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과 한반도 냉전
광복 70주년과 한반도 냉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8.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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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균/(주)동명에이젼시 대표·칼럼니스트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친서로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인 이희호 여사를 평양으로 초청할 때만 해도 두 사람이 만나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논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그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다. 가장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여준 인물은 이 여사를 초청해 놓고 외면한 김 제1위원장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초청했다면 이 여사를 직접 만나는 게 정상이고 그게 예의이다. 93세 고령에 방북한 이 여사 앞에 김 제1위원장 자신은 고사하고 김양건 아태평화위 위원장마저 나오지 않았다. 이 여사의 방북 의미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로 작정하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결례가 아닐 수 없다. 그 때문에 이 여사가 준비되지 않은 방북을 서둘렀다는 소리까지 들리는 판이다. 남북대화의 계기를 차버린 북한은 이제 빈말로라도 대화를 언급할 자격을 잃었다. 사실 면담 거부는 남북 간 냉랭한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신호를 남측에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최근 북한이 약50년 동안 중단했던 지뢰도발을 광복 70주년 행사가 한창인 때에 자행한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남북간 화해협력과 통일을 염원하는 정부와 국민들에게 침을 뱉은 격이다. 이희호 여사를 초청하고도 얼굴조차 내밀지 않은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뢰 도발까지 자행함으로써 남북 관계에 대한 자신의 의중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북측은 우리측의 당국 간 대화 제의 전화통지문을 접수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대외적으로 ‘제2의 한국전쟁’ 운운하며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으니 남북 관계는 더욱 암담할 뿐이다. 북한은 정녕 남북 관계 개선을 외면할 셈인가. 북한은 속히 도발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 제의에 응해야만 한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남북대화에 나설 의도가 있었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게다.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김 제1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 당국자들이 이 여사를 만나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마땅했다.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전직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이 여사는 남북 당국의 메신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이 이 여사 방북을 당국 간 대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광복70주년을 맞아 북한은 15일부터 표준시를 30분 늦추겠다고 발표한 것도 마찬가지다. 일제 잔재 청산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누가 봐도 고립을 자초한 행동이다. 우리도 이승만정부 때 독자적 표준시간을 사용한 적이 있으나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불편함 때문에 다시 지금의 도쿄 표준시간으로 환원한 경험이 있다. 북한의 다른 시간대 사용은 남북의 이질화만 심화시킬 뿐이다. 당장 개성공단의 혼란이 우려된다. 당장 ‘서울 시간’과 ‘평양 시간’이 달라져 개성공단 등 남북협력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남북 간 이질감도 한층 심해질 게 분명하다.

북한의 이 여사 홀대나 표준시 변경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북한의 독단적 ‘마이웨이’다. 하지만 남북의 불통 고착화는 북한 탓만 할 일은 아니다. 경제적 인센티브 없인 어떤 남한과의 사업도 도모하지 않는 게 북한 정권의 속성이다. 이에 비해 박근혜 정부는 대북 원칙론에 입각해 5·24 대북 제재 조치를 고수하고 있다. 북한에 현금은 물론 쌀·비료 등 외국에 내다팔 수 있는 물자는 죄다 틀어막고 있다. 이런 터라 북한 내 대남 유화파들이 긴장 완화를 위해 움직이려 해도 꼼짝달싹할 공간조차 없게 된 셈이다. 한반도는 광복 70주년을 맞았다. 북한은 민족과 역사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북한이 대화의 끈을 놓았다고 해서 우리마저 놓는다면 남북관계는 영영 제자리다. 우리정부가 대승적 견지에서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사실 한반도의 현실은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는 지금의 남북관계가 냉전이 극에 달했던 70년대와 뭐가 다른지 묻고 싶다. 독일도 서독의 주도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통독이라는 세계사적 사건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다. 원칙도 좋지만 남북한 긴장 완화를 위해 우리가 먼저 유연성을 발휘할 때다.

솔직히 남북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자원은 남쪽이 훨씬 많이 갖고 있다. 우리 정부의 의지에 따라 남북관계가 좌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길을 열어야 한다. 당장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섣부른 통일 논의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현 상황이 위기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미국 중국 등과의 대북 협력을 강화해 어떻게든 김정은의 태도를 바꿔놓을 방안을 찾아야 한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군사적 긴장수위만큼은 더 높아지지 않도록 위기대응 능력만큼은 정부가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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