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동화
잃어버린 동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9.2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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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수필가ㆍ통영 효음종합학원 원장
가을이 오면 가슴 설레게 하던 추억이 생각난다. 그건 다름 아닌 추석이다. 해마다 다가오는 한가위는 유년시절 기대하고 기다리는 즐거움이었다. 평소엔 구경하기 힘들었던 떡과 음식들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에겐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우리 아이들이 평소에도 먹고 싶은 간식이나 음식은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땐 그랬다. 그만큼 세월이 좋아졌다는 의미이다. 일 년 동안 수고와 땀으로 수확한 햇곡식은 고스란히 조상들의 몫이라며 차례 상에 올리셨던 정성이 지나온 시간, 그것을 보며 성장해 온 중년의 아버지들에겐 하나씩 풍요의 열매로 자리매김하게 된 씨앗이기도 하다.

어른을 알고 공경하며 섬겼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의 삶은 고달프지만 그래도 흥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명절 되어 고향 길 찾을 때면 고향은 언제나 따뜻함으로 맞아주었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있었던 일을 풀어 놓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걱정하며 하나라도 더 챙겨주지 못한 것에 아쉬워 돌아갈 때면 눈시울이 붉어 지셨던 고향의 어머니,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어디 있겠는가. 어렵게 키우는 과정에서도 결코 당신들의 삶만큼은 자식들에게 되 물리지 않겠노라고 이른 새벽부터 땅거미 지는 시간까지 땅과 씨름하셨던 아버지들의 모습은 지금 중년을 지나고 있는 세대의 향수가 아닐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속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그만큼 기준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시각이 이전에는 공감을 이루면서 사회적인 관습으로 작용하며 생활 속에서 응당 지켜져야 할 도리라고 여겨왔던 사안들이 이제는 개인적인 견해에 따라 달리 행해지는 모습들을 주위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언젠가 뉴스에서 추석 선물의 종류와 가격대에 관해서 응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물가가 올라 서민들의 장바구니 무게는 빈 공간으로 대신하고 추석 선물을 고르는 그들의 얼굴엔 집었다 놓고 하는 반복적인 손놀림에 여념 없다는 푸념이 엿보였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단가 100만원을 초과하는 고급 선물 세트가 없어서 못 팔정도로 진열대에는 동이 난 상태라고 한다.

서민의 살림살이가 추석이라는 명절에 큰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누구에게는 단돈 몇 만 원짜리 상품을 고르는데도 몇 곱절의 발품이 필요하다. 추석인데도 월급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이 많다고 한다. 정당하게 일하고도 제때에 일한 삯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삶이 어쩌면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의 사치와 고급스러움에 기회비용을 빼앗긴 건 아닌지 어렵던 시절, 우리는 서로에게 나눔이라는 따뜻한 정서가 있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아래윗집 함께 했고 낯선 것이 들어오면 옆집 순돌이에게 돌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없으면서도 서로에게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아 지금은 동화 같은 느낌마저 든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바쁜 일정에 사로잡혀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처럼 멈추기를 모른 채 쉼 없이 내달리고 있다. 취업준비 중인 대학 졸업생이 추석인데도 고향을 내려가지 못하고 전전하다 범죄의 늪에 빠지게 된 사실을 보도하는 뉴스가 TV나 신문을 도배하고 있다. 사업에 실패한 사십대 남성이 생활고로 가족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며 자살한 사건이 연일 알람처럼 울린다.

이제 명절이 다가오면 예전의 설렘과 기다림보다는 혹여 어느 누구의 아픔이 먼저 기억나는 건 왜일까. 우리의 슬픈 현실이자 자화상이 아닐까. 명절 아침 고향을 찾은 자식들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고 보람을 느끼셨던 부모님들의 가슴이 언제부터인가 뜻하지 않는 슬픈 상처로 남아 돌이킬 수 없는 가슴앓이로 남은 날들을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부담감으로 자리하게 된 건 아닌지 찡한 생각이 코끝을 여민다. 오늘따라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다. 몸만 건강해라. 너무 욕심뿌리지 말고 네 앞에 있는 거 그냥 네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네 혼자 잘나서 된 거 아니라고 늘 생각해야 한다. 알았제?”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귀전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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