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무적(仁者無敵)이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9.1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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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사람의 평가는 그가 무엇을 얼마나 창조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삶의 기본적인 것은 선배나 은사에 의해 배워, 모방하는 수밖에 없더라도, 그 모방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천하에 완벽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설프더라도 자꾸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자.

산다는 것은 문제의 연속인 것이다. 어려운 문제 하나를 겨우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이 인생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산사람은 문제의 도전 속에 살아가야한다. 문제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어서 꼭 풀어내야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계속 수많은 장애물과 부딪혀야하고, 이것을 재거해 나가야한다.

모든 걸 배우면서 새롭게 시도하자. 훈훈한 마음, 웃는 얼굴의 정신적 공기가 없으면 냉정하고 무정한 사회가 된다. 말이나 태도에서 항상 인정미가 넘치도록 하자. 친절은 인간관계의 윤활유다. 어질고 인자한 사람은 적이 없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다. 남을 미워하면 적이 생긴다. 보기 싫고, 상대하기 싫은 사람이 많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진지하고 엄숙한 마음, 겸손하고 정성스러운 태도로 날마다 생산적, 창조적으로 일해 나가도록하자.

나무도 뿌리가 땅속깊이 내려야 몸통을 지탱하고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사람도 내면에 선(善)의 뿌리가 깊게 내려있어야 자신을 지탱하고 성장 할 수 있다. 선의 뿌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에 내린다. 그러면 행동조절 기능을 갖추게 된다. 늘 부끄러운 마음 갖기를 발원하자. ‘부끄러운 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자기양심의 부끄러움이다.

자신의 언행을 스스로 살펴보고, 부끄러운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다. 둘째, 외부의 객관적 부끄러움이다. 외부의 정당한 비판에 부끄러움을 느껴야한다. 그래야 모든 언행을 바로잡을 수 있다. ‘법구경’에서는 “전장에서 천 사람과 대적해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진정 용맹한 사람이다”고 하였다. 광순박채(廣詢博採)다. 자기고집을 버리고, 중의(衆議)를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개선해나가는, 슬기로운 판단과 정열적인 성실과 용기가 필요하다.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고, 늙은 여우는 덫에 걸리지도 않는 것이다.

어른들의 지혜를 빌려서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서로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주인공이 되어보자. 같은 나무라도 목수를 만나느냐, 나무꾼을 만나느냐에 따라, 기둥감이나 땔감으로 운명이 뒤바뀔 수 있다. 사람도 만나는 인연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달라져버린다.

스승이나 어른들로부터 배운 것들을 충분히 활용하며, 지금 하고 있는 일속에 푹 빠져 무아의 황홀경에 도달해보자. 고뇌가 따르는 일이라야 가치가있다. 살을 짜고, 기름을 꽉 짜서 정신을 불태우다보면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감격과 영광의 회심작을 창조할 수 있다.

그처럼 보람 있는 일, 위대한일도 없을 것이다. 피와 땀, 눈물이란 3대 액체를 쏟아 붓자. 정신적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자.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과 정신자세다.

세상 모든 일은 마음에 의해 지배되고 좌우된다. 비상한 정신과 죽을 각오로 임하면 놀라운 힘이 발휘된다. 정신은 쓰면 쓸수록 발달되고, 두뇌도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육체도 써야 단련되고, 심장도 뛰어야 강해진다. 내면속의 놀라운 잠재력이 잠들지 않도록 정신훈련을 강화해나가자. 서로에게 배우면서 도움과 협조 속에 살아가자. 좋은 습관 길들이는 일보다 나쁜 습관부터 고쳐나가는 일이 더 시급하다. 내가 착해야 세상도 착해진다. 이기심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갈등만 증폭시킨다. 상대의 존중이 결려된 비판견제 또한 갈등을 일으킨다. 나눔과 존중, 용서하는 마음이 없는 세상은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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