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에서 하얼빈까지
명량에서 하얼빈까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0.18 17:5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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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ㆍ한민족 역사문화공원 공원장

전라남도 진도와 해남사이의 좁은 물목, 서해의 전라우도와 남해의 전라좌도 바닷물이 한꺼번에 밀고 쓰는 좁은 물목. 우레같이 울면서 밀고 돌아드는 물길과 그 물길을 타고 더욱 빠르게 밀려오는 왜군의 선단들. 울돌목, 명량에 서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민초들의 나라의 존망에 앞장서서 그 물결을 헤쳐 나가던 모습이 보인다. 명량, 험난한 전쟁 속, 나라의 격침을 우뚝 서서 결단코 이겨낸 장군과 조선수군, 그들과 생사를 함께 한 민초들의 힘을 느낀다. 1598년 10월 25일 (음력 9월 16일) 하루 낮 동안 폭풍 앞의 촛불 같았던 조선의 명줄이 다시 이어졌다. 그로부터 한 달이 안 되는 날, 장군의 막내아들 ‘이 면’이 아산 고향땅에서 왜군의 칼날에 고혼이 된다. 장군은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신가. 하룻밤이 일 년 같구나” 하시면서 3일간 눈물을 참고 계시다가 동네의 가장 먼 집을 택하여 밤새껏 울면서 아들을 보내드린다. 모두 자신의 감정보다, 군의 사기를 고려하심이다.


1598년 임진왜란을 겨우 물리친 조선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상실하더니 경술년(1910년) 8월 29일 기어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버렸다. 욕망 그 자체인 일본 명치유신 정권의 줄기찬 침략 근성에 의하여 조선은 임진왜란과 달리 완전히 패망한다. 조선에서 막아내지 못하니 중국 또한 깊숙이 ‘난징(남경)’까지 침공한 일본군에 의해 대학살을 당한다. 1937년 12월, 6주간에 걸쳐 30만 명의 목숨이 각종방법으로 가장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이 학살극은 이미 조선 땅에서 학습 될 대로 학습 된 일본군의 모습이었다. 인간이기를 거부한 짐승 같은 행태는 ‘뉴욕 타임스’지의 ‘더딘 기자’등 외국인기자들에 의하여 전 세계로 보도된다. 인류사의 부끄러운 역사의 장본인들이 바로 일본 천왕과 ‘이또 히로부미(이등박문)’ 일당이다.

조선을 침탈하고 빼앗은 ‘이또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쏜 탄환에 명중당하여 숨을 거둔다. 저격 직후 안중근 의사는 브라우닝 M1900 권총의 탄환을 한발 남긴 채 우뚝 서서 ‘꼬레아 우레(코리아 만세)’’를 외친다. 안중근 의사의 투쟁은 감옥 에서 오히려 빛난다. ‘이토히로부미’의 ‘15가지의 죄상’을 전 세계에 웅변하고, 힘찬 말과 글과 ‘중근 체’라는 웅혼하고 미려한 서예로 일본의 지식인들을 매료시키면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한다. 서문에서만 보아도 한중일 삼국의 경제 공동체 건설, 삼국의 공동화폐 사용. 공동의 군대 양성 등 현대적 관점에서 보아도 혁신적인 밝고 웅대한 ‘동양평화론’이다. 이에 놀란 일제는 집필을 보장한다는 법정에서의 약속을 뒤집고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한다. 집필 11일 만인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로 5개월 전, 안중근의사의 하얼빈 거사일인 26일이며 ‘이토’가 숨을 거둔 바로 그 시각이다. 일제의 속 좁은 복수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중근의 어머니는 ‘그 아들에 그 어머니’란 말이 대신하듯이 맏아들의 곧고 밝은 죽음의 길을 알린다. “응칠아(안중근의 아명),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다른 맘먹지 말고 죽으라” 한민족의 어머니이시다. 안중근의사는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지어주신 옷을 입고 사형대로 나아가셨고 그 시신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를 병원 의사로 착각하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안중근 장군’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덤이 있든 없던, 장군이든 의사이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그 분들의 생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생은 몸이 아니라 뜻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다. 위인만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삶도 정보화 되어 인류의 잠재의식 속에서 영생한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범인들도 국가와 지구촌의 존망에 책임이 있다. 그러기에 ‘국가흥망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이며,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 이다. 명량과 하얼빈의 상황은 전혀 다른 시공간의 역사이지만 ‘나와 민족과 인류를 구하려는 마음’만은 하나이다. 두 분이 목숨으로 지켜낸 것은 국토를 바탕으로 한 민족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내려오는 단군 할아버지들의 정신이다.

“널리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어, 진리의 세상을 이루어라.”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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