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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28회 국민강좌] 삼족오(三足烏)의 유래와 한국사상 - 국학원
icon 당산대형
icon 2012-04-20 17:45:54  |  icon 조회: 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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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28회 국민강좌] 삼족오(三足烏)의 유래와 한국사상 - 국학원

[28회 국민강좌] 삼족오(三足烏)의 유래와 한국사상
李亨求 | 선문대학교 대학원장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을 상징하며 태양 안에 삼족오가 있는 것을 ‘일중삼족오(日中三足烏)’라 하고 ‘금오(金烏)’라고도 한다. 태양을 상징하는 둥근 동심원(同心圓)안에 세발 달린 까마귀가 실제로 있는 새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이 상징은 우리의 역사를 알려주는 대단히 중요한 보물이다. 중국에선 일찍이 삼족오가 발견되므로 당연히 자기들의 사상으로 여기고 있다. 일본은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보다 먼저 삼족오 깃발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처럼 서로가 먼저 삼족오를 선점하려는 것은 이 상징이 동양의 정신사상을 내포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삼족오와 관련된 신화적인 상징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다. 1형은 동쪽에 태양 안에 삼족오가 있는 일중삼족오를, 서쪽에는 둥근 달 안에 두꺼비 섬여(蟾?)를 묘사한 일중삼족오월중섬여상(月中三足烏月中蟾?像)이고 2형은 한 마리 뱀(용) 몸체의 머리와 꼬리에 사람얼굴상을 그린 양인수일룡신상(兩人首一龍身像)이고 3형은 이 두개가 합쳐진 것으로 상반신은 사람형태에 하반신은 뱀(혹은 용)모습의 복회(伏羲, 男神)와 여와(女?, 女神)가 일중삼족오와 월중섬여상을 머리위에 받쳐 든 모습이다.

이 중 1유형은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 통구 우산하묘구의 춤을 추는 무용총과 씨름하는 각저총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황해도ㆍ평안남도에서도 발견되는데 황해도 安岳 제1호분, 제3호분, 伏獅里 벽화고분, 평안남도 강서 태성리 연화총의 비사신도계고분(非四神圖系古墳)과 강서 약수리 벽화고분, 삼묘리 중묘, 용강 쌍영총, 덕화리 제1ㆍ2호분, 평양의 진파리 제1ㆍ4호분, 내리 제1호분 등 셀 수 없이 많은 고분천정에 사신도, 별자리와 함께 있다. 또한 평양시의 말안장, 말투구, 말갑옷이 나온 개마총(鎧馬塚)은 달 속에 두꺼비와 방아(약藥)를 찧는 옥토끼(玉兎)가 함께 들어 있다. 달 속에 섬여와 옥토가 함께 보이는 경우는 1942년 평양 석암리 219호 왕광묘(王光墓)에서 발굴된 원형으로 된 칠전통(漆箭筒=화살통)에 삼족오와 달 속에 두꺼비와 옥토끼를 은판투조(銀板透彫)로 장식하였다. 또한 1941년 평남 진파리(眞坡里=현 평양시 력포구역 무진리) 7호분에서 출토된 ‘해 뚫은 무늬 금동장식[일광투조금동장식(日光透彫金銅冠飾)]’에 새겨진 삼족오도 유명하다.

삼족오가 새겨있는 ‘해 뚫은 무늬 금동장식’은 4-5세기 경, 고구려의 어느 왕(王)의 관식으로 추정된다. 폭이 22.8cm, 높이 15cm의 반원형으로 금동판 전신에 문양을 투조한 수법이다. 중앙에 태양을 상징하는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안에 세발달린 까마귀를 안치하였다. 삼족오의 모양이 마치 회전하는 듯하여 우주(宇宙)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듯 하다. 원의 윗부분에는 비상하는 듯한 봉황(鳳凰)을 올리고 아래는 비룡(飛龍)과 비운문(飛雲紋)의 유려(流麗)한 문양의 금동관식이 마치 태양이 이글거리면서 타오르는 불꽃처럼 화려하기가 극치에 달한다.

2유형으로는 집안 통구 우산하묘구 삼실총과 평안남도 순천(順川) 천왕지신상(天王地神塚)을 들 수 있다. 삼실총 제2, 제3실 천정에 각각 그려진 교미쌍룡[사]상(交尾雙龍[蛇]像)은 뱀(혹 龍)두 마리가 몸통을 세 번 감고 꼬리에서 다시 반대로 한 차례 더 감은 복교미형(復交尾形)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을 중국 고문헌에는 ‘비유(肥遺)’라고 하였다. 비유는 중국 하남성 안양 은허(殷墟) 후가장(侯家莊) 1001호 大墓에서 교룡(交龍) 골식(骨飾)이 출토되었다. 홍콩의 饒宗?氏는, “비유는 일두양신(一頭兩身)이며 위사는 좌우수(左右首)로 머리가 두 개다. 위(?)는 일두양신(一頭兩身)이고 또 양두일신(兩頭一身)이 있는데 이 모두 신사(神蛇)다” 라 하였다.

한편 천왕지신상(天王地神塚)에도 주실(主室) 천정(天井) 위쪽 북면에 양인수일룡신상(兩人首一龍身像)인 몸체가 용의 형상이고 머리와 꼬리에 인두상(人頭像)이 붙어 있다. 남포시 덕흥리 고분도 이와 유사하다. 일제시대 때 발견된 덕흥리 고분은 광개토대왕 18년 (서기 408년)에 만들어진 고분이다. 이 곳엔 복희와 여와씨는 물론 하늘에 은하수와 견우직녀성과 천상세계에 사는 화려한 신상들이 모습이 있고 일월성과 복희와 여와씨의 신상이 결합된 3유형으로 귀중한 유산이다. 이 복희와 여와씨의 신상에 대해 『산해경(山海經)』의 해내경(海內經)에서는 이를 ‘연유(延維)‘라고 했다.

‘누가 말하길 묘민이라는 사람(苗族)이 있는데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신이다. 크기는 수레의 끌채와 같고 좌우에 머리가 있으며 자주색 옷을 입고 털로 된 관을 쓰고 있다. 이름을 연유라 하며 임금이 이것을 잡아 잔치해 먹으면 천하를 제패하게 된다.’

곽업(郭璞)의 주에는 ‘연유’를 ‘위사(委蛇)’라고도 하였다.
중국의 문일다(聞一多)씨는 복희고(伏羲考)에서 ‘연유(延維)는 혹 위사라고도 하는데 이는 복희씨와 여와씨를 일컫는다(延維或委蛇 則伏羲女?)’고 하였다. 이로써 교미쌍사(交尾雙蛇)는 신사(神蛇)이며 중국 고대 신화 복희씨와 여와씨이고 양인수일룡신상(兩人首一龍神像)도 복희씨와 여와씨의 신상이다.

3유형은 집안 통구 우산하묘구의 사신총, 오회분(五?墳) 4, 5호묘에 별자리와 함께 있다. 이 중 오회분 4호묘의 말각조정(抹角藻井)의 동북쪽 말각상에는 인수용신봉일월신상(人首龍神(尾)捧日月神像)을, 동남에는 비천과 우수인신상(牛首人神像)이, 서북에는 승룡선인상(乘龍仙人像)을, 서남에는 대장장이 신(冶匠)ㆍ제륜신(輪匠)의 兩人象이 배치되었고 천정 중앙에는 교룡문(交龍紋)이 있다. 그 곳의 승학선인상(乘鶴仙人像)은 낙랑고지(樂浪故地)의 王光墓에서 출토된 삼지등(三枝燈)을 들고 나르는 용(飛龍)을 탄 신인상(神人像)과도 비슷하다. 봉일중삼족오월중섬여복희여와상(棒日中三足烏月中蟾?伏羲女?像)의 좌측 일신상은 男相으로 황색 첨령(尖領=깃)에 회색 우의(羽衣)를 입고 허리에는 황색 두건을 두르고 두 팔로 삼족오가 들어있는 태양(日)을 머리 위에 받들고 좌측 월신 상은 머리를 늘어트리고 회색 첨령에 붉은색 우의를 입고 허리에는 푸른색 두건을 두르고 양 팔로 두꺼비를 그려 넣은 달(月)을 머리 위에 받들고 그 일신과 월신의 양편과 중앙에 보리수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4호 묘의 동서남북 면에는 39마리의 용(龍)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돌 위에 직접 그린 이 벽화는 결로현상으로 젖어 있었다.(1993년) 그러나 물기 머금은 붉은색은 오히려 용이 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으로 힘차고 웅장하다. 1990년 초 만해도 조사할 기회가 많았으나 지금은 봉쇄되어 대단한 걸작품을 볼 수 없는 것이 더 더욱 안타깝다.

이러한 유적이 남아 있음으로써 1유형은 동쪽(해 속)에 삼족오, 서쪽(달 안)에 두꺼비상의 일월상이 4세기 무렵 유행했고 2유형은 동방의 창조신 복희와 여와씨의 남녀신상으로 5세기로 추정하며 6세기에는 1유형과 2유형이 결합된 것으로 고대 동방의 우주창조신화에 나오는 동이민족(東夷民族)의 태양숭배사상과 조류숭배사상이 합치된 우주사상(宇宙思想)임을 알 수 있다.

문헌상의 삼족오신앙(三足烏信仰) 또한 고분과 다를 게 없다.
『산해경(山海經)』대황동경(大荒東經)편이나 『회남자(淮南子)』卷7 정신훈편(精神訓篇)에 삼족오 설명이 나오고 당(唐) 서융(徐堅)의 『초학기(初學記)』卷30 인춘추원명포(引春秋元命苞)에도 삼족오를 남성 상징, 두꺼비는 다란성양서류(多卵性兩棲類)로 다산을 의미하는 여인을 상징한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중국의 신화학자 손작운(孫作雲)씨는 일중삼족오는 동이민족의 태양토템과 새토템을 합친 이른바 ‘연합토템(Associated Totem)'으로서 동이민족이 새와 태양을 토템으로 믿는데서 연유한다고 하였다.

한편 중국의 주도(周到)씨는 일중삼족오를 태양의 흑점(黑點)으로 보는 ‘태양흑점’설을, 이병도씨는 음양사상(陰陽思想)과 관계가 있는 ‘음양사상’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주장이 모두 틀리지는 않으나 동이민족의 ‘연합토템’설이 비교적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일중삼족오와 월중섬여나 인수사신(人首蛇身)의 복희와 여와씨의 전설이 성행하기 시작한 시기는 한나라 시대(B.C.206~A.D.220)이나 삼족오의 여러 유형은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은(殷)나라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하남성 안양 은허(殷墟) 후가장(侯家莊) 1004호 大墓에서 발굴된 청동(靑銅) 방정(方鼎)의 앞 뒤 양면에 좌우로 삼족오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남, 협서, 산동, 강소 사천 및 낙랑고지(河南, 陝西, 山東, 湖南, 江蘇, 四川 및 樂浪故地)에서 발견되고 있는 고분들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석묘계(石墓系) 고분에서 대량 출토되고 고대 석묘 문화는 발해연안(渤海沿岸)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다.

발해연안은 고조선 지역임이 드러나고 있고 삼족오의 원형이나 동심원(同心圓)은 발해연안의 대표적인 예술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청동거울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고구려벽화에 나타난 삼족오 신앙은 태양과 삼족오가 별개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태양 안에 삼족오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발해연안(渤海沿岸)의 고대 민족이 태양숭배사상과 조류숭배사상을 동일시(同一視)한 우주사상(宇宙思想)으로 금오를 태양으로 인식하기도 한 것이다. 일광(日光)을 받아 알(卵生)에서 탄생하는 고구려 시조 주몽의 건국 신화는 바로 일중삼족오[금오]를 표출 한 것이다.
2012-04-20 17: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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