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북곽(北郭) 선생을 다시 생각 한다.
아! 북곽(北郭) 선생을 다시 생각 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9.0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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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한 고을에 북곽이라는 선비가 있었으니, 벼슬 하는 것을 떳떳하지 않게 여겨 오로지 책을 읽고 쓰는 데 매진하여 천하가 흠모했다. 옆 마을에는 동리자라는 과부가 살았는데 정절(貞節)이 어찌나 곧던지 세상은 그의 동네를 ‘동리 과부 마을’이라 이름 했다.


그런데 이게 웬 변고일까. 고매한 북곽이 정절 곧은 동리자의 처소로 기어들어 음란한 짓거리를 하느라 밤새는 줄 모르다가 그 아들들에게 들켜버린 게 아닌가. 북곽은 혼비백산하여, 담을 넘고 들을 가로질러 도망가다가 그만 똥통에 빠지고 말았다. 겨우 기어 나와 고개를 드니, 범 한 마리가 떡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깟 일에 좌절할 북곽이 아니다. 이마와 무릎이 까지도록 절을 하며 아첨을 늘어놓는데, ‘명성이 신룡과 같으시어 바람과 구름을 일으키시는데, 저 같은 미천한 자는 그 위품 아래 살아갑니다.’라고 하자, ‘가까이 오지 마라, 구린내 난다. 유(儒:선비)는 유(諛:아첨)라더니 과연 그렇구나!’라고 개탄하며 범은 이렇게 꾸짖었다.‘선비란 것이 그 포악을 함부로 하고자, 보드라운 털로 붓이란 걸 만들어, 오징어 물 같은 먹물을 묻혀서 종횡으로 치고 찌르고 하여, 굽은 것은 창 같고, 날카로운 것은 칼 같고, 곧은 것은 화살 같고, 팽팽한 것은 활시위 같아서, 이놈이 한 번 움직이면 온갖 귀신이 밤중에 운다. 너희들은 끊임없이 이것으로 서로를 잡아먹으니, 그 잔혹함이 너희보다 더한 자가 누구란 말이더냐.’

북곽은 머리를 땅에 박고 손 비비기만 간절히 하는데,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나와 들에 절을 하느냐?’는 소리가 들려 뱁새눈으로 살피니, 범은 간 데 없고 밭 갈러 나온 농부가 앞에 있더라. 북곽은 헛기침 두어 번 한 뒤 ‘하늘이 높지마는 감히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고, 땅이 두껍지마는 감히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기에 그러는 걸세’라고 말했다.

지체 높은 국회의원이란 자들이 검찰에 잡혀가서는 뇌물 받은 것을 끝까지 부인하고… 그런 지체 높은 분들을 잡아들이는 서슬 퍼런 칼을 쥔 관리의 지검장이란 자가 예전에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던 길거리에서 음란행위로 옷을 벗는 잔망스런 계절에, 연암 선생의 “호랑이가 선비를 꾸짖었다.” 는 『호질(虎叱)』을 다시 읽는다. 세상의 도덕군자들이 쏟아내는 구린내는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이야기 속 북곽은 옛 중국 전국시대의 제나라 사람이다.

말로는 가난한 국민을 위한 걱정은 자기들이 다 하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 자들이 접대성 내기골프나 즐기고, 도덕성의 마지막 보루로 자처하면서 각종 패륜을 저지른 이들이니 북곽 선생이란 이름에 딱 어울린다. 바로 위선덩어리 일부 양반의 모습들이다.

그러나 연암이 이들보다 더 개탄한 자들은 따로 있으니, 범이 최종적으로 질책한 “멋대로 붓질을 하는 자”들이다. 선거라는 장사판을 앞두고 업자로부터 수백만 원어치의 술과 향응을 즐긴 자들, 술 마시고 밥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데도 젊은 여성이 필요한 자들, 그것만으로도 구린내가 저들보다 못하지 않을 터인즉, 그들이 짓는 군자연(君子宴)은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게다가 접대건 향응이건 공짜 골프라면 사죽을 못 쓰고, 습관적으로 내기골프를 하며, 끝나면 선물까지 챙기는 자들이 추상같은 “춘추필법(春秋筆法)”을 흉내들을 내고 있으니 그 구린내가 독가스 이상이다.

연암 선생이 『호질> 말미에 부연한 다음 한 마디면 끝날 일인데 주접(住接)이 길어졌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선비들은 글귀나 주워 모아서 세속에 아첨한다. 승냥이나 범도 남의 무덤을 파는 선비는 먹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자들이야말로 그런 더러운 자가 아니겠는가?’의로움을 모르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권모술수의 난무로 인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면하고 말 것이다. 퇴계선생은 임금에게 충언한다. ‘예(禮:예의)와 의(義:의로움)와 염(廉:청렴)과 치(恥:부끄러움)의 정신이 없으면 그 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추석이 지나고 나면 또 추석 때 떡값을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대가성이 있었느니 없었느니 아니 떡값을 받은 것이 아니라 송편 값으로 받았느니 하는 그런 알쏭달쏭한 뉴스가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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