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서는 결코 안 되는데…
잊어서는 결코 안 되는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0.1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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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선/나라사랑 보훈 강사
 

1950년 8월 무더운 날 포항여중앞 벌판에서 한 소년병이 전사했는데 그의 주머니에서 글이 나왔다. 몽당연필로 쓴 “학도병 유서” 1950년 8월 10일 형상강 전투에서 제 3사단 학도병 이우근


어머니 어쩌면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날 것 같지 않으니 말입니다. -중략-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군사세계6월호 인용) 낙동강 방어선 가장 동쪽 형산강 전투에서 끝내 숨져간 “이우근” 소년병 3000여명중 2400여명이 중학생 나이로 입대 조국을 지키다 산화했는데 당시 DJ나 Y 고건 같은 엘리트들은 징집영장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피해 다니며 기피자가 되어 병역면탈을 했으며 이들이 후일 대통령 국무총리로 집권하며 부정직해도 지도자가 되는 전통을 세웠으며 오늘날 청문회에서 보듯 범죄자 아닌 인간이 문화재 찾기보다 어려워진 것 같다.

이렇게 타락이 만연한 세상에 청백리 같거나 국민을 섬기라고 한다는 건 어불성설인지도 모르겠다. 우국충정의 소년병들을 제대로 예우해야 함에도 법안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이우근 소년병의 절규가 필자의 귓속을 맴도는 것만 같은데 얼마남지않은 당사자들은 저승 문턱에 서있다. 세월호 아이들보다 못한 목숨이련가! 1968년초 무장공비의 침입 사건이 있었고 월맹군의 구정공세가 대규모로 전개되었으며 그해 미국의 정보 수집함 프에블로호가 북한으로 피랍되었다.
 
또한 1969년 정초에 월맹군의 2차 구정공세도 월남전역이 초긴장 상황인데 미국의 새 대통령 닉슨 취임 3개월인 1969년 4월 15일 오후 1시 50분에 미 7함대 소속 비무장 정찰기 EC-121기가 일본 아쓰기(Atsugi)기지에서 이륙 연안과 평행선을 그으며 함경북도 무수단 근해의 상공까지 갔다가 회항하여 오산기지로 복귀한던중에 북한 전투기에 피격되어 승무원 31명 전원이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미국은 전술핵을 포함한 강경한 계획을 세웠다가 베트남전의 확전과 자국의 여론, 새 정부의 닉슨이 중국과 수교 일보직전이어서 구두 경고와 항의로 넘어가고 말았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기습이후 강공책을 구사하려 했던 우리정부, 다시금 시산혈해의 강산이 될 뻔했으니 안보의 중요성을 어찌 잊으랴! 혐한 시위에 깔보며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의 집권세력과 우익세력들, 국제관계가 무 자르듯 할 수 없다지만 차라리 왜놈들과 수교를 중단하고 아세안 피해국(2차 대전)들이 단합해 왕따를 시켜버리면 좋으련만….불꽃처럼 유탄이 날고 사방을 포위한 적들은 다가오고 밀려드는 어둠 죽음의 공포, 아~ 어머니! 그리움 전쟁은 그런 것, 하이에나처럼 북괴처럼 으르렁대는 이빨! 시신이 산을 이루고 낙동강이 핏물로 흐르던 낙동강 전투에서 죽어간 이우근 소년병, 이 소년병들이 아직껏 예우를 못 받고 역사에서 잊혀지고 있다. 세월호 아이들은 놀러가다 일을 당한 것뿐인데 국가유공자보다 더한 예우를 해준다고 난리들인데…. 정치하는 놈들이 비정상을 정상보다 윗길로 만들어 왔다. 표를 의식해서 말이다. 민주화가 그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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