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준비하는 진주 비봉산
이른 봄 준비하는 진주 비봉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2.1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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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가 자랑하는 8경 중 하나
▲ 비봉산의 봄

진주시 비봉산(飛鳳山·138.5m)은 시내에 소재해 접근이 용이하고 시내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등산로가 개발돼 진주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비봉루 뒤편 산복도로에서부터 봉산사 앞 광장까지 숲속 산책 데크로드 조성을 비롯한 등산로 변 야외 헬스기구, 편익시설물을 설치해 많은 시민의 웰빙 휴양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봄에는 꽃이 만발해 가는 이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비봉산의 봄은 진주시가 자랑하는 8경 중 하나이다.

산을 중심으로 비봉공원이 형성돼 있으며 강이식 장군의 신위를 모셔둔 봉산사(鳳山祠)가 있으며 남쪽에 진주시가지가 발달했고 동쪽에는 의곡사(義谷寺)와 연화사가 있고 서쪽 기슭에는 비봉루(飛鳳樓)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진주의 진산인 비봉산의 비봉은 봉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봉이 항상 날고 있다는 것으로 선비가 많이 배출된다는 뜻이다. 진양지의 월아산조에 이르기를 “산 동쪽에는 비봉의 형국이 있어 예부터 정승이 나고 산 서쪽에는 천마의 형국이 있어 장수가 날 것”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비봉산을 대봉산이라 했다고 한다. 비봉산을 마주보는 상봉동 주택가 평지에 흙을 쌓아올려 산과 같이 됐으며 그 복판이 파여 있는 곳이 있는데 마치 새들의 알자리 같이 되어 있는 것이 ‘봉알자리’인데 상봉동 911-1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봉알자리는 가야시대의 고분인 것으로 전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진주 강씨들 집안에서는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고 대봉산(현 비봉산) 밑에 웅거해 권세를 부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대봉산 위에 봉암이 있기 때문이라고 일컬었다. 조정에서는 몰래 사람을 보내어 봉암을 깨어 없애고 봉은 이미 날아가 버렸다고 하니 날아간 봉을 다시 부르려면 알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지금의 위치에 ‘봉알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의곡사는 신라 혜통조사(慧痛祖師)가 창건해 월명사(月明寺), 숭의사(崇義寺)라 불러왔다고 전해온다. 조선 초기에 와서 의곡사의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 말부터 이미 의곡사라 개칭된 것 같다.

비봉산의 허리아래 위치한 진주향교(晋州鄕校)는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됐다.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신라 소성왕 원년(799)에 지금의 진주인 청주(菁州)의 노거현(老居縣)을 국학(國學)의 학생녹읍(學生祿邑)으로 했다고 한 것과 조선 세종조(朝鮮 世宗朝)의 영의정 하연(河演)의 사교당기문(四敎堂記文)에 의하면 고려 현종때 인물인 은열공 강민첨장군이 이곳에서 공부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진주향교는 고려 초에 설립됐음을 알 수 있다.

▲ 비봉산 산책로

각종 문헌자료를 종합하면 고려 성종 6년(987)에 향학당(鄕學堂)으로 창건돼 국학감(國學監)으로부터 경학(經學) 및 의학박사(醫學搏士)를 파견 수강토록 했으며 현재의 의곡사 계곡에 위치했다.

고려 현종 2년(1011)에 중수 및 서재(書齋)를 중건하고 수학원(修學院), 학사(學舍), 서재(書齋), 사교학당(四敎學堂) 등으로 개칭됐으며 조선 태조(朝鮮 太祖) 7년(1398)에 문묘(文廟)를 창건하고 향교로서 면모를 갖췄으며, 훈도(訓導), 교관(敎官), 교수(敎授) 등이 성균관(成均館)으로부터 파견 됐다.

산행코스 중 왕복코스로는 진주향교에서 출발해 선학산 전망대에서 되돌아오는 길과 봉산사에서 출발해 선학산 전망대를 지나 봉황교에서 되돌아오는 길이 있다.

종주코스로는 봉황교에서 초장동(중촌마을)으로 가는 길과 봉산사에서 출발해 봉황교를 지나 선학산 전망대를 거쳐 상대배수장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자료제공/진주시

▲ 진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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