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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15회 국민강좌]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 국학원
icon 당산대형
icon 2012-04-12 13:07:21  |  icon 조회: 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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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15회 국민강좌]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 국학원

[15회 국민강좌]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윤내현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며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잘 알고 그 역사를 잘 이용하고 있는가?
중국에서는 2-30년 전부터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고구려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준비해 왔다. 고구려뿐만이 아니라 중국은 조선이 자신들의 나라를 상국으로 받들었으니, 중국 내에 있는 다민족국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통째로 한국사를 편입하려 한다. 또한 일본 동경도지사의 망언도 우리를 짓밟기는 매한가지다. 자칫 우리의 정체성마저 앗아갈 위기에서 우리는 역사에 관심마저 없고 아주 오래된 상고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학자들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고려 말에 쓰인 것이니 믿을 수 없고 고대 역사서들은 전란에 분실되어 고조선과 단군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분분하다. 고대역사의 증빙이 없다고 하지만 세계가 인정하는 중국의 ‘사기’를 포함하여 방대한 고서에는 우리의 역사가 부분적으로 기록된 것들이 많이 있다. 자신들의 나라기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재되어, 비록 깎아내리고 왜곡되긴 했지만 그나마 있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거라도 발췌하여 정비하고 유적, 유물을 연구하면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는 분명 복원시킬 수 있다.


우리문화의 원형은 고조선이다.
중국의 많은 고서에서 밝힌 고조선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일찍 건국 된 문명국이었다. 서기 전 2333년에 건국하여 우리 민족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소유한 나라 고조선이다. 그 영토가 서쪽으로는 베이징(北京) 근처에 있는 지금의 롼허강(?河)에 이르고 북쪽은 얼구나허강(額爾古納河), 동북쪽은 헤롱강(黑龍江), 남쪽은 한반도의 남부 해안선에 이르는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이었다. 그곳의 모든 거주민은 고조선 백성으로서 정치와 문화공동체의 한민족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 조선의 유적지인 지린성(吉林省)의 성성초(星星哨)에서 출토한 유물에는 모직물 조각도 있었다. 그 조각을 분석한 결과 양털과 개털 실을 섞어 짠 것으로 오늘날의 저가품모직물과 같은 수준이었다. 4-5천년 전에 이런 모직물을 생산했다는 것은 당시 방직기술이 현대 과학수준에 유사할 정도로 매우 높았던 것이다. 그 외 표범, 말, 곰 등, 진귀한 동물 가죽과 고급 모피의류, 모직의류와 활, 화살, 화살촉 등을 중국에 수출하여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음은 당시 중국 옌(燕)나라 화폐였던 명도전(明刀錢)이 옌(燕)나라보다 더 많이 출토된 점으로 알 수 있다. 5,000여 점이 출토된 곳이 있고 3-4천여 점 출토된 유적도 여러 곳이다.


유물의 탄소연대측정법 결과 우리 민족은 고조선을 건국하기 전인 서기 전 2500년경에 이미 청동을 사용하였다. 중국문명인 황허강(黃河) 유역에서는 서기 전 2200년경이고 시베리아는 서기 전 1700년경부터 청동을 사용한 사실은 고조선문화가 매우 앞섰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 제조기술 또한 무기를 만들 때는 주석 비율을 17퍼센트로 질긴 청동을 만들었고 거울이나 그릇 등 생필품을 만들 때에는 주석 비율을 24퍼센트 높여 강하고 녹이 잘 슬지 않는 합금비율로 광택이 잘 나도록 하였다. 가공기술 또한 매우 발달하여 0.2 밀리미터의 가는 청동실로 장신구를 만들었다. 청동으로 이렇게 가는 실을 뽑는 것은 오늘날의 기술로도 쉽지 않다고 한다.


고조선에서는 더불어 이익이 되고 행복한 사회를 추구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건국이념이 정치사상과 사회사상으로 실천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신분에 따른 차별이 심하지 않았다는 것은 10월에 올리는 제천의식에서 남녀노소가 다 모여 연일 밤낮 음식을 먹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신분이 다르면 같이 설 수도 없는 중국에서는 그 모습이 이상해서 적은 기록일 것이다. 국민들이 더불어 잘 사는 사회 고조선의 지배층은 궁궐이나 종묘 능묘 등을 크게 짓거나 만들지 않았으며 관직도 꼭 필요한 것만 설치하여 검소한 생활을 하므로 낭비를 막았다. 당연히 국민들 수확의 20분의 1이라는 아주 적은 세금을 걷었다. 때에 따라선 80분의 1을 거둔적도 있었다. 당시의 중국의 세율은 50%였고 때에 따라 8할, 9할까지도 착취했었다. 고조선은 살기 좋은 나라였기 때문에 국민들은 나라에 충성하였고 그 결과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우리가 반듯이 알아야 하고 극복해야 할 점은 원래 유능했던 우리 민족이 오늘날에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다.


평안한 세상이 길어지며 신분차이가 확대되고 발전이 느려지면서 고조선은 붕괴했다. 그 후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국력이 약해지고 문화가 쇠퇴하여 중국의 세력에 밀려 정치권이 중국에 편입되기도 하고 급기야 일제에 강점당하는 비운까지 겪었다.


중국은 광활한 대륙에 연접해 있고 자연환경이 다른 여러 지역과 다양한 민족과 종족으로 구성되어 여러 문화전통들이 존재했다. 따라서 황허강 중류유역에서 건립된 중국의 고대국가는 계속 확대 성장하면서 주변의 다른 종족 또는 민족들과 접촉을 통해 자극과 영향을 주고받아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었다. 그 결과로 출현한 것이 한(漢)제국과 수(隋), 당(唐)제국 등이었다. 일본은 화혼양재(和魂洋才)정신으로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다.


우리 민족은 삼면이 바다라는 지리적 고립성으로 중국의자극과 영향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배층의 필요에 따라 불교나 유교를 상층문화로 채택하였고 우리 고유문화는 천시하기에 까지 이르러 우리는 오히려 외래문화에 흡수당해 버렸다.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 이념은 평등사상에 기초하는데 고대사회가 발전하면서 신분 차이가 확대되었다. 따라서 현실의 신분 차이를 인정하는 논리가 지배층에게 필요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국시대 말기에 불교가 들어왔다. 우리 민족에게 전달된 불교는 대승불교로 인생은 윤회하는 것이며 현실 세계에서의 신분은 전생의 업보로 얻어졌다는 윤회(輪廻)와 업보(業報) 사상이었다. 이는 왕이나 귀족들의 현실 신분을 인정하는 논리로 우리 민족의 초기 불교는 왕실로부터 시작되어 지배층의 문화가 되고 우리고유문화는 그 밑에 있게 되었다. 그 후 근세조선에는 사회신분을 한층 더 구체화되어 논리적으로 뒷받침한 유가의 가르침이 정치와 학문의 지도이념으로 채택되었다. 따라서 이전의 상층문화였던 불교는 유교 아래 있게 되었고 우리의 고유문화는 불교 아래 있게 되었다. 근대화 이후에는 서구의 문화, 기독교 가 들어와 이를 일찍 수용한 사람들이 사회의 지도층이 되었다. 따라서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서구 문화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게 되었다. 근대화는 민주사회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상하가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서구문화가 상층문화를 형성하고 있고 그 아래 유교문화가, 유교문화 아래에 불교문화가, 불교문화 아래에 우리의 고유문화가 있는 상하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열국시대 말기부터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지배층의 필요에 따라 외래문화를 상층문화로 채택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고유문화는 제일 밑바닥에 깔려 이제는 천시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고유문화와 외래문화가 대등한 관계에서 자극과 영향을 주고받아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듯이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를 핵심으로 하고 거기에 외래문화를 접목시켰어야 했는데 지혜가 부족했던 것이다.

미국을 보자.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샐러드 그릇에 비유한다. 맛있는 샐러드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재료들이 싱싱하게 각각 제 맛을 지니고 있어야 하듯이 미국이 이상적인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미국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들이 자신들의 문화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야만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창조가 일어나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미국인들의 생각이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먼저 우리 민족의 능력을 확인해 보자. 순수한 우리 민족의 능력을 알기 위해서는 외래문화가 들어오기 전의 우리 역사를 알아야 한다. 외래문화가 들어오기 전 우리 문화의 원형을 지니고 있었던 시대는 고조선이라 할 수 있다. 역사연구를 고대사부터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 모든 지역의 문화는 주변 문화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하였으므로 우리의 고조선문화를 완전히 독자적이고 고유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시기에는 주변과 문화교류가 빈번하지 않았고 고조선에게 크게 영향을 줄만한 문화가 주변에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조선은 독자적인 문화 요소를 비교적 많이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문화를 우리 민족 문화의 원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고조선시대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민족 본래의 모습과 능력을 볼 수 있다.


고조선은 중국 옌(燕)나라의 침략을 받은 적이 있다. 예기치 않은 침략을 받은 고조선은 일시 후퇴했지만 바로 이를 격퇴하고 옌나라의 동부를 빼앗아 침략을 응징하였다. 당시 옌나라는 춘치우잔꿔(春秋戰國)시대 수백 년간 중국 내부의 전쟁으로 실전 경험이 많은 나라였는데 이를 격퇴하고 그 땅을 빼앗았다는 것은 고조선이 강국이었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건국된 나라로 문화가 앞섰고 경제적, 군사적으로 부강하여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였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능력은 고조선이 붕괴된 후에도 부분적으로 이어졌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옛 땅이었던 지금의 랴오시(遼西)지역을 완전히 수복하였고 백제는 지금의 뻬이징(北京)과 톈진(天津)지역으로부터 남쪽으로 산동성(山東省), 장수성(江蘇省), 저장성(浙江省)에 이르는 중국 동부 해안지역을 서기 246년부터 수(隋)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직전까지 340년 이상 지배하였다. 그 뒤 고구려의 유민 이정기(李正己) 일가는 산똥성의 쯔칭번진(淄靑藩鎭)을 독립왕국으로 발전시켜 국명을 치(齊)라 부르며 55년간이나 탕(唐)나라에 대항하였고 그 뒤를 이어 장보고(張保皐) 대사가 중국 동부 해안지역과 왜열도의 남부를 지배하여 해상왕국을 건설하였다.


또한 우리민족은 일찍부터 왜열도에 진출하여 서기 전 3세기경에는 청동기와 철기의 혼합문화인 야요이문화(彌生文化)를 출현시켰고 서기 4세기경부터는 고분문화(古墳文化)를 출현시켰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였고 한글을 창제하였으며 거북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구려를 침략한 513만여 명의 쒜이(隋)나라 군사를 무찔러 그 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을지문덕 장군과 일본과의 전쟁에서 세계 해전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을 배출하였다. 요즈음에는 세계적인 예술인과 운동선수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우리 민족의 능력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 민족의 여건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지리적인 고립성, 고유문화와 외래문화의 불균형 등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워야 문화 교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교통시설의 발달로 하루면 세계 어느 곳에나 갈 수 있게 되었고 통신기술의 발달은 한 순간에 세계 어느 지역과도 통화나 정보교환이 가능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개방정책을 취하여 국가나 민족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리적인 고립은 이제 의미가 없게 되었다. 고유문화와 외래문화의 불균형도 근대화 이전의 사회는 사회신분이 차등화 된 사회였기 때문에 문화도 그 문화를 향유한 사람들에 따라 차등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는 국민 모두가 평등한 민주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아직 문제가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다양한 문화는 상하관계를 벗어나 수평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근래에 우리의 민족문화가 부분적으로나마 대우를 받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그러한 상황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러한 상황의 변화는 다른 민족이나 나라도 똑같이 맞고 있지만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이나 나라가 갖지 못한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첫째는 외래문화가 들어오기 전 우리 민족은 매우 부강한 나라를 건설했고 우수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기에 우리에게는 그 원래의 우수한 능력이 있음이다.


둘째는 민족의 비극, 남북분단이 평화적으로 통일만 된다면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와 의식이 서로 만나, 자극과 영향을 주게 되면 비약적인 발전을 안고 있음이다.


셋째는 우리 사회에는 민족종교, 불교, 유교, 천주교, 개신교 등 서로 다른 가치관의 문화가 서로 자극과 영향을 주고받아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내고 있음이다.


넷째는 홍익인간 이념이다. 오늘날 인류가 추구하는 공통된 이념을 우리 민족은 수천 년 동안 살아 온 이념으로 그것을 실현하는데 있어서도 어느 민족보다도 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아주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다.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왔다 하더라도 그것을 유리하게 이용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 기회는 우리를 외면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 그것이 외래문화와 수평관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할뿐만 아니라 그 핵심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우리 민족의 가치관과 문화가 본질을 이루게 하고 외래문화는 기능적인 것으로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알도록 교육하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2-04-12 1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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