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맛!
'가사’ 맛!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9.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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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양심의 명령대로 살아가자. 천하가 무너진다 해도 진리를 붙들고,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것이 내 인격에 혁명과 생활에 새로운 변혁을 일으킬 수 있다.


“개혁과 변혁은 고통이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필요한 것이다” 끊임없이 변해야하고 확실히 달라지고 또 달라져야한다. 알쏭달쏭한 성격의 소유자에게서는 지지자가 떠나버린다.

사려 깊고, 묵직한 행동으로 일관성 있게 원칙과 진실의 신념위에서 움직이도록 하자.

삶에서는 상호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친한 사이라도 이해득실 앞에서는 양보정신이 쉽게 사라져버린 게 사람마음이다. 여우는 백발이 될지언정 결코 선량해 지지는 않는다.

진리는 어디까지나 진리이다. 환자의 병든 육신에서 병원수입만생각하는 의사도 있겠지만, 환자의 고통을 치유해내는 기쁨을 만끽하는 의사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위대한 성인들도 아직 밑바닥까지 타락하지 않은 죄인인지도 모른다. 늘 새로운 다짐과 새로운 정신, 새로운 생활로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 푸른 하늘처럼 광명정대(光明正大)한 정신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자. “나쁜 생활은 일종의 죽음이다” 욕심과 괘락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욕심과 쾌락은 늪과 같다. 욕심과 쾌락의 밤이 새면 비애의 아침이 온다, 지식의 씨앗, 생명의 씨앗을 심어 자주적인 인간이 되자. 자주적이면 흥하고 의존적이면 망한다.

자주적이면 내발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어, 내부에서 강한 힘이 솟구친다. 스승이나 부모님에 의지하여 살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있다.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의 미래는 칠흑 같은 절망만이 기다릴 뿐이다. 진열장의 비싼 물건은 고객의 눈높이와 같다.

값싼 물건, 빈 박스 따위가 맨 위층을 차지한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면 자신을 낮추어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어야한다. 옛날, 어떤 보살이 절에를 잘 나오지 않아 스님께서 그 연유를 물었다. “제 남편은 절에도 잘 다니고 봉사활동도 잘하고 있으니 죽으면 틀림없이 극락으로 갈 것입니다. 저마저 착하게 살아 극락엘가면 남편과 또 만날까봐서 저는 그냥 대충 살다가 지옥으로가 지금의 남편과 만나지 않으려고 일부러 절엘 잘 안 다녔습니다”

그 남편은 밖에서는 친절하고 훌륭한 사람이지만 집에서는 가혹한 가장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눈높이를 배우자와 맞추고, 조금만 목소리를 낮추어도 다음 생애 또 다시 만나길 희망하는 행복한 가정이될 것이다. 스님들이 입은 ‘가사’는 ‘화합’ 과 ‘혼합’의 뜻이다.

단순, 단정하며 깨끗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채도가 낮은 탁한 색으로 염색하여, 여러 조각의 천을 따로따로 붙여서 만든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 탁발로 일곱 집을 돌며 음식을 구하면 짜고, 맵고, 싱겁고, 신맛, 단맛 등 다양한 음식을 구하게 된다. 이렇게 혼합된 맛이란 의미를 ‘가사’ 맛이라 한다. ‘가사’ 맛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도록하자.

그 누구도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다. 세월이 갈수록 노쇠한 몸에 낡아빠진 수레가 간신히 움직이듯, 힘겹게 움직이다가. 결국 모든 움직임이 정지될 것이다. 계율과 명상과 지혜를 배우지 않으면 우월감 갖고, 비교하며, 차별하게 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 적은 재물이라도 베풀면 재물 복을 받고, 법(法)을 보시하면 총명한 지혜의 복을 받고,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외보시를 하면 건강과 장수의 복을 받는다.

새의 좌우 날개처럼, 서로의 협조 속에서만 발전이 있다. 자신의 잠재능력을 꾸준하게 개발해나가며 부족한 것은 부족한대로, 수용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변화’ 전략이필요하다. 이 순간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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