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에서 벗어나면 등잔 밑도 환하게 밝아진다.
'집착'에서 벗어나면 등잔 밑도 환하게 밝아진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7.08 1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삶에는 빛과 그림자, 사랑과 미움, 상승과 하강, 강약, 미추, 성공과 실패, 생, 멸등의 상반된 상황이 항상 존재한다. 늘 좋은 가르침을 많이 듣고, 정신을 풍요롭게 하면 상반된 이중성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찌개하나를 끓일 때도 최고의 재료를 가지고도 맹물에 조약돌 삶은 것처럼, 견설고골(犬齧枯骨)하듯, 형편없이 맛없는 찌개를 끓여낼 수도 있고, 최하의 재료로도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로, 맑고, 단백하고, 맛있는 찌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양념이나 냄비의 문제가아니라, 끓이는 사람정성에 문제가 있다. 좋은 맛을 내고자 고심하며 정성을 다한 사람과, 대충 물 붓고 되는대로 끓여버린 정성의 차이가 맛으로 나타난 것이다. 자기가 끓인 찌개지만 전자는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기분 나쁠 것이며, 후자는 흐뭇하고, 기분도 좋을 것이다. 대충해버린 습관을 고쳐서 자신의 품격을 높여나가자.

언행, 성격, 사고방식을 자기가하는 일과 지위에 걸맞게 정성껏 해내는 태도가 중요하다.

배가 고파도 껄떡대지 않는 마음의 여유와 비난과 오명, 약간의 손해도 묵묵히 감수하며 직설적인 언어도 삼가 하자. 익살스럽지만 품위 있는 언행, 정의에 맞는 유머를 사용하자.

고리타분한 고정관념과 습관도 내다버리자. 나를 내려놓고 탐욕을 끊어야만 고통을 벗어나 행복의 지름길로 들어설 수 있다. 불교는 승가(僧伽)를 사부대중으로 구성하여 함께 먹고 자고, 수행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절속(絶俗)이나 은둔(隱遁)이 아니다. 이상적인 수행공동체건설과 경제적 자립을 위한 노동을 필수로 병행하고 있다.

“중은 논두렁 베고 잠들다 죽어야 한다”며, 직무분담과 대중화합을 최우선으로 한다.

화합이 깨지면 승가도 깨지기 때문에 화합과 협력, 소통하는 슬기를 우선시한다.

쇠붙이도 용광로의 불속에서서로 섞어 융합하기에 멋진 재품을 생산해낼 수가 있다.

서로화합하며 바르게 살아가자.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나면 등잔 밑도 환하게 밝아지는 순간이 온다. 교만(驕慢)한 사람은 목이 뻣뻣해지고, 잘난 체 뽐내며, 건방지게 날뛴다.

그로부터 모든 고통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자.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게 살아가면 다툴 일이나 원망할일도 없어진다. 하심(下心)하는 법을 익혀야 진실한 생활의 보람을 느끼게 되며, 복된 길이 열린다. 항상 사리사욕과 사적인 감정, 개인의 사정을 떠나보자.

이런 것에 얽매일수록 사리판단이 흐려지고 정의가 무너진다. 몸과 마음을 늘 갈고 닦자. 거울을 방치하면 때가 끼고, 연장도 방치하면 녹슬고 쉬 망가져 쓸모없게 된다.

자신을 방치하면 삶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무사안일의 추한 인간으로 전락해버린다.

수시로 마음의 때를 씻어내자. 이해타산의 노예가 되면 감각이 마비되어 잡념의 세계로 빠져든다. 학자는 지식이 많고, 현인은 지혜가 많은 것이다. 지식은 어떤 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만, 지혜는 어떤 것을 종합적 조화를 이루도록 올바른 사리판단을 하는 것이다.

이익에 치우치거나 잔재주가 포함되지 않은 깊은 슬기와 올바른 통찰력을 발휘하는 것이 지혜이다. 세상에는 학자는 많지만 현인은 드물다. 머릿속에 지식은 꽉차있어도 지혜가 빈곤하면 비극에 이르기 쉽다. 대한망운예(大旱望雲霓)하다, 총리, 장관후보에서 낙마하는 사람들을 반면교사로 삼자. 탐욕을 걸러낸 정갈한 정신으로 늘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자.

마음이 어두우면 눈뜬장님이 되어 해서는 안 될 언행으로 자기와 남을 해치게 된다.

삶의 득이 되는 방향은, 지혜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내 마음속에 들어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