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OO다
나는 OO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1.14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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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현옥/작가ㆍ약사
“*** 주세요”

 “죄송하지만 저희 약국에서는 ***을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잉? 원래 못 팔게 되어있다는 말인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재생불량성 빈혈과 위장출혈을 유발하는 성분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판매를 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감히 한국인의 두통약이라고 간 큰 광고를 하는 저 유명한 ‘***’을 두고 약국에서 노상 일어나는 실랑이다. 이 약이 왜 허가가 취소되거나 판매금지로 의약품 시장에서 퇴출당하지  않는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아직도 판매는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돌 그룹을 동원해 버젓이 광고까지 하면서 말이다. 인지도만큼이나 판매량도 상당해 두통약의 대명사로 불릴 만하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는 합법(?)적으로 결석할 수 있게 하는 비법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특정 제품이 가진 부작용을 설명해주면 고마워 할 것 같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비약, 폄훼하는 불신의 덫에 갇힌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 원하는 약을 손에 넣지 못한 분을 욕으로 푸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약사다. 나는 약에 관한 한 전문가이고, 내 약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구입하려는 약에 대해 약사인 나의 잔소리를 들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 약국에 오면 약사의 잔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다. 그것은 약사의 권리가 아니라 환자, 고객 자신의 권리다. 약국 안내문에도 나는 그렇게 써 붙였다. 그들이 지불하는 약값에는 그러한 잔소리 비용이 포함돼 있다. 왜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는가.

시선을 달리해 이런 사소한 경우를 하나 상정해본다.

드라이어가 필요하다. 그래서 평소 다니는 미용실에 가서 내가 쓸 드라이어를 하나 추천해달라고 부탁한다. 미용사가 OO 제품을 권한다. 그 제품은 내가 들어본 적이 없으므로 나는 잠깐 망설인다. 하긴 내가 알고 있는 브랜드라고 해봐야 필립스나 브라운 같은 광고 제품이 다가 아닌가. 그보다 더 나아봤자 잡지에서 본 적이 있을 법한 국산 유닉스 정도? 내가 아는 드라이어에 관한 지식은 지식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광고를 통해 아는 하나의 특정 ‘상표’일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미용사가 내가 모르는 제품을 권하자 혹시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고려해 그러지 않을까, 특정회사 제품만 쓰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잠깐 의심을 했던 것이다. 의구심을 떨쳐내고, 그 권유를 받아들인다.

구입한 드라이어는 내 마음에 든다. 원적외선이 나오고, 가볍고 날렵하다. 손에 쥐기도 편하고 줄도 무겁지 않다. 사용하다 잘못해서 바닥에 떨어뜨리면 깨질 위험이 있는 앞쪽 플라스틱 꼭지도 여분으로 들어 있다. 미용사의 추천으로 사길 잘했다. 흡족하다.

그렇다. 전문가다. 전문가가 달리 전문가인가.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OO다”의 패러디가 탄생했다. 나는 OO다, 즉 나는 전문가라는 말이다. 주어와 서술어로만 구성된 이 간단한 문장 하나가 불러온 사회적 파장은 컸다. ‘는’을 ‘도’로 바꾸면 숙연해진다. 너는 OO냐. 엄중하게, 다시 묻는다. 너도 OO냐. 아니면 말을 말라고, 어쭙잖은 전문가 행세는 개그맨들의 희화 대상이 된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전문가의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운 사람들일수록 잊기 쉽다. 자신의 지적 능력을 과신하고 오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라는 것이 때로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던가. 전문가만큼 공부하고 시간을 들이고 경험을 축적했는가를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어쨌든.

 나는 약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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