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지 높은 궁도인의 올바른 정신 이어나간다
긍지 높은 궁도인의 올바른 정신 이어나간다
  • 함안/김영찬기자
  • 승인 2015.05.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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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군 칠원읍 ‘성심정 궁도장’ 김윤전 명궁

▲ 김윤전 명궁은 단전에 모인 기를 화살에 실어 내 보내는 것이 국궁의 묘미라고 했다.
김윤전 명궁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1996년 함안군 사격선수로 출전했었다”고 귀뜸했다. 그런 그가 전주공설운동장 임시 사격장에서 시합을 마치고 나올 때 때마침 시합장 가까이에서 국궁대회를 개최하고 있었다며 오늘의 양궁이 있기까지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하얀 옷을 차려입고 기품당당한 자세로 활을 쏘고 있는데 시합이라기보다는 친목을 도모하는 것처럼 선수들이 화기애애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하지만 자신에겐 늘 자신을 아껴주신 어버지를 머리 속에 떠 올렸다. 자신이 어릴 때 아버지가 창원 진해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 당시 아버지는 주변사람들과 자주 내기 활 시합이 가졌던 기억이 남아 있다고 했다. 결국 아버지는 내기 활 시합에서 이겼다며 자랑을 늘어 놓았다고 김 명궁은 말했다.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인지 결국 나는 사격을 그만두고 국궁을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머리 속에 떠 올렸다. 이게 오늘의 나를 명궁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김 명궁은 밝혔다. 오늘의 김 명궁이 지내 온 길을 이번에 본보가 인터뷰를 통해 자세하게 들어본다.


 
다음은 김윤전 명궁과의 일문일답.

-김 명궁은 국궁 입문년도와 보유단수는
▲2001년 11월 함안군 칠원읍 가장자리에 있는 성심정 궁도장에서 집궁하여 현재 공인 7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사범 생활을 하고 있다.

-누구의 권유로 활을 당겼나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활을 배워보겠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는데 때마침 함안군 칠원읍에 직장을 가지고 거주하는 도중에 1990년대에 국궁장이 생겼다. 그 당시 총무로 있던 지금의 동화철물 김태호씨에게 배우고 싶었는데 회원으로 가입시켜 달라고 요청하여 국궁에 입문하게 됐다.

-궁도 사범은 언제부터이며 해군사관생도의 지도 배경은
▲2001년 함안군 칠원면 성심정에서 집궁을 시작으로 이철수 사범(그 당시2단)에게 활을 처음 배우고 21일 만에 몰기(5시5중)를 했다. 그 당시에는 정확한 궁체라든지 궁도장 성심정이 만들어진지가 얼마 되지 않아(1년 정도)제대로 사범에 대해 아는 회원들이 없어 배움이 어려웠다. 그 무렵 창녕 남산정에 있는 공문식 접장(당시 4단)이 성심정에 활을 내려 왔다. 활의 기본자세 궁체도 좋고 국궁에 대해 박식하여 국궁을 가르쳐 달라고 매달려 개인적으로 부탁하여 공 사범의 농장에 개인 활터에서 약 3개월 동안 지도를 받으면서 좀 더 기량이나 궁체가 제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공 접장과 경험을 쌓기 위해 전국대회를 둘이서 다니면서 많은 경험과 실천을 하고 나에게 적합한 사범을 보고 듣고 하면서 선수로 뛰게 됐다. 이후 2010년까지 해군사관학교 국궁 강사를 하던 김상락씨가 예천활의 전수 조교로 가면서 2011년 해군사관학교 국궁 강사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가르치게 됐다.

-해군사관학교 국궁선수들의 성적, 근황은 
▲제가 생도들을 가르친지 만 5년 동안 현재의 생도들의 규칙적인 군 생활과 일과로 볼 때 국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있으나 일반 전국대회에 나가서 일반인들과 겨루어 전국대회에 입상하기란 불가능했다. 매년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전국대학생 국궁대회가 열리지만 그 시기가 해군사관학교 축제인 옥포제(5월 초경)와 맞물리기 때문에 여태까지 참석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올해는 4월 전국대회가 열려 출전을 하면서 이충무공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열심히 연습하고 강인한 정신으로 단체우승을 하게 됐다.
또한 육군사관학교 화랑정에서 개최된 제1회 육군사관학교장기 전국대학 국궁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육군사관학교가 주최하고 전국대학 국궁대회 추진위원회가 주관한 이번 대회는 우리나라의 전통무예인 국궁을 보급하고 궁도를 통한 상무정신을 고양하고자 개최된 것이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국궁 동아리 ‘동궁’은 145M 단체전 2위, 145M 남자 장려, 50M 여자 장려, 궁체상(남자), 조직상(다수참가) 등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이번 대회에 김윤전 사범의 지도아래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에 감사 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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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사격선수에서 명궁이 되기까지
아버지 활 시합내기 보며 자란 영향 커

공인 7단 보유 해군사관학교 국궁 강사
한산대첩 대회 1위 등 다수의 입상 경력
함안화천농악 전수조교 농악도 가르쳐

활과 화살 매력은 체력단련 정신수양 

궁도인의 자부심과 긍지로 전통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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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궁님의 사범생활 당시 즐거웠던 일 vs 슬픈 일은
▲사범생활에서 즐거웠던 것은 너무 많지만 각종대회를 참가하면서 특히 전국대회 단체전 우승, 준우승 또는 내가 가르친 궁사들이 승단시험에 합격하고 전국대회에 나가 수상하는 것들 그리고 제일 듣기 좋은 것은 나에게 배운 회원들이 궁체가 좋은 사범을 만나 너무 좋다고 사람들이 칭찬 할 때가 가르치는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다.
또 제가 활을 배우고 난 뒤에 사랑하는 하는 아내가 저 세상으로 가고 수많은 날을 괴로워 잠 못 이룰 때 아무도 없는 사정에서 몇 달을 밤을 세워가며 화살을 과녁을 향해 날려 보내면서 괴로움을 달랜 것이 슬픔이기도 하지만 슬픔을 잊을 수 있기도 했다. 국궁을 하면 자기수양이 많이 되는 운동이라 슬픈 것을 오히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김윤전 명궁의 지난 2013년 통영에서 열린 한산대첩기 전국남녀 궁도대회에서의 모습.
-대회 성적과 현재 직업에 대해
▲전국대회를 많이 다녔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이충무공 한산대첩 전국대회 개인전 1위, 광양시장기대회 단체전 1위, 세계민족궁전국대회 개인전 2위 등 많은 대회 입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에 경상남도 전국체전 육성종목으로 의령군에서 국궁부 실업팀 선발에 참가하여 2위로 선발됐다. 그 후 6개월간 선수생활 도중 부상을 당해 10개월 후 전국체전이 있어 감독의 배려로 치료를 받은 후 출전을 권유 받았으나 다른 선수들의 피해를 주기 싫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현재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3호 함안화천농악 전수조교로 각종공연 및 농악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국궁의 묘미는
▲저는 국궁을 단순히 활을 가지고 화살을 쏘아 과녁에 맞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활과 화살은 체력단련과 정신수양을 하는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활에다 화살을 메겼을 때 몸과 마음을 바로 잡고 시위를 당겼을 때 땅과 하늘의 기를 단전에 모우고 깍지를 떼었을 때 단전에 모인 기를 화살에 실어 내 보내는 것이 국궁의 묘미라고 생각되고 화살이 과녁에 맞았을 때 그에 대한 즐거움은 배가 되었기 때문에 활시위를 당기게 된다.
-개량 궁과 각궁에서 권장하고 싶은 활과 화살 관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
▲체력단련과 정신수양을 도구가 비록 국궁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의에 많은 수련방법의 도구가 있다. 그 중에 활과 화살은 살상도구이다. 그런데 면허를 취득하지 않고 자유롭게 개인이 휴대하고 다니는 무기는 활 외에는 없다. 자유로운 이유는 바로 우리 민족고유의 전통문화이면서 우리 민족의 혈관 속에서 활이라는 DNA가 들어 있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개량 궁(카본 활)이든 전통 활(각궁)이든 우리민족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곳에는 어느 것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좀 더 깊이 국궁을 이해하고 공부를 하면 개량 궁과 전통 활을 번갈아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으로 권고하고 싶다.

▲ 제1회 육군사관학교장기 전국대학 국궁대회 모습.
-전국 궁도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궁도인은 첫째는 전통문화유산을 이어 받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궁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수 천년동안 변함없이 이어온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둘째는 잘 보존해야 된다. 활에 대해 잘 모르는 활은 활량이나 쏘는 것으로 불리고 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밥 먹기도 힘든데 빈둥빈둥 놀면서 활이나 쏘면서 기생들과 술 먹고 춤추면서 논다고 그런 것 같지만 우리의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 활은 나라를 세우고 상징적인 기둥이었고 인재를 등용할 때 필수과목이었다. 몇몇 사람들의 눈에 그런 것들이 보였지만 활을 접하게 되면서 사람이 점잖아지고 좋아 졌다고 주위사람들에게 칭송을 들어야 된다, 이렇게 해야만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셋째는 발전시켜야 된다. 단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과녁에 맞추는 행위만 하지 말고 통일된 사범, 통일된 고유의상, 활터에서의 통일된 내·외적 활 예절(사례) 등 세계인이 본을 받고 배우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국궁을 하는 자세가 아닌가 한다. 함안/김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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