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의 생각이 끝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오늘 나의 생각이 끝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3.3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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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부자라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재물이 넘쳐난다 하여 여유로운 것도 아니다.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너그러운 것도 아니다. 비록 가난한 거지에게도 웃음과 마음의 평화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왕 살아갈 바에는 현재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가자.

사람의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잠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어떻게 알겠는가.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낮에는 죽을 만큼 일하고, 밤에는 등잔불 아래서 바느질하며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야 하는가”불평 한마디 없었다.

쩍쩍 갈라진 뒤꿈치와 벌어진 손끝을 삶의 훈장인양 감싸며, 찢어진 옷은 즉시 꿰매주어서 가족에게 비록 낡은 옷을 입힐망정, 구멍 난 옷은 입히지 않았다. 집안잔치나 명절 끝에 무슨 증후군이란 것도 없었고, 추석날도 벼 베기를 하며, 일에 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고달픈 삶 속에서도 힘들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지금 우리는 쉽고 작은 일도 해낼 능력이 부족하면서, 어렵고 큰일만 바라보며, 걷기도 전에 뛰려하고, 기기도 전에 날려고 든다. 직장인은 건넛산 쳐다보듯, 대기업만 바라보며 한눈팔지 말고, 맡은 일에 사력을 다하라. 작은 회사라 봉급이 적더라도 절대부업은 말라.

직장 내에 부업가진 자가 있으면 기강이 무너지고, 부업한 자는 자연히 본업에 소홀하게 된다. 집에서 죽 쑨 놈은 나가서도 죽 쑤게 된다. 작은 기업이라 불만이면 대기업을 가도 불만이다. 적은 봉급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장기근속한 사람을 외면한 기업은 없다.
모진고생 끝에 중견간부나 결정권자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보면 지난날의 고생이 억울하지만은 않는 것이다. 사람은자신의 생각이란 안경색깔 대로세상을 바라본다.

도둑은 도둑의 관점에서, 경찰은 경찰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세상을 크게 보는 시야를 가져서 자신의 생각이란 안경과, 직업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야 발전이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를 보고, 성공 여부를 저울질한다.
그러나 내가가진 것과 남이가진 것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더 큰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시체를 먹고사는 구더기는 시체 썩는 냄새에 도취되어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자신의 재산, 학벌, 직위에 도취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큰 부자라도 거지조상은 있었고, 가난뱅이에게도 부자조상은 분명 있었다.

말단자리의 가진 것 없는 사람도 존중하자. 무시해도 좋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가난했던 사람이 돈을 벌면 오히려 어려운 사람을 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비극이다. 성격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한 직장에서 생활하다보면 더러는 의견충돌도 있을 수 있다. 다툼에도 긍정적, 건설적 다툼과 부정적, 파괴적 다툼이 있다.
다툼 후 혼자 생각하며 웃음이 나오면 긍정적 다툼이고, 이빨 부드득 갈면 부정적 다툼이다. 의견충돌 후 벙어리실습에 들어가는 자는 졸장부다. 히틀러시대의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면서도 자신들이 얼마나 큰 죄업을 저지르고 있는 줄 그때는 몰랐다.

오늘 나의 생각이 끝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서로 다름만 인정하면 더 빨리 발전할 수 있다. 내편이 아니더라도 모두 적은 아니다. 봉급이 적으면 회사를 강한, 대기업으로 키워나가라. 그러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민 가고자, 그 나라말을 배운 것은, 그 나라백성들을 위해 배운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배운 것 아닌가. 직장근무도 회사나 사장을 위해 근무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 근무한 것이다. 심신을 다 바쳐 업무에만 몰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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