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공감
서예=공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1.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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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렬/한국서예협회
진주지부 부지부장
서예라 하고  서도라고도 하고  서법이라고도 하는 서 예술의 장르는 모두가 알고 있는 아주 오랜 동안 존경과 덕망의 상징이었다. 공부의 상징이요 동양예술의 상징이었던 서예가 거세게 몰아치는 신문물에 의해서 서서히 퇴색되어 가고 있다. 진주시내 그 많던 서실도 이제 몇 개 남지 않았고 서예학원을 운영 하시는 분들은 더욱 어려워 명맥만 이어갈 뿐이다. 물론 서예인도 줄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층에서 서예를 기피하기에 서예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이상하게도 내가 접하고 있는 분야는 모두가 그렇다. 시작이 잘못 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시작을 잘못 한 것일까! 내 어릴 적엔  여섯 살 터울인 형 등에 업혀 종숙께서 운영하는 서당에서 함께 배운 천자문을 초등학교 입학 한참 전에 익히고 동몽선습을 공부한 기억이 있다.

부자유친(父子有親)-부모는 자식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라. 군신유의(君臣有義)-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의리를 바탕에 두어야 한다. 부부유별(夫婦有別)-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서로 침범하지 못할 인륜의 분별이 있어야 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는 사회적인 순서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붕우유신(朋友有信)-친구사이 지켜야하는 도리는 믿음이라는 오륜(五倫)이 기억난다. 그 당시 우리 집 벽에는 연력(당시에는 달력이 없었다)과 함께 언제나 볼 수 있도록 삼강오륜이 적힌표지가 붙어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등 너머 한 공부가 이후의 학창시절에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 쪽만 치우치다 보니 실학 부분엔 많이 모자람도 느꼈다. 타고난 끼가 있었는지 아니면 모자람을 채우려고 한 본능인지는 몰라도 예술이 가미된 것에 난 항상 매료 되었다. 그래서 난 언제나 잘 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고 그것에 매진을 했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에는 매우 유용하고 또 주목을 받는 문자 디자인이기도 하였다.

김돈희가 쓴 ‘東亞日報’ 표제라든가 손재형이 쓴 ‘現代文學’의 표제나 ‘종근당’ 등의 상표가 바로 그러한 예이다. 그런데 요즘 서예가 아닌 ‘손글씨’라는 새로운 장르가 태어나 젊은이들에게서 호응을 받고 있다. 손글씨 중에서 가장 예술적인 글씨인 서예가 오히려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상을 바로잡아 보고자 하는 노력들이 서예가들 쪽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으니 지켜볼 일이다. 서예가 찬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예인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한자로 된 문장을 골라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걸어놓고 감상을 시키면 겉모습만 보고 만다. 질문도 없다. 글자를 모르는 것이 본인의 탓이 아니라 제도적인 당연함이 짙다.

그래서 요즘은 쉬운 글, 작은 형태의 설명이 들어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타난다. 공감에 다가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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