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마더(Mother)
봉준호의 마더(Mother)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9.1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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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두순/부산 경성대 외래교수
나는 얼마 전 한 선생님으로부터 봉준호의 ‘마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볼 것을 제안 받았다. 그 영화에 관한 토의는 돌아오는 목요일에 있을 예정이다. 최근 얼마간의 휴가기간 동안 영화와 관련된 책들을 읽음으로써 영화 보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그 제안은 나에게 신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저 우연인지 아님 운이 좋은 것인지 그날 밤 한 케이블 채널에서 그 ‘마더’를 방영하는 것이 아닌가. 몇 년 전 내가 보았던 봉준호의 ‘마더’는 나에게 있어 그다지 대단한 영화가 아니었다. 당시, ‘잘생긴 원빈이 모자라는 연기를 곧잘 하는구나. 김혜자의 연기는 정말 대단해! 와, 이거 긴장 넘치는 스릴러인데! 범인이 누구지’ 등의 다소 평범한 생각을 한 듯하다. 그런데 그날 밤의 ‘마더’는 나에게 있어 새로운 ‘마더’였다. 계기가 부른 집중력 덕분일까. 아니면 나에게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버릇, 가능한 한 다양한 관점으로 영화를 보려는 그 버릇 탓인가.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상관없이 여하튼 나는 열심히 그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것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적어본다.

우선 ‘마더’는 나를 다른 영화들과의 비교의 장으로 이끌었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였던 나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인 영화조차도 나의 감상목록에서 제외시키지 않았다. 그러한 영화 중 하나, ‘어미’였다. 대략적 내용은 이러하다. 엄마는 잠깐의 실수로 딸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딸은 인신매매단이 납치한다. 엄마는 그러한 딸을 혼신의 힘을 다해 구출한 후 딸의 인생을 짓밟은 모든 사람들을 죽인다. 모성의 복수극이었다. 이 외에도 그 유명한 ‘친절한 금자씨’, ‘오로라 공주’,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등은 내가 본 영화들 중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복수로 변할 땐 살인을 부른다는 공통점을 지닌 영화들일 것이다. 이 영화들이 갖는 주목할 만한 공통점은 죽음을 당한 피해자 혹은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든 사람 모두가 여성이라는 것이다. 소외 받고 힘없는 여성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극단의 선택은 살인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이 살인들은 왠지 정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은 오합지졸인 경찰들이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범인을 만든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즉 국가가 자신들을 위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므로 스스로 범인들을 응징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이 영화들 속에서 나는 탈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여성들을 본다.

이제 ‘마더’만을 두고 이야기 해보자. ‘마더’는 이상의 영화들과 거의 비슷한 맥락에서 흐르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무엇들을 덧붙이고 있는 듯하다. 우선은 엄마와 아들이 보이는 특이한 두 캐릭터다. 이 영화 속 아들은 엄마의 잘못된 선택으로 반쯤 바보가 되었고, 오랫동안 독신인 엄마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아들만을 보고 산다. 이 둘의 관계는 묘하게 그려진다. 때로는 부부 같아 보이고 때로는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갈등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설정은 엄마와 아들간의 묘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엄마가 아들을 위해 저질렀던 살인의 동기가 오직 모성의 발로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이러한 의문은 곧 이 영화의 중심인 듯 보이는 여학생 살인사건의 범인 찾기는 이차적인 문제로 만들면서 진짜 범인은 미궁 속으로 빠뜨린다. 두 번째, 영화는 후반부에서 경찰이 지목한 진범으로 잘생긴 바보 보다 ‘못한’ 착한 다운증후군을 등장시킴으로써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이중화하며, 그러한 편견에 도전한다. ‘잘생긴 바보’에 대한 일차적 편견, 그리고 ‘착한 다운증후군’에 대한 이차적 편견. 마지막으로, ‘침’과 ‘춤’의 상징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침을 놓고 버스 안에서 춤을 추는 ‘마더’. 현대의술이 아닌 전통의술을 통해 탈현실화하고, 현대문명의 이기(利器)속에서 춤의 샤머니즘적 기능을 통해 스스로를 망각의 강으로 인도하여 거기서 몸을 씻고 치유하려는 그녀의 의지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 ‘너는 과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게 되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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