삼국사기, 삼국유사로 상고사 왜곡
단군조선의 왜곡과 말살을 위해 한민족의 기원과 관련되는 사서들을 수집했던 일제는 단지 고려시대 중엽과 말엽의 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1145년)와 삼국유사(三國遺事:1285년) 만 우리의 최초 사서라고 남겨놓고, 그 이전의 사서들은 불태우거나 일본으로 빼돌렸다. 무엇보다 단군조선 과 삼국이전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사대주의 사관의 삼국사기와 단군조선을 불교의 입장에서 각색한 삼국유사 두 사서는 일제가 '단군조선'을 부정하여 단기 4347년 우리 역사 중 2300년 역사를 말살시키는데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주는 좋은 자료가 되어 지금까지 우리는 상고서 하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있는 것으로 알았지만, 반만년의 역사의 증거 자료인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한단고기, 부도지’ 등이 세상에 알려져 단군신화라는 단어가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이봉창, 윤봉길의사의 거사를 성사시킨 백범 김구 선생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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