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히 한가한 시간을…
절실히 한가한 시간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0.1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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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민들레 공동체 대표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남들과 똑같은 것을 추구하는 데 열중하지 말라. 당신 말고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을 하라. 그 밖의 것은 과감히 버리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그는 인도의 간디에게 시민불복종 정신을 알려주었고, 진정한 의미에서 근대 최초의 생태주의자이기도 한 미국의 독보적인 사상가이다. 당시 그의 삶은 주류 미국인들에게는 이해되지 않고 심지어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버드대에서 공부했지만 형식적인 졸업을 싫어해서 졸업장을 받지도 않았고, 그가 낸 세금이 국가의 이름으로 인디언을 탄압하고 국가폭력의 수단이 되는 것을 보고 세금내기를 거부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또한 그 자신이 직접 지은 통나무집에서 직접 키운 농작물에 의존해서 독립적인 삶을 실험하였다. ‘웰든’이라는 위대한 작품이 이렇게 나왔다. 그는 그의 삶의 실험과 도전을 통해 그에게 주어진 세계를 넉넉히 향유했으며 무엇보다 그는 그 자신이 되고자 애 쓴 사람이었다.

인간의 존엄은 그 자유와 독립성에 한 뿌리를 두고 있다. 얼굴이 모두 다르듯 음색이 모두 다르듯 우리는 모두들 독특하고 유일한 자기만의 삶을 살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아닌가.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인간의 독창성과 창조적 능력을 키워주는 곳이 아니라 길들이고 획일화하여 문화의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최근 명품유행이 대단하다. 한 개에 수백만 원씩 하는 명품가방이 없어서 못 팔고 대여점까지 생겨났고 짝퉁산업 또한 작은 규모가 아니다. 명품가방 하나쯤 걸치고 나가야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왜 우리는 자식이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마치 죽을 것 같이 두려워할까. 오늘의 대학 또한 명품족의 기호처럼 우리 사회의 하나의 매력적인 소비상품이 된 것은 아닐까. 왜 모두들 공무원이 되려 하고 대기업 사원이 되려 하고 판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려고 할까. 그렇지 않으면 인간답게 살기가 어렵다고만 착각하고 살까.

소박한 천으로 자기가 염색하고 바느질해서 자기의 손때와 정성이 묻어있는 가방을 왕 같이 공주 같이 가지고 다니는 도시의 멋쟁이들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학력이 아니라 진정한 실력으로 승부해서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오히려 대졸동기생들을 취업시키는 발상을 가진 용기 있고 창의적인 젊은이를 우리사회는 고대하고 있지 아니한가. 제도적 교육에 의존하는 사람일수록 두려워하고 의존적인 성향의 교육소비자가 아닌가. 돈과 지위와 명예 그 어느 것 하나도 가치를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이 자신의 소중한 삶과 의미를 교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그것이 생존경쟁과 비교의식을 조장하여 이 사회가 잘나고 똑똑한 사람에게만 주는 특권이라면 그것이 공무원이든 삼성직원이든 과감히 버리고 자기 자신이 되는 유일하고 고상한 삶으로 전진하는 그런 사회적 트렌드를 우리는 형성할 수 없는 것일까.

이것은 아마 한가한 소리로 들릴 것이다. 먹고 살기 바쁘고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이 세상에서 두 번 생각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할 일이다. 우리가 먹고 살기 바쁘든 먹고 살만 하든 우리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는 어느 한 때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인간으로 사랑받을 만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유일의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삶의 혁신 이외에 무엇이 더 남아있는가. 기계와 과학의 혁신, 정치의 혁신, 문화의 혁신, 교육의 혁신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불려 지든 우리에게 남아있는 유일하고 절실한 혁신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며 나는 어떤 존재로서의 유일성과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는가를 한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이다.

가을은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이다. 이 계절에 각자는 절실히 한가한 시간을 확보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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