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진주 대안동 출신 선행자 장성룡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2018-03-07     경남도민신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진주 대안동 출신 선행자 장성룡

경남 진주시 대안동 153번지에서 서기 1893년 7월 25일 출생한 장성룡(張成龍)선생은 장기상이란 이름으로 호칭되기도 했다.

모친은 연주 현씨. 부인은 남평 문씨로 원나라에 서장관으로 갔다 오면서 목화씨를 가져 온 충선공 문익점 선생의 후손이다.

소년 시에 천재가 났다는 말을 수천 번 듣고 자랄 정도로 하나를 보면 백을 깨닫는 영리한 소년이었다. 그러므로 진주농업학교에 당당하게 합격하여 제 2회 졸업생이 되었다.

경남도청에 근무한 적이 있는 그는 일본인들 등살에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내고 귀향하게 된다.

불우한 학생 20여 명에게 장학금을 제공한 일이 계기가 되어 1935년 일신여고(현 진주여고)학교 증설기성회가 설립될 때 위원으로 활동봉사하게 된다.

진주시의원에 당선된 후 부호 김기태 선생이 기증한 500마지기 토지를 감정하는 감정위원으로 선출되어 봉사했다.

1936년 9월 진주의사회관 및 부속병원을 신축할 때 건립추진위원으로 수 백 원을 기부하였고 경로효친사사상의 고양을 위해 옥봉동과 수정동사이 언덕에 경로당(敬老堂)을 신축한다는 의견에 즉시 동의하여 강상호, 박진환, 정상조 등과 함께 봉사위원으로 수고하고 수 백 원을 기부해 오늘날 까지 보존되었고 경남도 문화재 자료 359호로 지정되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1938년 진주여고가 봉산여고로 교명을 변경하는 등 해산위기에 처해 졌을 때 열과 성의를 다해 학교발전에 이바지 하신 분이다.

진주어채조합장을 맡을 정도로 신망이 높았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워하는 택시와 화물운송회사를 인수해 흑자로 전환시켜 경영수완도 뛰어난 분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광복 후 진주농대 기성회 부회장과 진주여고와 진주고 기성회 회장으로 봉사하신 공로가 있다.

그러나 1950년 7월 26일 진주시 명석면에서 별세하셨다는 말이 전할 뿐 확실한 행적에 대해서는 불명인 채로 남아있다.

따님 장경희님은 전 초등학교 교감이었고 손자들 장재빈 님은 교육계에 장기 근무했고 장재용 님은 창원대학교 행정실장(사무관)으로 정년퇴직하고 장재훈 역시 창원대학교 행정실장(사무관)으로 정년퇴직했다.

후손들은 주로 창원과 진주에 거주하면서 조상의 선행을 본받고 살고 있음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