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메카 구운몽의 고장 남해
인문학의 메카 구운몽의 고장 남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0.2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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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우/전 남해문화원장
-남해유배인물과 유배문학의 대표 서포 김만중 선생
남해역사연구회은 지난 7월 남해유배인물과 유배문학의 대표격인 서포 김만중 선생의 정신을 선양하고 그의 작품을 통하여 유배지 남해를 재조명하기 위한 서포추모제와 아울러 ‘인문학의 메카·구운몽의 고장 남해’선포식을 개최했다.

남해역사연구회(회장 정의연)에서는 지난 7월말께 용문사에서 ‘인문학의 메카·구운몽의 고장 남해’를 브랜드화 하기 위해 제5회 서포선생 319주기 추모제 봉행행사와 함께 선포식을 가지기도 했다.

이는 서포 문화재를 대한민국 으뜸 문화재로 만들어 전국유배문학의 메카로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구운몽의 창작지는 남해다
남해가 가지는 유배문화 역사성을 지키면서 남해의 가장 대표적인 유배객으로 손꼽는 서포 김만중 선생의 “구운몽” 창작지임을 주장하고 나선 한국유배문화연구소(소장 박성재)는 서포 김만중선생의 작품 구운몽의 저술지 남해를 알리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율적인 참여를 통하여 ‘전국 규모의 문화축제의 장’인 ‘서포 문화제’ 개최를 위한 기반 조성은 물론 서포선생의 충·효·문학 교육의 장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서 남해가 ‘인문학의 메카’로 탄생하는 계기를 마련코자 했다.

2010년 11월 1일 남해유배문학관 개관 이후 처음 맞이하는 제319주기 서포 김만중선생의 추모제를 통해 ‘인문학의 메카·구운몽의 고장 남해’선포식을 함으로써, 김만중 문학상의 위상을 높이고 동시에 남해유배문학관의 활성화를 기하고, 구운몽의 저술지가 남해임을 전국 곳곳에 알리고자 했다.

남해역사 연구회와 한국유배문화연구소은 서포 김만중선생의 “구운몽의 고장 남해”를 케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선포식을 통하여, 남해를 상징하는 옛 천재 선비들의 공부 방법, 그들의 육아·자녀교육 방법을 관광 상품화하여 ‘구운몽의 고장 남해’를 세계적인 보물섬 브랜드로 육성하고 ‘인문학의 메카·구운몽의 고장 남해’ 선포식은 남해가 유배문학의 산실이며, 문학의 메카임을 강조하면서 관련 학술, 행사 등의 중심지역으로 시원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구운몽의 창작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서포의 두 번째 유배지인 평북 선천(숙종 13년~14년)에서 지어졌다는 설과 세 번째 유배지로 온 남해(숙종 15년~18년)에서 지어졌다는 설이 있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운몽의 창작연대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문헌상으로 보아 남해설로 확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학자로서 처음 구운몽에 대해 김태준(조선소설사)을 통해 서포가 남해 적소에서 모친의 병을 위로하기 위해 창작되었다는 기록이 남이 있어 왔다는 것이다. 서포는 두 가지 소설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하나는 목적소설(目的小說)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이고 또 하나는 이상소설(理想小設) 구운몽(九雲夢)이라 한다.

서포 김만중은 (1637~1692)은 조선조 후기 숙종때의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작자로서 우리 국문학계로부터 특별히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이 구운몽의 창작 연대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남해설로 확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남해 노도(魯島)섬에서 56세를 일기로 유배생활 형을 마감
숙종 15년 1689년 3월 7일에 남해로 유배와서 숙종 18년 1692년 4월 30일 줄곧 유배 생활을 해왔던 노도(魯島)섬에서 56세를 일기로 유배생활 형을 마감 했다.

남해적소에서 위리안치하게 되어 약 3년 2개월의 유배기간을 지내면서 서포는 여기에서 약 10개월 동안 기거하던 중 모부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사무치는 시상으로 구구 절절이 피나는 인생에 대해 창작 작품인 구운몽 글귀를 남겼으리라 본다.

그래서 시기와 동기로 보아 남해작으로 볼 수 있어 “구운몽”의 창작지는 남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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