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맹스런 독수리는 상처가 많다

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2015-01-19     경남도민신문

시련과 실패는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련과 실패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시련은 어떠한 일을 하는 동안 닥치는 난관과 어려움이며, 실패는 시도한 어떤 일의 상황이 끝난 상태를 의미한다. 시련이 과정이라면 실패는 그 과정의 결과이다.

시련은 극복의 대상이나, 실패는 낙망과 절망의 원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시련 그 자체를 실패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과정을 결과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시련을 실패라고 생각함으로써 가능성을 미리 차단해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패라는 것 또한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가 아니다. 불행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떠한 불행을 당하더라도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불행이 아닐 수 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한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의 짧은 한마디 철학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었는가!

산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조난당한 현장에서 죽는 경우는 퍽 드물다고 한다. 대부분 마을 가까이 내려와서 죽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조난당한 사람은 자기가 마을 인근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림으로써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그래서 전문 산악인들은 조난을 당해서 버티다가 마지막이라고 느꼈을 때 30분만 더 버티라고 가르친다. 만일 가까이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은 결코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하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할 수 없다고 중도에서 포기하는 경우… 바로 그때가 그 일의 정점에 도달한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때가 지나면 그 일이 쉬워질 수 있는데도 우리는 그 점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하는 일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느껴질 때 30분만 더 참고 견디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30분이란 시간의 단위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더 참고 견디어 보라는 인내를 강조하는 말이다. 재능이 있으면서도 오늘날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이유는 바로 인내의 결핍 때문이다.

날개를 크게 다친 독수리 한 마리가 벼랑 위에서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고 했으나 다친 날개로는 도저히 하늘 높이 날 수가 없었다. 독수리는 날기를 포기하고 지난날을 생각했다. 태어나자마자 형제들을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던 아버지 생각이 났다. 살아남은 독수리에게 아버지 독수리가 말했다. ‘넌 위대한 독수리가 될 자격이 있다.’살아남은 독수리에게 뺨을 비비며 기뻐하던 아버지 독수리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보다 더 이상 위대한 독수리로 살아갈 수 없게 된 상처의 아픔이 더 컸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독수리는 벼랑 아래로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다. 벼랑 아래에는 죽은 독수리의 뼈들이 수북 히 쌓여 있었다. 그 속에는 아버지의 뼈도 쌓여 있었다. 독수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은 이 방법밖에 없어! 독수리는 아버지를 떠 올리며 벼랑 아래로 뛰어내리려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순간, 어디선가 대장 독수리가 쏜살같이 하늘에서 내려와 ‘잠깐!’하고 소리쳤다. ‘형제여 왜 자살을 하려고 하는가?’‘저는 더 이상 높이 날 수가 없습니다.’대장 독수리는 한참 동안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를 향해 날개를 활짝 폈다. 그의 몸에는 여기저기 상처 자국이 나있었다.‘나를 봐라, 내 온몸도 이렇게 상처투성이잖니. 상처 없는 독수리가 어디 있겠니. 이건 겉에 드러난 상처일 뿐이다. 내 마음의 상처는 이보다 더하다. 일어나 날아보자. 상처 없는 독수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린 독수리뿐이다.’대장 독수리의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상처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에게도 인생을 살아오면서 몸에도 상처가 여러 군데 있고 남에게 말 못할 마음의 크나큰 상처도 있다. 독수리의 우화 한 토막을 생각하면서 모든 상처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