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재 연구와 항일투사 발굴에 온힘
지역문화재 연구와 항일투사 발굴에 온힘
  • 글/김상목·사진/이용규기자
  • 승인 2015.07.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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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학자 추경화 선생

▲ 추경화 선생은 지역문화재 연구와 항일투사 발굴에 몸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부경남을 대표하는 향토사학자인 추경화(65)씨는 30년째 지역 문화재에 대한 연구와 항일독립투사 발굴에 몸 바쳐 행동하는 사학자로 유명하다. 촉석루 국보재지정운동을 비롯해 서부경남에 있는 역사 문화재들의 품격을 높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잊혀졌던 170여분의 항일독립투사들의 자료를 발굴해 공훈을 받게 하고 독도리를 만드는 등 서부경남에서 독보적인 향토사학자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추경화씨를 소개한다.

다음은 추경화씨와 일문일답 내용이다.

-현재 진주문화원에서 향토사연구실장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지역의 향토 역사분야 전반을 연구조사해 발표하고 서부경남을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고 산청 하동 사천 함양 고성 등 자료를 바탕으로 독립유공자들을 찾아 훈장표창을 받게 해드리고 있다. 또한 서부경남의 문화재들의 품격을 높이는 운동을 하고 있다. 이 일을 한지 30년 정도 됐다.

-여러 책들도 펴내신 걸로 아는데 어떤 것들이 있나
▲대표적으로 항일투사열전이 있는데 1995년에 1권을 발행하고 2년뒤에 2권을 발행했다. 부제목은 ‘항일투사 999인’으로 정했는데 여기에는 999명의 잊혀진 항일투사를 발굴해 명예를 복권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하동독립유공자 공훈록(2000년), 함양 항일투사록(2007년), 진주항일운동사(2010년), 산청항일운동사(2011년)등이 있다. 시집도 한권 출간했는데 ‘아름다운 항일정신’으로 항일독립투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추모자료집 등 여러권이 더 있다.

-독도 의병대 의병대장으로 독도리를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들었는데
▲2000년에 독도리를 만들고 공시지가를 산정하게 해달라고 진주지역 김재경 국회의원, 경상대 교수들, 진주 교육대 교수들, 변호사 11명, 환경운동 단체, 시민인권연대 관련하신 김덕현 교수, 정보주 교수, 또 교장 선생님들과 여러사람들 해서 약 60명의 서명을 받아 하동출신 행자부 김기재 장관, 울릉군수, 울릉군의회 등에 청원서를 제출해 2000년에 독도리가 만들어지고 공시지가가 산정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독도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되서 일반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는데 이 때부터 민간인 출입이 허용돼 지금은 1년에 수만 명이 찾는 최고의 관광지로 부상했다.

▲ 추경화 선생은 진주 촉석루 국보 재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촉석루를 시작으로 서부경남의 대표 다른 문화재들도 문화재 품격 올리기 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진은 촉석루 전경.
-촉석루 국보 재지정 운동을 하시는 걸로 아는데
▲촉석루는 원래 국보였는데 한국전쟁 당시 불타 소실되고 기단석의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휴전직후 지역유지들이 힘을 모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중건을 했다. 당시에 다시 국보로 재지정해 달라고 했으나 중건된지 50년이 지나지 않으면 국보로 지정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지금껏 문화재 자료로 등록돼 있다. 그런데 2012년 남대문이 소실되고 복원된 뒤 국보1호로서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촉석루 국보 재지정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진주성 안에는 촉석루 뿐만 아니라 경남도청의 정문이었던 영남 포정사를 비롯해 창렬사 의기사 서장대 등 여러 문화재가 있는데 이 문화재들도 다 국가지정 문화재가 아니라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 있다. 그래서 이번에 촉석루를 시작으로 다른 문화재들도 문화재 품격 올리기를 진행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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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지역문화재 연구  
항일 독립투사 발굴에도 힘써
현재 독립운동가 170명 공훈 
 
진주 촉석루 국보지정운동 등
역사문화재 품격높이기 추진
서부경남 문화재 재조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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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품격올리기운동이란 무엇인가
▲전라도에 가보면 ‘문화재품격올리기운동본부’라는 것이 있다. 이 운동본부는 지역에 있는 문화재들의 등급을 올리기 위한 운동을 하고 많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타 지역의 예를 들면 고택의 화장실도 촉석루보다 문화재 등급이 높다. 이는 지역 역사학계가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예다. 반드시 바로잡아 서부경남의 문화재가 재조명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 추경화 선생이 논개의 충절이 있는 바위인 의암이 현재 13조각으로 절리가 진행 중이고 최근에는 박리도 함께 진행되어 시급한 보존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의암의 표면이 군데군데 쪼개져 있다.
-최근 의암이 절리가 진행 중이라고 하셨는데 정확한 실태는
▲의암은 논개의 충절이 있는 바위로 현재 13조각으로 절리가 진행 중이다. 이것이 촉석루쪽에서 바라보면 잘 모르지만 강쪽에서 의암을 바라보면 상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박리도 함께 진행되어 시급한 보존대책이 필요하다.

-추 선생이 생각하는 보존대책은
▲저는 남강의 물길을 돌려 유속을 늦추고 광개토대왕비처럼 유리각을 만들어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남강이 진주성을 방비하는 하나의 장치였지만 지금은 그 기능이 필요가 없다. 그래서 물길을 망경동쪽으로 돌려 유속을 늦추고 유리각을 세워 시급히 보존해야 한다.

-여러 항일독립운동가 발굴작업을 하시는데 계기가 무엇인가
▲증조할아버지가 조선말기 때 의병부대장으로 활동하셨는데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국립도서관을 찾았다. 서울국립도서관에는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많아 당시에 전국에서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저만 조상을 찾을 것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제가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도와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그분들의 명함과 연락처를 받아들고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몇분의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했나
▲170여분 정도 발굴해서 공훈을 받게 했다.

-역사 자료를 찾는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향토사학자로 잊혀진 향토문화를 찾아다니면서 지역의 문화재를 발굴하기 위해 공부도 하고 관심을 가지다 보니 과거 자료들도 많이 수집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게 되었다. 또 대학에서 문헌정보학과를 전공했는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학 도서관이나 지자체 자료실, 지역 문화원 등의 자료들도 큰 도움이 된다.

-그중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나
▲모든 분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신석우 선생을 들수 있다. 신석우 선생은 대한민국 국호를 제안하신 분이다. 임시정부 회의에서 “대한제국을 승계하는 민국”이라는 뜻으로 대한민국을 제안했다 그러자 “우리가 대한으로 망했는데 또 다시 같은 말을 쓸 필요가 있냐”는 반대여론이 일자 “대한으로 망했으니 다시 대한으로 흥해보자”고 말해 대한민국의 국호가 정해졌다. 그래서 1995년 독립장을 받게 해드리고 기념비를 건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금산면 갈전리에 있는 항일투사 추모비 건립에 앞장선걸로 아는데
▲진주와 진양의 항일투사 147명의 이름과 공적을 한분당 27자씩 해서 추모비를 건립했다. 진주 3·1운동의 발상지임에도 항일투사를 기리는 추모비 하나 없길래 안타까워서 추모비 건립에 앞장서게 됐다.

▲ 추경화 선생이 지난달 산청군청 정문 앞에서 4일간이나 항일독립투사기념사업 추진을 독려하는 단식투쟁을 벌인 가운데 산청문화원과 연계해 사업추진을 약속했다.
-민용호 의병장 추모사업과 관련해 단식투쟁을 하셨는데 경과가 어떤지
▲민용호 의병장은 산청군 출생으로 강원도에서 활약한 의병장중 한명으로 당시 30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항일투쟁을 한 의병장이다. 그런데 산청군에서는 비석하나 세워져 있지 않다. 강릉의 경우 흉상을 만들고 공적비를 세우는 등 많은 예산을 투입해 민용호 의병장을 기리고 있으나 산청의 경우 항일투사기념사업에 연간 100만원만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4일간 단식투쟁을 한 끝에 산청문화원과 연계해 항일독립투사기념사업을 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이렇게 많은 항일독립운동가들과 유적들이 지금까지 왜 묻혀 있었다고 생각하나
▲후손들의 무관심이 크다고 본다. 내가 기록과 자료를 찾아 보훈청에 신청을 하려고 하면 유족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데 유족을 찾아가 만나보면 “아닐 것이다”, “잘못 안 것이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는 35년간의 일제 치하에서 먹고 살기 위해 숨기고 살아서 그렇지 않나 싶다. 앞으로 후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자각한다면 훨씬 더 많은 분들이 공훈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 계획
▲문화재품격높이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예를 들어 안동의 경우 안동역 앞에는 1940년대 소위 대동아전쟁 때 사용하기 위해 일제 때 건립한 물탱크가 촉석루, 영남포정사, 북장대 보다 등급이 높다. 심지어 안동지역 고택 내 화장실과 바깥 변소 등이 촉석루, 영남포정사, 북장대, 의기사, 창렬사 등과 비교해 등급이 훨씬 높다. 하회마을의 양진당은 맨 처음으로 건립됐다는 안내판이 있고 보물 306호로 지정됐는데 창건 395년이 지난 영남포정사, 북장대는 4등급 낮은 지방 문화재 자료에 그치고 있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건립된 지 395년이 지난 건조물이 지방 문화재 자료에 그친 경우는 전국에 하나도 없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제가 진주에 와서 놀랬던것 중에 하나가 진주사람들은 똑똑해서 조상들의 항일 운동을 다 알고 있는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진주관청이 불에타 많은 문서들이 불타는 바람에 근거가 없어 아직도 많은 항일 투사들이 공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이 안타깝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한분도 빠짐없이 공훈을 받을 수 있도록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 할 예정이다. 글/김상목·사진/이용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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