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속예술의 뿌리찾아 그 맥을 잇다
한국민속예술의 뿌리찾아 그 맥을 잇다
  • 글/황지예 수습기자·사진/이용규기자
  • 승인 2015.06.15 13: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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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솟대쟁이놀이보존회 김선옥 회장 <솟대쟁이 후예·진주삼천포농악 예능보유자>

 

진주를 기반으로 1800년대 전후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솟대쟁이놀이’가 부활했다. 솟대쟁이놀이판은 한국 민속예술의 복합적인 ‘흥’과 ‘끼’를 한데 모아 제대로 펼쳐 보여준다.   솟대쟁놀이의 앞과장 들머리판은 ‘춤노래마당’으로 공연을 알리는 ‘당산굿’과 장다리걷기 ‘길놀이’, 선대 예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안전을 기원하는 ‘넋전 춤’이 펼쳐진다. 본과장 가온누리판 ‘재주넘이마당’은 진주삼천포농악의 경쾌한‘풍물판굿’이 울려 퍼지며 흥을 돋운다.  한껏 오른 분위기에 장구모양 나무를 줄로 돌리는‘죽방울놀이’, 막대 위 대접, 대야 등을 돌리는 ‘버나놀이’가 어우려져 구경꾼의 눈길을 끈다.  꼰두쇠의 곡예 ‘살판’, 손놀림의 마술 ‘얼른’, 솟대쟁이놀이의 클라이맥스 ‘솟대타기’, ‘쌍줄백이’ 등 다양한 민속기예를 복합적으로 펼치는 ‘솟대쟁이놀이’는 풍물, 남사당놀이줄타기를 모두 담은 민속예술의 모태이자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솟대쟁이놀이패는 진주를 대표해 전국 민속예술무대에서, 세계의 무대서도 한국을 대표해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우리 고유의 장쾌한 음악과 화려한 기예로 세계인의 마음까지 움직여 박수와 환호를 받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중요문화유산으로 등극할 것으로 충분히 기대된다.  전통의 맥을 잇는 자부심과 그 우수성을 전국과 세계에 알리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솟대쟁이놀이보존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김선옥(66) 회장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

 
다음은 김선옥 회장과의 일문일답.

-솟대쟁이패에 대해
▲솟대쟁이놀이패는 1800년대 전후 전주지역을 본거지로 전국에서 활동한 전문예인집단을 말한다. 1920~30년대 활동한 4대 꼰두쇠 이우문에 이르기까지 전승이 지속됐다. 일제강점기 1936년도 황해도 원산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되면서 전승이 끊겼다. 그때 이후 80년 만에 복원된 것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얼마나 유명했나
▲솟대쟁이패는 경기도 지방의 남사당패와 쌍벽을 이루며 서로 교류가 잦았다. ‘경상도 벅구놀이’를 전국적으로 알리고, 갖가지 화려한 기예로 유명세를 탔다.

-솟대쟁이놀이라는 명칭의 의미
▲놀이판을 꾸밀 때 한가운데에 솟대 같은 긴 장대를 세운 뒤 양편으로 두 가닥씩 네가닥의 줄을 늘여놓고 그 위에서 재주를 부린데서 비롯됐다. 일명 ‘솟대패’라고도 한다.

-솟대쟁이놀이가 다양한 놀이종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떤 것인가
▲솟대타기, 쌍줄백이, 버나돌리기, 풍물(농악), 새미놀이(무동), 얼른(요술), 꼰두질(살판), 오광대탈놀음, 병신굿 등 다양한 전통연희종목으로 이루어져 우리나라 전통교예의 전신으로 여겨진다.

 
-솟대쟁이놀이 복원의 움직임이 시작된 시기와 계기는
▲진주지역의 후예들이 2003년부터 죽방울놀이, 장다리타기 등을 시작으로 10여년간 복원을 위해 노력해 왔다. 솟대쟁이놀이의 일부인 진주오광대가 2003년 6월 7일 경상남도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돼면서, 솟대쟁이놀이 복원이 시작됐다.

-솟대쟁이놀이를 알리고 계승하기 위해 어떤 활동들이 있었나
▲2004년 진주예총의 ‘솟대쟁이의 후애’ 첫 공연을 시작으로 전통예술원 마루에서 죽방울놀이, 나무다리타기, 버나놀이, 무동 등의 연행종목을 지속적으로 재현해 왔다. 매년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극장, 현장아트홀, 진주박물관 대강당 등에서 학술 행사 및 공연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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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희예술의 뿌리 ‘솟대놀이’
후예·후손·학자 힘모아 맥 이어 
2013년 보존회설립 본격 복원 추진
 
지난해 솟대쟁이놀판 78년만에 재현
‘한국연희단체 중 최고’ 호평 받아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엑스포 초청공연
 
올해 도 민속예술대회 ‘최우수’ 영예
내년 전국대회 경남대표 출전 사명감

5살때 연희(演戱)배워 민속계승 61년
14년째 대학 전통연희과 교수 출강
진주봉래초 진주농악 강의 20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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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쟁이놀이보존회는 언제 설립됐나
▲오랜노력 끝에 마침내 2013년 12월 28일에 솟대쟁이후예, 후손모임을 시작으로 솟대쟁이보존회가 설립됐다. 2013년 전통예술진흥원에 기금신청을 해 첫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보존회 회원들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진주삼천포농악 예능보유자들이 솟대쟁이놀이 활동을 하고 겸하고 있다. 솟대쟁이패 후예와 후손과 많은 연희자들의 힘이 모여 이뤄졌다. 현재 5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중 후예로써 전승을 받은 사람은 진주삼천포농악 예능보유자인 본인과 진도곤, 박염, 대전웃다리농악예능 보유자 송덕수이다. 

-복원을 위한 과정들, 함께 노력하신 분들에 대해. 넋전 춤은 어떻게 재현했나 
▲공연 시작 전 옛 예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안전한 공연을 위한 ‘넋전춤’은 심우성 선생을 통해 고증 받아 재현했다.

-솟대쟁이패의 살판, 대담에 대해
▲솟대쟁이패의 예인 송순갑 선생의 증언과 재담을 토대로 살판을 복원했다. 이 기록은 심우성 박사의 ‘남사당패연구’‘한국의 민속극’에 수록돼 있는데, 심 박사와의 좌담회를 통해 고증 받았다.

-솟대쟁이 놀이의‘솟대 타기’는 어떻게 복원됐나
▲솟대타기와 쌍줄백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중타기 보유자 김대균선생과 민속학자 한양명 교수를 통해 조언 받았다.

 
-솟대쟁이놀이 중 ‘풍물’은 어떻게 전승됐나
▲1950년대에 활동한 황일백, 조명수, 송철수, 윤판옥, 김도생, 문현재, 조판조 등 솟대쟁이 예인들들과 함께 활동한 강판세 선생이 진주농악회를 구성해 계승할 수 있었다. 특히 가락과 판제는 김선옥, 박염 선생에 의해 솟대쟁이패 스승들로부터 사사받아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솟대쟁이패의 ‘얼른’에 대해서
▲얼른(마술, 요술)은 제가 솟대쟁이 예인 출신의 스승 문일(문현재), 송철수 선생에게 사사받아 재현했다. 부채얼른, 계란마술, 병아리까기, 돈마술, 종이가루날리기, 밥짓는마술, 구슬마술 등 화려한 전통 볼거리를 벌인다.

-죽방울 놀이는 어떻게 복원했나
▲중국 공죽(空竹)연구가 한남수 박사를 모시고 기예와 기술 조언을 받았고, 민속학자 정형호 교수를 통해 문헌자료로 고증받았다.

-복원 후 본격적으로 어떤 공연활동을 펼쳤나 
▲지난해 8월부터는 합숙 연습도 했고, 작년 11월 1일 , 78년만에 진주성에서 재현공연을 가졌다. 이때 학자들로부터 ‘한국의 연희단체중 최고’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 밀라노 공연에 초청돼었으며 경남민속예술축제에 진주시 대표로 첫 출전하게 됐다. 

-지난달 28, 29일 함안에서 열린 제38회 경남민속예술축제 첫 출전에서 1위인 최우수를 차지했는데, 소감과 포부
▲수상은 회원들의 노력 덕분이다. 이번 경남민속예술축제 최우수 수상으로 내년 전국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하게 된다. 남사당패놀이가 전승돼 한국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유네스코 세계무형 문화유산로 지정됐듯이 앞으로 이번 수상을 발판으로 전국에 솟대쟁이놀이를 알리고,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로 거듭 나도록 하겠다.

-더불어 그날 축제에서 1인에게 주어지는 개인지도자상을 수상했는데

▲이름만 저의 이름으로 받은 상이며, 솟대쟁이놀이패의 대표로써 대신 받았다고 생각한다. 저보다는 회원들 노력이 컸으며, 이번 대회 수상은 회원들 덕분이다. 

-민속예술축제 공연을 위해 몇 명의 회원들이 참가했나
▲총 53명의 회원들이 참가했다.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고맙다. 30~40대로 가정을 이끌어야 할 나이인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진주의 전통예술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솔선수범하는 것에 항상 고맙다.

-도 민속예술축제를 위해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
▲솟대쟁이놀이는 한 마당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3시간이 소요되는데 대회는 한 팀당 40분의 시간이 제한돼 시간에 맞추느라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도대회 수상 이후 어떤 여파가 있었나
▲시의 관심이 높아졌다. 시 지원금을 받아 하반기 상설공연을 하게 됐다.

-그 외 앞으로 올해 공연활동 일정은
▲오는 8월 15일 전주무형유산원에서 초청공연일정이 있다. 또한 지난해 11월 1일 공연을 학자들이 보고 한국 연희단체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아, 솟대쟁이놀이로써는 처음으로 올해 9월 이탈리아 2015 밀라노 엑스포에 초청공연을 간다.

-회장님께서 지금까지 해외공연도 참가 하셨나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 ‘농악12차’ 공연으로 프랑스파리, 멕시코, 캐나다 등 다수 공연에 참가해 왔다.

-회장님께서 민속예술에 얼마동안 종사해 오셨나
▲현재 61년 민속예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제 할아버지께서 농악예술인이었고, 제가 5살 때부터 농악과 연희를 배웠다.

 
-강의 활동도 하시는데, 어디에서 강의를 하시나
▲현재는 전국에서 유일한 전통연희학과가 있는 목포 세한대 초빙교수로 매주 목요일 6시간의 실기강의를 한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시기도 하나
▲진주 봉래초등학교에서 진주농악을 20년째 가르치고 있다. 그때 가르친 초등학생이 현재 30대 어른이 되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희예술은 어른이 돼서 배우는 것보다 어릴 때부터 배워야 몸에 배여 많은 사람 앞에서 보일 수 있는 정도가 된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신지 얼마나 됐나 
▲14년 째 강의를 하고 있다. 중앙대 타악과, 경상대 민속무용학과 연희부에서 강의를 한 경력이 있다.

-보존회 회장을 맡게 된 계기
▲처음에는 회장을 맡기가 부담스러웠다. 민속예술활동을 오래 해오다보니 회원분들께서 저를 회장을 맡겨주셨다.

-앞으로 보존회에서 계획하고 있는 일
▲지난해 지원받은 전통예술진흥원에서 올해 지원 신청해 오늘날의 마술과 유사한 ‘얼른’,‘병신굿’ 등 종목을 보완해 올해 11월에도 진주성에서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진주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재담을 들어보면, 드무실, 말티고개 등 진주고유의 옛 말들이 나온다. 20년 전 진주오광대를 시민의 힘으로 복원한 것처럼 진주 삼천포 농악과 진주오광대의 뿌리인 솟대쟁이 놀이를 진주시민의 애정과 사랑이 필요하다. 시민의 많은 관심으로 일취월장하는데 힘을 얻을 수 있다. 솟대쟁이놀이를 통해 진주를 전국으로 세계로 알리고 싶다.

-회장님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제가 맡은 일이니 최선을 다해서 제대로 된 모습으로 내년 전국민속예술대회에 진주를 대표해 참가해 전 국민에게 진주솟대쟁이놀이를 알리고 싶다. 나아가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무형문화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글/황지예 수습기자·사진/이용규기자 

‘솟대쟁이놀이보존회’ 연혁 
2004.11.14. 한국예총 ‘솟대쟁이의 후예’진주 남강야외공연
2006~2012 전통예술원 마루‘솟대쟁이 그들과 후예1~6’공연
2008.05.24. 진주문화연구소 학예굿 
               ‘한국잡희연행의 양상과 한중일 전개과정’
2013. 12 전문예인집단 솟대쟁이패 복원을 위한 후예후손모임
2014. 01.15 솟대쟁이놀이보존회 발족
          05.24 심우성선생 초청 좌담회 개최
          06.07 시연 및 자문회개최
          07.03 넋전춤 연수회 개최
          08.03~10 연희자 합숙훈련
          09.13 진주탈춤한마당 시연공연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전통예술복원사업에 선정
          11.01 진주솟대쟁이놀이 복원재현사업 개최
2015.  
05.22 진주탈춤마당 시연공연
           05.29 경남민속예술축제 진주대표 출전 ‘최우수상’ 수상
                        김선옥 회장 ‘개인지도자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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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사봉 2017-04-13 22:39:02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