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김용우의 Dancing With My life
(3) 김용우의 Dancing With My life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9.1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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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비상을 위해 움크리다

2년마다 열리는 세계선수권 가장 큰 대회

우리나라는 2004년 일본대회 첫 출전
결승진출 좌절 더 큰 꿈과 희망을 만드는 계기

 

휠체어댄스스포츠는 아직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없기 때문에 2년마다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는 전세계선수가 참가하는 가장 큰 대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년 마다 열리는 유럽선수권이나 러시아선수권이 있고 네덜란드에서 매년열리는 휠체어댄스스포츠 월드컵이 열리지만 IPC에서 공식인정한 세계선수권대회는 가장 많은 선수가 참가하고 선수들 간의 열기도 뜨거운 휠체어댄스의 최고의 경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30여개 국가에서 라틴댄스와 스텐다드 댄스로 나누어서 8개 부문에 각 나라의 우승자들이 나오는데 장애의 정도를 나누어서 등급분류를 하는데 클레스1과 클레스2로 나뉘어서 출전을 한다. 클레스1은 중증의 장애를 가진 선수로, 클레스2는 경증의 장애를 가진 선수로 나누어 져서 핸디캡을 최소화 하여 경기대회를 치르게 된다.

우리나라는 2004년 일본 휠체어댄스스포츠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세계대회 경험이 적고 휠체어댄스스포츠를 시작한지 3년이 않되 었기에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다고 생각하고 갔었다. 첫날부터 대회장에서 보여지는 각 나라 선수들의 경기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왈츠와 탱고 등을 추는 스텐다드 종목의 선수들은 휠체어파트너가 여자선수인 경우가 많았고, 자이브 차차차를 추는 라틴댄스 종목의 경기에는 휠체어파트너가 남자인 경우가 많았다.

스텐다드댄스 같은 경우에는 스텐딩파트너가 휠체어파트너를 직접 두 손을 잡고 경기장 전체를 이동하면서 안무동작을 하기 때문에 남자파트너가 스텐딩파트너일때 좀 더 유리하고 장애인선수가 중심이기 때문에 휠체어파트너가 여자일 경우에 표현력이 더욱 돋보이기 때문이고, 라틴댄스는 휠체어파트너가 빠른 음악에 맞추어 직접 휠체어를 격렬하게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휠체어파트너가 남자일 경우에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2004년에 우리나라가 출전할 때는 클레스2 라틴댄스부문에 두 팀이 출전했는데 특히 클레스2 라틴댄스 부문은 휠체어댄스스포츠의 꽃이라고 할 정도로 가장 많은 선수들이 출전하고 휠체어파트너들이 화려하고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종목으로 세계선수권 대회의 가장 마지막에 열리는 경기종목이다.


물론 클레스1 종목이나 스텐다드 종목같은 경우에도 정말 아름답고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지만 일반 비장애인들의 댄스스포츠 경기력에 가장 근접하게 보여 지는 종목이 라틴댄스 클레스2 종목인 것이다.
정말 경기장에서 보여 지는 선수들의 모습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것이 다를 뿐 장애인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만큼 뛰어난 기량과 표현력, 몸의 움직임과 휠체어의 조작법 등 정상급에 있는 선수들은 춤을 추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멋지게 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세계 각국의 선수들과 어울려서 우리나라 팀들도 열심히 했지만 역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실력은 높기만 했었기에 3차 예선전까지는 올라갔지만 준결승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아쉽게 경기를 마치고 남은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탄성과 부러움을 느끼면서 다음 기회가 있다면 더 많은 준비와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아쉬움과 함께 외국선수들과 직접 경기를 하면서 정말 많이 느끼고 배울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들의 열정과 눈빛, 몸의 움직임과 휠체어의 움직임 그리고 춤을 추는 그들의 자신감과 자유로움은 나를 휠체어댄스스포츠라는 춤의 세계로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고 더 큰 희망과 더 멀리 꿈을 꿀 수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본 세계선수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무런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도전이라는 가능성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전 보다 더욱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휠체어댄스스포츠를 알리고 연습도 더욱 열심히 했지만 모든 것이 생각과 열정만 가지고는 않된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세계선수권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왔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직도 척박하고 멀기만 했던 것이다. 새로 시작하는 선수들도 적었고 3년이라는 시간동안 뛰어다녔지만 경제적지원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사회적인 인식도 아직 장애인들이 춤을 춘다는 것이 낯설기만 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하고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황이 계속 되었다.

물론 춤을 추고 그것을 알리는 일들은 정말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만 내가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 계속 만들어 가기에는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3월에 홍콩에서 아시아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하나 무척이나 고민을 했다. 대회에 출전을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연맹에서도 거의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혼자서 대회신청서를 작성하고 함께 갈 선수들을 모았다. 더는 춤을 추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쏟아 부어볼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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