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DNA
정치적 DNA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0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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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옥/작가·약사
어느 날 신문을 읽다말고 특정 집단을 매도하는 기사에 분기탱천기하여, 화풀이를 할 요량으로 정치가를 꿈꾸는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내게도 정치 DNA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특정 사안에 열을 올리곤 하는 내 다혈질의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봐 미리 방어벽을 치다니 역시 고수다.   

 정치란 무엇일까.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권력이나 집단 사이에 생기는 이해관계의 대립 등을 조정·통합하는 일'이다. 확실하게 뜻이 와 닿지 않는다. 좀 쉽게 말해보자. 

 가령 사회적 이슈가 된 어떤 일 앞에서 찬성과 반대 어느 한 편을 확실하게 지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꼭 관철되어야 한다고 믿는 경우도 있겠지만 반대로 절대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방관자가 아니라 하나의 뚜렷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면 여러 통로로 이를 드러내고, 또 동의를 얻고자 노력하게 된다. 술자리에서 동료나 지인들과 함께 고작 ‘핏대를 올리다’ 말겠지만 그래도 언론사에 기고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더 적극적인 행동을 택할 때도 있다. 요즘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주장과 울분을 토로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마치 신문고를 울리는 심정으로 말이다. 

 보통사람인 우리는 사소하고 소심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차를 가로 막아 세우고, 창밖으로 그렇게 담배꽁초를 버리면 되겠느냐고 따질 수도 있다(물론 이럴 때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새치기하는 장면을 휴대폰으로 찍어 개인 블로그에 올릴 수도 있고 이곳에 쓰레기를 무단투기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하게 혹은 희화적으로 방을 써 붙일 수도 있다. 근본적인 거대 악(惡)은 외면한 채 사소한 일에만 분노하는 소시민적 습성이라 매도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렇게 '견해를 밝히는' 정도를 정치라 부르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뭔가 적극적인 실천과 개선을 추구한다면 그것이 정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몹시 부당하다고 느낀다, 이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뭔가 응징을 하고 싶다, 내 뜻과 일치하도록 바로잡고 싶다....... 살면서 한번쯤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개인적인 일일 수도 있고 공적인 일일 수도 있다. 지고의 뜻을 품은 경우일 수도 있고 세상을 바꿀 원대한 꿈일 수도 있다. 반면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일일 수도 있다. 

 친구가 말한 것처럼 정말 내게 정치의 DNA가 있을까 반문해본다. 반대에 부딪쳤을 때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용기, 혼자 가게 될지도 모르는 길을 감당할 용기, 흙탕물이 묻어도 무시할 수 있는 용기, 세운 뜻을 끝까지 꺾지 않을 수 있는 용기, 그렇지만 잘못임을 알았을 때 이를 수용하고 승복하고 포기할 수 있는 용기까지. 

 나의 견해가 공개됐을 때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비난까지 감수할 정도의 용기를 가졌다면, 감수할 용기를 낼 만큼이라면 정치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잘 하느냐 못 하느냐 옳고 그르냐를 떠나, 정치를 하는 게 맞다. 내가 말하는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치하고 있네!”의 비아냥거림이 결코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늘 '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결국 정치는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난할 대상은 정치꾼이나 철새 같은 모리배들이지, ‘정치’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내게는 아직 그런 용기가 없다. 용기는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혹 모를까. 

 용기 있는 자가 세상을 바꾼다. 생전에 그 용기 있는 자들이 정치를 통해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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