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흉내만 내며살지 말자
남 흉내만 내며살지 말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1.17 18:3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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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인생의 길은 걸음걸이마다 스트레스와 걱정의 연속이다. 힘든 인생길이지만, 보리까끄라기도 쓸모가 있듯, 어느 누구도 무시하거나 업신여겨도 좋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돈 놓고는 못 웃어도 아이 놓고는 웃는다는 말은 돈보다는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노숙자라도 천시하지 말아야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달콤한 말장난으로 다른 사람을 현혹하지도 말아야한다. 보리 안패는 삼월 없고, 나락 안패는 유월도 없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기 보다는, 여유 있는 진실한 삶이 중요하다.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가 있었다. 그는 장난이 심하여 거짓말로 비구들의 수행을 방해하는 일이 있었다.

이를 전해들은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물을 떠오라하여 발을 씻은 후, 이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 물었다. “물이 더렵혀져 마실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그릇에 밥을 담을 수 있느냐 묻자,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 더럽고 오만한 마음을 담은 몸 역시 깨끗하지 못하다.

거짓말 하고 장난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하셨다. 이렇게 부족한 사람을 가르칠 때는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이며, 자상하고, 명확하게, 정감어린 태도로 인격적 교감을 이루어 스스로 깨닫도록 가르쳐 주어야한다. 그래야만 배우는 자가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산이 옥을 품고 있으면 초목에 윤기가 돌고, 강물이 보배구슬을 담고 있으면 언덕의 초목들이 시들지 않고, 사람도 마음속에 보배구슬을 품고 살아가면 가족과 주변에 생기가 돈다. 우리는 이 우주 가운데 오직 하나 뿐인 소중하고도 독특한 존재들이다.

“인간의 역사는 그 근본에 있어서 창조의 역사이다” 독특한 존재답게 남 흉내만 내지 말고 창조적으로 살아가자. 옛날, 찢어지게 가난한 까막눈 아버지가 가난과 무식이 한이 되어 아들만은 대학까지 보내주기로 작심하고, 빚을 얻어 아들을 한양으로 유학을 보냈다.

추운 겨울날, 아들로부터 잘 있다는 편지가 왔다. 답장을 써야겠는데 한 번도 글을 써본 경험이 없어 난감했다. 고심 끝에, 아들의 편지를 살짝 모방하여 썼다.

“아들 전 상서.

아들아! 추운 날씨에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애비는 의복이 남루하야 골목출입이 번개로다. 하숙비는 몸소 가지고 갈 터인즉, 애비걱정마시고, 객지에서 부디 몸 건강하시고, 공부나 잘하소서. 고향에서 애비올림.”

기가 막히게 잘못된 모방의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는 하숙비를 마련,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한양의 아들을 찾아가는 중의 일이다.

옆 좌석의 미국인이 영문판 신문을 읽고 있었다. 꼬부랑글씨를 처음 본 아버지는 신기한 눈으로 자꾸만 들여다보았다. 미국인은 관심꺼리 기사라도 있나싶어 한 장 빼드렸다.

받아들자마자, 거꾸로 쫘 악 펴들고 입술을 달싹달싹, 옆으로 쫘 악 펴들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는 시늉을 하였다. 주위 손님들이 막 웃었다. 창조는 어려워도 모방은 쉽다.

그러나 무조건 남 흉내만 내지 말라. 독창적인 삶은 항상 불완전한 것이지만 부단한 변전(變轉)가운데 완전을 지향한 것이다. 배우는 것은 기회를 놓치지 말자. 보리방아 찧을 때만 시어머니 생각이 나면 늦다.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는 넘어지고 또 넘어진다.

그게 겁나 포기하면 평생 걷지도 못한 사람이 된다. 부족한 사람 무시하지 말고, 자신이 부족하다 느끼면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말자. 생(生)의 감각(感覺)을 흔들어 깨워나가야 한다.

남이 성공한 분야라도 따라하지 말라. 봄에 깐 병아리는 가을에 세여 보아야 한다.

결과를 보기 전에 타산부터 앞세우지 말자. 전문지식도 없이 경쟁만 치열하면 사회만 복잡해진다. 낡은 생각을 파괴하는 것이 새로운 창조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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