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과의 “카톡, 카톡”
동문과의 “카톡, 카톡”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6.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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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서양화가·경상대 건축학과 출강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몇 명의 좋은 친구를 사귀었나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품을 간접적으로 가름 해 볼 수가 있다. 갈수록 척박해지고 어지러워지는 현재의 생활 속에서 그나마 위안이 될 수가 있는 것 중 하나가 친구들의 모임 일 것이다. 그 짧은 만남은 친구를 위로 하고 또 위로 받기도 하는 소중한 시간임에 틀림이 없다. 크게 봐서, 이러한 끈끈함이 사회 전반으로 퍼진다면 싸움이나 다툼도 별로 생기지 않을 것이다. 친구는 늘 이해하고 서로 이해 해주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면서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거나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은 동질감과 더불어 삶의 애환도 함께 느낀다. 그래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동문은 엄격히 말한다면 친구는 아니다. 그렇지만 같은 학교에서 오래 같이 생활하고 공부도 하였으니 정이 많이 든 동문들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필자도 대학을 졸업하고 35년 만에 동문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같은 꿈을 가졌던 동문들의 모임이라서 그런지 어색함은 얼마 가지 않았다. 곧 분위기는 화기애애한 쪽으로 흘러가면서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이제는 외국에 사는 친구들과도 서슴없이 카톡을 하거나 안부 전화도 한다.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길거리에서나 집에 와서 카톡을 하는 것을 보면 주위에서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을 당해보지(?) 않고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한때, 시도 때도 없이 카톡을 하는 딸내미를 나무라던 것이 이제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요즘은 내가 동문들 소식에 빠져 눈치를 보면서 키득키득 하면 옆에 있던 아내가 하는 말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요?”라고 애정 어린 눈총을 보낸다. 그렇지만 이 나이에 누가 00야, 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 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이것이 동문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새롭게 찾은 동문들과의 모습에서 잊어졌던 과거와 향수를 살릴 수 있음에 또 한 번 고마움을 느낀다.

미국과의 시차는 대략 8시간에서 11시간 정도가 난다. 여기가 아침이면 거긴 밤이고 여기가 밤이면 새벽이거나 아침이 된다. 그리하여 웃지 못 할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칭구야! 하루 일과 마쳤으니 술이나 한잔 하제이” 라고 하면 그 쪽에서는 “애가 미쳤나?”라고 느낀다. 새벽에 일어나 술 한 잔을 외치니 기가 찰 노릇 인 셈이다. 반대로 미국에 있는 친구가 “잘 잤나? 칭구야~~”라고 하면 여기에서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살아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를 하다보면 하루가 짧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문과의 카톡 때문에 이제는 “카톡, 카톡” 소리에 잠이 들고 “카톡, 카톡” 소리에 잠을 깬다. 옛날에는 이 소리가 듣기 싫어 전원을 꺼 버리고 잘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베터리 충전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한 후에 잠을 청할 수가 있다.

필자의 동문들은 화가가 대부분이거나 예술 관련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예술과 인생, 삶의 대화 속에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00야, 여기 텍사스는 비바람이 장난이 아니야. 00야, 이곳 팜 스프링스에는 날씨가 아주 좋아! 너는 뭐하니? 00야, 이곳 뉴욕에서는 매일 바빠~~! 지금 식사 준비 하면서 카톡 한다.” 이처럼 잔잔한 일상 속에서 동문과의 카톡은 삶의 기쁨이 배가 된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가 현재 동문들과 나의 카톡 진행형이며 정말 웃기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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