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꿈과 끼를 허(許)하라
교사에게 꿈과 끼를 허(許)하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9.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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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갑/교육전문가

한국 교사의 수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교육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수능점수는 최상위권에 들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수한 교사가 한국 교육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진단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2011년 2월 의회 국정연설에서 “부모 다음으로 아이들의 성공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교사며, 한국에서는 교사가 국가건설자로 불린다”고 언급하며 한국 교사의 우수성을 높게 평가했다.

이렇게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교사들은 교단에 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는 순수한 교육 열정이 각종 행정업무(교사들은 잡무로 표현한다)로 인해 시들어 간다.

오랜 기간 교직을 경험한 교사들은 교직 5년 정도 지나면서 ‘선생질’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일보다는 공문서 처리 등 행정업무를 잘 처리해야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또 빈틈없이 꽉 짜인 교육과정, 학교운영계획, 수업 운영으로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쉽지가 않다. 학교조직이 교수-학습을 중시하기보다는 관리·감독 중심으로 이루어져 교사의 자율성이 발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행정체제는 학교를 지원하고 교사의 능력과 끼를 발휘하게 만드는 구조가 아니다. 교육부-시도교육청-지역교육지원청-학교로 이어지는 관리·감독 구조다. 학교도 교장-교감-부장교사-교사의 위계질서가 명확하다.

학생, 학부모, 사회가 교사를 대하는 풍토도 예전과는 딴판이다.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교실붕괴 풍조가 확산하면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옛말이 됐다. 학부모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고, 제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교원도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급변하는 교육환경도 교원들을 힘들게 한다. 정치권은 교육에 대한 불만을 해결하겠다며 교원들을 희생양으로 삼기 일쑤다. 국민들도 교원이 개혁 대상이라며 정치권의 정치적 레토릭에 힘을 실어준다. 이런 일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다.

요즘은 교육감들도 교원들을 힘들게 한다. 그들은 취임하자마자 교단을 뒤흔든다. 선거로 뽑힌 교육감은 공약사항 등을 내세우며 학교에 이런저런 정책 사업을 강요한다.

교육청은 각종 ‘혁신’을 내세우며 새로운 정책을 추진한다. 하지만 학교는 이를 하나의 전시성 사업으로 치부하고 만다. 학교는 교육감이 교원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 아이들 교육에 좋든, 나쁘든. 이러니 교사들이 자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수 인재였던 교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명의식보다는 단순한 봉급생활자로 전락한다. 매년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교사들도 급증한다. 이런 현실에서 이들이 경제적 득실만 따진다며 비난하는 건 가당치 않다.

박근혜 정부는 창의교육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학생의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학생의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꿈과 끼를 펼칠 수 없는 현실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교사들이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젊은 날의 소중한 꿈을 잃어가고 있다. 자율과 창의, 혁신으로 끼를 발산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열정도 사라지고 있다. 교원들은 그저 개혁 대상이라는 생각이 정부와 정치권에 아직도 만연해 있다.

교육의 성패는 교사의 손에 달려 있다. '교실붕괴', '학교붕괴' 담론이 대두한 건 교원을 개혁대상으로 내몰고부터다. 교사들이 꿈을 펼치고 끼를 발휘하지 못하는 데 학생들이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을 바라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교사가 교육주체로 우뚝 서고, 꿈과 끼를 펼치게 해야 한다. 교사에게 꿈과 끼를 허(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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