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님 존경 합니다
아드님 존경 합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6.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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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복/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경남수필문학회장 역임
 

뇌경색으로 투병하고 있는 87세 할머니와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 12년 째 어머니를 돌보다가 전문 간병사가 된 아들이 늘 곁을 지킨다.


이른 아침 세면실에 들러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오면서 그의 일과는 시작 된다. 침상을 비스듬히 일으킨 뒤 따뜻한 물수건으로 어머니의 얼굴과 몸을 닦아 내고 다독이듯 화장수를 바른다. 가리개를 돌려 친 후에 기저귀와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나서 사뿐히 들어 올려 휠체어에 앉힌다. 머리카락을 곱게 빗질하고 신발을 신긴 후에 TV 앞에 앉힌다. 손놀림이 날래면서도 다소곳하다. 육신의 반쪽이 모두 마비되어 눈에서 입, 귀, 수족까지 굳어버렸으나 드라마나 운동경기를 즐겨 시청하는 게 낙이다. 어둔한 말투로나마 아들과 대화하는 걸로 보아 내용파악은 가능한 듯하다.

어머니가 휠체어에 머무는 동안 아들은 병실 청소를 도맡아 하고 창가에 즐비한 화초를 돌본다. 오랫동안 병원 생활하면서 손수 가꾼 화분들이다. 딴 병실에 비하여 삭막하지 않은 분위기가 바로 그 덕분이다.

어머니와 자신의 끼니 장만 하는 것도 하루 일거리, 입에 죽을 떠 넣어 드리는데 한쪽 입술이 벌어진 상태이니 식사수발도 만만치 않다. 세끼 치다꺼리에다가 새새로 화장실과 재활치료실 들리는 일로 늘 어머니 옆을 맴돌아야만 하는 아들. 다람쥐 쳇 바퀴 돌기 식의 단조롭고도 고달픈 일과를 반복하면서 그 남자는 십년 넘게 병수발을 들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가 수술 끝에 위기는 넘겼지만, 후유증으로 간병은 길어지고 설마 했던 세월이 모자간의 운명을 하나로 묶어버렸다. 혼기도 놓치고 사업도 접은 형편이다. 이따금 어머니 잠드신 밤 나절에 지인들이 불러내면 술 한 잔 나누는 걸로 고된 심신을 풀곤 한다는 그의 말이 왠지 짠하고 안타깝다.

아들의 맘속에 정녕 후회는 없는 걸까. 외출한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깊은 잠도 못 이루며 기다리는 심약한 어머니를 나몰라 할 수 없어 이리도 저리도 못하고 이끌려 살아 온 삶은 아닐까. 내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병실에 새로 들어오는 환자나 보호자들도 하나 같이 그들 모자를 주시한다. 그러고 나면 감동어린 치하를 잊지 않는다.

스무날 가까이 모자의 삶을 곁눈질하면서 인생의 뒤안길을 가슴으로 느껴 본 기회였다. 아무나 해내기 어려운 일을 꿋꿋이 실천하고 있는 그 아들은 이즘 시대에 보기드믄 효자임이 분명하다. 퇴원하던 날 그의 손을 잡았다.

“아드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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