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더불어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9.2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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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비정한 세상이다. 돈 앞에 벌어지는 각종 범죄와 다툼, 배신과 살인은 생명존중도, 인륜도, 인정(人情)도 고갈되어 발가벗고 달밤에 체조하듯 꼴불견의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우리는 고통 없는 삶이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고통이 점차로 줄어들 것을 믿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더불어 아파하고 함께 울어줄 사람이 그리운 세상이로다.

점차 불평등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이젠 면역이 되어 감각도 둔해져버렸다.

물에 뜬 해파리처럼 떠돌지 말고, 심지를 굳게 하여 건전한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목표란 어떤 기간에 이렇게 하면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예측에다 약간의 무리를 가미한 것이다. 그러나 무리가 지나치면 허황된 목표가 된다.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이듯이 사려 깊은 삶이라야 행복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마련한 자리에 앉게 된다.

너무 무리한 목표이면 겉은 태연한 척하지만 마음은 늘 울적하여 패배감에 젖기 쉽다.

약간만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해내겠다는 투지를 불태워보자.

웅덩이를 파놔야 개구리가 모여든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목표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고, 어떤 어려움도 뚫고나가야 한다. 방심하면 방바닥에서도 낙상하고, 방망이가 가벼우면 주름이 잡힌다.

일은 엄중하고, 정중하게 혼신의 노력을 다 해나가야 한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통을 싫어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건가를 찾아내보자.

행복과 고통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두 가지로 분류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중환자거나 굶어죽을 상태가 아니라면 내적 평온은 사랑과 자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타인의 행복에 마음을 쓰면 쓸수록 자신의 행복은 더욱 확대되며, 남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내면 낼수록 자신도 편안해짐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배운 대로 살게 된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다. 한 개인이 아무리 유능하고 건강하고 똑똑하더라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천하의 독립심이 강한 사람도 병이 들거나, 어린이거나, 너무 늙으면 다른 사람도움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이유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며 서로 돕고 살펴주며 함께 살아가자.

우울증환자 대부분은 물질적인 부족보다는 주위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애정결핍 때문이다. 내이익만 생각하며, 방에 가면 더 먹을까 부엌에 가면 더 먹을까 머리 굴리지 말자.

그 어떤 보석이나 재물로부터는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사랑은 오직 인간에게서만 받을 수 있다. 세상인심이 삭막해져서 미운 강아지 우쭐거리며 똥 싸듯, 얄밉게 구는 사람들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 석 자에 책임을 지고, 타인의 행복에도 마음을 쓰면서 살아가자.

밥인지 죽인지는 솥뚜껑 열어 보아야 알 수 있고, 일은 노력의 결과를 보아야 알 수 있다. 하는 일도 없이 방 안 풍수(風水)처럼 이러쿵저러쿵 말만 앞세우지 말라.

오늘도 인재는 계속 탄생하고 있다. 노력에 따라 어제의 인재가 오늘의 둔재로, 어제의 둔재가 오늘의 인재로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자아초월 심리학자인 프렌시스 보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관계 문제와 이면에는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일, 사람, 만물, 모두를 사랑하자. 멍청한 놈 먼 산 바라보듯 아까운 청춘 눈 뻔히 뜬 채 허비하지 말자. 바보는 목이 말라서야 우물을 파기시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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