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속에 사는 것은 비극이다
착각 속에 사는 것은 비극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0.27 18:3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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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고통과 직면하게 된다. 태어나서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순간까지 고통의 연속이다.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한 사람 중에는 순간의 감정 때문에 미래를 보지 못하고, 밧줄에 목을 걸거나, 번개탄을 피우고, 투신도 해버린다.


그런 간단한 방법하나면 삶의 고통은 끝나겠지만 혹독한 지옥의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불행을 싫어하지만, 불행은 수시로 찾아든다. 다 같이 주어진 삶을 자신이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지게 된다. 모두가 자기할 나름이다.

같은 전기도 불을 밝혀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감전되어 죽기도 한다.

자신의 언행과 생각의 차이가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 되는 것이다. 댓바람에 꽁꽁 언 후에 홑옷 귀한 줄 알면 이미 늦다. 직장에서도 나보다 못한 사람이 상사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상사와 마찰을 빚는 것은 호랑이 콧구멍 쑤시는 것만큼 위험한 짓이다.

상사는 최고 책임자의 신임으로 중책을 맡은 것이다. 특히 직속상사와의 마찰은 범에게 강아지 맡긴 것만큼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바보는 거울을 보고 제 얼굴이 제일 잘났고, 자기가 제일 똑똑한 걸로 착각한다. 겉은 그럴싸하고 실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호법당(好法堂)이나 불무영험(佛無靈驗)이라한다. 착각 속에 사는 것은 비극이다.

중생은 마음에 들면 취하고, 화가 나면 싸우고, 겨우 선한 마음으로 돌렸다가도 금방 호떡 뒤집듯 탐욕과 분노를 폭발해버린다. 그래서 베주머니에 바람 담는 것처럼 헛수고의 반복이다. 소리는 양손이 부딪치면서 난다. 그러나 소리 자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면, 지금도 소리가 나야한다. 모두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소멸된다. 탐욕도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곧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탐욕도 본래 존재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늘 욕심 때문에 번뇌에 빠지게 되고 고통당하게 된다.

‘나’에게 이익이다 싶으면 똥에 쉬파리 달라붙듯 하는 것이 중생심이다. 고운 심성으로 변화해나가며 참다운 삶을 살아가보자. 모든 것을 넉넉하고 덕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자.

성취란 작은 것부터 시작, 점점 발전해 나간 것이다. 과거에 미국인 한사람이 자동차에 네 사람을 태우고 비호처럼 달릴 때 일본인들은 한사람이 인력거에 한 사람을 태우고 꽁지에 불붙듯 뛰었다. 그때 우리는 네 사람이 가마에 한사람을 태우고 걸어갔다.

지금은 우리도 미국, 일본 못지않게 더 많이 태우고 더 빨리 달리고 있지만 이것도 하루아침에 이루어낸 결과는 아니다. 쾌쾌 먹은 사고나 고정관념을 벗어 던져버리자.

범은 무섭고 가죽만 탐내듯 무슨 일이든 겁부터 먹지말자.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힘겹더라도 젊고 아까운 인생을 헛늙지 않도록 노력하자. 더 낳은 미래를 향하여 열의와 젊음의 지각이 샘솟게 하라. 수학에 불변의 법칙이 있듯, 성공에도 불변의 법칙이 있다.

진리를 향한 영롱한 눈빛과 단아한 몸가짐으로 첫째, 진실 하라. 둘째, 부지런 하라.

셋째, 화합하라. 틀림없이 성공한다. 반대로 첫째, 거짓말 많이 하라. 둘째, 나태 하라. 셋째, 편을 갈라 자꾸 싸움질하라. 틀림없이 망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켜야할 약속과 규칙, 법률과 규범이 있다. 이런 것을 바르게 잘 지킬 때 얻어지는 덕목이 바로 인격이다.

지위가 높아도 마음은 낮추어 먹자. 제멋대로 살아가면 인격적 부적응 자가 된다.

더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더 많은 것에 감사하라. 철석같은 의지와 서릿발 같은 결심으로 마음속의 풍요가 먼저일 때 무명의 터널을 지나 영원불변의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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