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가 그리워서 배구판으로 돌아왔다
배구가 그리워서 배구판으로 돌아왔다
  • 글/김영우기자·김상목 수습기자·사진/이용규기자
  • 승인 2015.06.0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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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과학기술대학교 배구부 김형태 감독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이라는 표현이 있다. 아무런 기반도 세력도 없는 상태에서 무모하게 어떤 도전을 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경남에는 프로배구팀이나 실업배구팀이 없다. 그래서 경남의 배구 인프라는 열악하다. 경남과학기술대 배구부는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 7년 전인 2008년 도내 첫 대학팀으로 창단된 후 지금은 전통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팀으로 성장했다. 배구 국가대표를 지낸 김형태(55) 감독의 뛰어난 지도역량 덕분이다. 고교와 대학, 실업 시절 국내 배구계를 호령하던 김 감독은 선수생활을 그만둔 후 잠시 소속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회사원으로 오랜기간 근무했으나 배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경남과기대 배구부를 창단해 감독을 맡아 배구판으로 돌아온 것이다. 파란만장한 김 감독의 배구인생을 들어 보았다.  /편집자 주


다음은 김 감독과의 일문일답.

-배구와 인연을 맺은 것이 언제부터인가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고등학교 1학년 때 동명고등학교를 입학해서 시작했다. 당시 형님이 동명고등학교 배구부 감독으로 있어서 형님의 적극적인 권유도 있고 공부보다는 운동에 흥미가 있어서 시작했다.

-전국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게 언제부터인가
▲고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부에서는 잘하는 축에 속했고 고3때는 저희 또래에서는 최고였던거 같다. 3학년때 청소년 국가대표에도 뽑혔다.

▲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배구부 김형태 감독과 선수들 모습.
-진주 동명고 재학시절 전국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고도 최우수 선수로 뽑히는 이변의 주인공이었다고 하는데
▲1977년 청주에서 열린 전국고교춘계배구연맹전 3위에 입상했는데 관례상 우승팀에게만 주어지는 대회 MVP를 3위팀에서 수상하는 전례 없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주최측에서 저의 실력을 인정해 준 것이다. 이후 청소년배구국가대표에 발탁되는 영광까지 얻었다.

-국가대표로 국내 배구계를 호령하는 등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냈는데
▲그때는 경기대학교 때부터 1년에 3관왕 정도 하던 시절이었고 대학교 3학년 마치고 군에 입대해 군 실업대회에서도 1년에 1~2관왕 정도 했다.

-실업배구에서는 어느팀 소속으로 활약했는지
▲현대자동차서비스 팀에서 1983년부터 1988년까지 활약했다. 당시는 월급제다 보니 비전이 없었다. 운동을 열심히 해도 월급은 나오고 안해도 나오다 보니 지금처럼 연봉제면 한창 열심히 해서 몸값을 끌어 올렸을 나이에 은퇴를 하게 됐던 것 같다.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1981년 루마니아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중국과 경기 했던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중국에게 2년동안 한번도 이기지 못하다가 그 대회에서 처음으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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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늦은나이 고1때 배구 시작
화려한 선수시절 지나 회사원 근무
배구 못잊어 도내 처음 대학팀 창단

선수 스카웃 등 여러 어려움 거쳐
현재는 전국 강호팀과 어깨 나란히  
프로팀 입단 등 후배양성에 힘쏟아   

형님, 아들 국가대표 지낸 배구가족
졸업한 제자들 찾아줄 때 가장 보람
선수들 열심히 훈련해 모두 잘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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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에서 활약을 못한 계기가 있다고 들었다
▲1984년 제1회 대학·실업 통합 대통령배 대회때 대학팀과 실업팀을 왔다갔다 했다. 그때 당시 대학에서 3학년을 마치면 졸업장을 주기로 했는데 마침 대학·실업 통합 대통령배 배구대회가 생기면서 학교측에서 이 대회만 마치면 졸업장을 주겠다고 해서 실업팀과 대학팀에 동시에 선수등록이 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대표팀에서도 활약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1984년 LA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고 1985년 세계선수권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은퇴 후 소속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는데 어땠는가
▲1989년부터 현대자동차비스팀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했다. 코치할 때 대통령배 우승을 못해서 아쉽다. 코치를 하면서 제가 실수한게 선수생활을 한 팀에서 바로 코치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다른 팀에서 코치를 했으면 더 잘했을거 같은데 제가 팀에서 고참일 때 같이 훈련하던 선수들과 어느 순간 지도자 입장으로 훈련을 강하게 시키려고 하다 보니 혼동이 많았다. 제 나름 양심의 가책도 있고 받아들이는 선수들 입장도 ‘자기는 그렇게 열심히 안해놓고’라고 받아들이니 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했다고 들었는데
▲1993년부터 2008년까지 현대자동차 진주지점장을 했다.

-경남과기대 배구팀을 창단해 감독을 맡았는데 언제 창단됐으며 배구판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경남과기대 배구단은 2008년에 창단했다. 당시 지점장으로 근무하는 것 보다 내 나름대로의 배구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이를 50정도 먹으니 회사를 다니면서 돈은 많이 벌어도 내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배구가 그리웠다. 선수들과 같이 뛰면서 운동하는게 즐거워서 지점장을 그만두고 배구판으로 돌아오게 됐다.

-아무런 기반도 없는 신생팀을 이끌어 가기가 쉽지가 않았을텐데
▲맨땅에 헤딩한다는 생각으로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 팀을 창단하고 선수들은 어떻게 확보했는지
▲사실 선수들이나 부모들이 지방에 있는 대학에 선수를 보내는 것을 꺼려 한다. 다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서울, 대구, 수원, 속초 등 전국 각지를 돌며 선수들 직접 스카웃 해서 확보했다. 고생은 했지만 재미는 있었던 것 같다.

-창단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전국체전 우승 등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운동에 비결은 없다.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체육관에서 선수들과 같이 산다. 그게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감독이 같이 있으면 선수들이 없을 때보다 더 신경써서 자기가 해야 될 것들을 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창단 후 첫 졸업생 3명 모두가 지난해 프로팀에 입단하고 올해도 2명의 선수가 프로팀에 입단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2014년 창단 이후 첫 졸업생인 정영호(LIG손해보험), 정민수(우리카드), 용동국(우리카드) 등 3명 모두 프로팀에 입단했으며, 2015년 2월 졸업생인 최돈선(LIG손해보험), 황중호(우리카드) 2명이 프로팀에 입단했다.
팀 성적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취업이 우선이라 개인성적도 중요하다. 어떤 선수를 봤을 때 안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선수가 분명히 잘하는게 있다. 선수별로 잘하는 분야를 찾아 특화시켜 준다. 지금 프로에 입단한 5명도 처음에는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운동이 하고 싶고 해야되고 가정형편이 어렵다던지 하는 등 그 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훈련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잘 되는 것 같다.

▲ 김형태 감독이 선수들 훈련 모습을 보면서 지도를 하고 있다.
-현재 선수 중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는 선수가 있는지
▲김인혁 선수가 있다. U-23 청소년 대표 에이스로 임펙트가 대학선수 중엔 가장 강하다. 스위치도 부드럽고 빠른게 장점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배구계의 대들보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전국대학배구리그의 중간 성적을 결산한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 것 같나
▲올해 사실 성적이 썩 좋지는 않다. 주전선수 7명 중 6명이 신입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올해는 경험을 쌓는 위주로 하고 있다. 그래도 게임이다 보니 이기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게임은 꾸준해야 하는데 잘될 때와 안될 때의 기복이 심하다. 1년쯤 경험을 쌓다보면 자기만의 노하우도 생기고 지금은 저희가 완전한 팀이라고 할 수 없는 정도지만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경험을 쌓고 내년에 우승을 노려볼 예정이다.

-형님도 배구 국가대표 출신이고 아들도 국가대표를 지낸 배구가족인데
▲형님이 동명고 배구부 감독을 지낸 김형필이고, 아들은 현재 우리카드에서 뛰고 있는 김광국 선수이다. 한 집안에 배구선수가 3명이나 되고 3명 모두 국가대표를 지냈으니 배구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들 김광국 선수도 배구선수인데 어떤 계기로 배구선수가 됐나
▲형님이 아들 광국이를 굉장히 좋아해서 배구의 길로 권유를 했다.

-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나
▲다 커서 무슨 조언이 필요하겠는가. 모자란 부분은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한다.

-감독으로써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인가
▲대학리그 경기가 있는 날이면 졸업한 제자들이 와서 응원을 해준다. 다른팀들 보면 그런게 없는데 우리 졸업생들은 자기 시간만 되면 와서 열심히 응원해 준다. 그게 보기좋고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 계획과 포부를 말해달라
▲이제 큰 욕심은 없고 지금 있는 선수들을 졸업시키는 과정에서 사회 나가서도 제자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글/김영우기자·김상목 수습기자·사진/이용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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