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安重根)의 하늘
안중근(安重根)의 하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3.2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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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ㆍ한민족 역사문화공원 공원장

1910년 3월 26일 오전, 중국 요녕성의 여순(旅順) 형무소 사형 집행실에서 안중근安重根)께서 유언하신다.

“내가 행한 행동은 오로지 동양평화를 도모하려는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바라건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일본 관헌들도 나의 변변치 못한 충정을 잘 헤아려, 너와 나 구별 없이 마음을 모으고 협력해서 동양평화를 기필코 도모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바야흐로 자신의 사형을 집행하려는 적군들에게 마지막으로 ‘너나 없는 참된 동양평화’를 가르치시는 말씀이다. 얼마나 겸손하고, 얼마나 호방하여, 얼마나 간절한 인품인가. 백범 김구(金九) 역시 평생을 이런 하늘같은 기백과 신념으로 일관하였다.
안중근과 김구는 비슷한 연배로 청년시절 거의 같은 곳에서 활약한다.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20리를 사이에 두고 동학군 토벌 의병대장 ‘안태훈’과 적이 된 동학접주 ‘김구’는 바야흐로 생사를 건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열아홉 살의 젊은 동학대장 김구의 사람됨을 알아본 안태훈은 밀사를 보내 "군이 어리지만 대담한 인품을 지닌 것을 사랑하여 토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회유하여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밀약을 맺는다. 머지않아 김구가 쫓기는 신세가 되자 안태훈은 자신의 집에 피신시킬 정도로 진심으로 인재를 아꼈다. 안태훈의 장남이 바로 ‘안중근’으로 김구보다는 불과 3살 연하이었다.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인재를 아끼는 안태훈의 마음이 높고도 호방하다. ‘적’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생명의 은인 안태훈의 인물됨을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그린다.
"안 진사(안태훈)는 눈빛이 찌를 듯 빛나 사람을 압도하는 기운이 있었다. 안 진사를 악평하던 자들도 얼굴만 마주하면 부지불식간에 경외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나의 관찰로도 그는 퍽 소탈하여 교만한 빛 하나 없이 위아래 모두 더불어 함께 하길 좋아하였다."

김구는 그의 아들, 안중근에 대하여서도 말한다.
"맏아들 중근은 당년 열여섯에 상투를 틀었고, 자색 명주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서 돔방총(총열이 짧은 총)을 메고 날마다 사냥을 다녔다. 영특한 기운이 넘치고 군사들 중에서 사격술이 제일로, 나는 새 달리는 짐승을 백발백중으로 맞혔다. 늘 넷째 삼촌 태건과 동행했는데 그들이 잡아오는 노루와 고라니로는 군사들을 먹였다."
아버지 안태훈은 가훈을 ‘정의(正義)’라고 정하였다. 맏아들인 안중근은 자연히 바른 정신이 날래고 용감한 몸에 배였을 것이다. 14년 뒤, 하얼빈 역에서 덩치 큰 러시아 군인들 사이로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움직이는, 얼굴도 모르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정확하게 처단한 안중근의 예지력과 사격 솜씨는 이미 어릴 때부터 몸에 익혀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민족의 거룩한 가르침인 ‘참전계경(參佺戒經)’은 ‘의(義)’(제56사)를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의로움이란 믿음을 굳게 다져 주는 기운이니, 그 기운이야말로 마음을 감동시켜 용기를 갖게 해주며, 용기 있게 일에 임하면 마음이 굳게 다져져 벼락이 내리쳐도 그 기운을 깨뜨리지 못한다. 그 굳고 야무짐은 금이나 돌과 같고, 그 생명력은 큰 강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義 粗信而孚應之氣也. 其爲氣也 感發而起勇 勇定而立事 牢鎖心關 霹靂莫破 堅剛乎金石 決瀉乎江河)
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의로움을 완성함은 오직 하늘을 굳게 믿고, 오직 하늘을 경애하지 않는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경천(敬天)속에서 애인(愛人)하고, 숭조(崇祖)함은 곧 한민족의 정의로움이 아닐 수 없다.

공교롭게도 2010년 3월 26일은 ‘천안함 폭침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북한은 한 술 더 떠서 핵전쟁 운운하며 우리를 계속 겁박하고 있다. 작금의 국제정세 역시 105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 일본의 아베 수상은 100년 전의 침략에 대한 잘못을 결코 사과하지 않고, 독도의 영유권을 억지 주장하며 오히려 미국의회에서 연설하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고고도 미사일 배치 ‘사드(THAAD)’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건 등등,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사사건건 곤고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

실로 엄중 한 때이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가 하늘을 경애하고, 하늘을 믿고, 하늘처럼 당당하고 슬기롭게 임해야한다. 이로써 주변국들을 감동시켜 너나없이 경천할 수밖에 없는 같은 생명체란 사실을 깨우쳐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안중근이 거듭 뿌리내려준 ‘한민족의 하늘같은 숙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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