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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30회 국민강좌] 스키타이 세계와 한반도 - 국학원
icon 당산대형
icon 2012-04-23 16:23:44  |  icon 조회: 4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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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30회 국민강좌] 스키타이 세계와 한반도 - 국학원

[30회 국민강좌] 스키타이 세계와 한반도
정석배 |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7-3세기의 스키타이족으로 우리와는 1만㎞ 이상 떨어져 있는 흑해북안 스텝지대에 거주했던 민족이다. 그 스키타이족은 카프카스를 지나 근동으로 원정을 가서 근동지역을 28년 동안 지배하기도 하였고 그리스 식민도시인 올비야, 헤로스네스, 보스포르 등과 밀접한 교류를 했음이 헤로도토스의『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 스키타이 문화는 우리의 청동기문화와 신라의 적석목곽분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황금인간 전시회>와 <에르미타쉬 황금 유물전> 그리고 <알타이 문명전>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스키타이족의 문화가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최근 얼마 전까지 흑해북안,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미누신스크 분지, 알타이, 그리고 중국북방 오로도스 지역까지 북방유라시아대륙 거의 모든 지역을 ‘스키타이 문화’라고 지칭했지만 지금은 헤로도토스『역사』의 기록으로 스키타이족의 활동무대는 흑해북안의 유목문화 만을 스키타이 문화로 지칭하여 흑해북안에서 중국북방 오로도스지역까지를 ‘스키타이 세계’ 혹은 ‘先흉노-스키타이 세계’라 한다.


스키타이인들이 남긴 유적 중에는 쿠르간이 대표적이다. 쿠르간은 이미 기원전 4천 년대 후반부터 흑해북안 스텝지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쿠르간은 봉분을 흙으로 쌓은 봉토분이다. 이 쿠르간은 무덤구덩이 바닥에서 측면으로 굴을 판 카타콤브 형과 수혈의 무덤구덩이만을 판형이 있다.


그 곳에서 발굴된 유물에는 무구, 마구, 동물양식이 대표적이다. 무구로서 공격용 무기 공격용 무기로는 아키나크라고 불리는 철검과 전투용 도끼, 창, 활과 화살이 있고 방어용 무기에는 투구, 갑옷, 정강이 받침, 방패 등이 있다. 그리고 마구는 재갈과 재갈멈치, 절약, 마면, 각종 장식패 가 있다. 동물양식에는 굽동물, 맹수, 맹금, 그리고 환상동물이 있으며 동물과 환상동물이 싸우는 투쟁장면이 많다. 특히 이 지역에서의 동물문양 특징은 두 다리를 서로 포개어 접어 넣은 자세를 취한 모습과 서거나 웅크린 자세를 취한 동물들 대부분이 몸을 180도로 비틀린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스키타이 유물은 경식(頸飾), 청동 솥(銅?), 숫돌 등이 있다.


<알타이 문명전>에서 익히 보아 온 유물로 알 수 있듯이 스키타이유물에는 황금이 많이 사용되었다. 미이라의 얼굴과 목 부분, 장신구등이 모두 황금이다. 특히 옷깃에는 호랑이 문양이, 장신구에는 돼지처럼 생긴 문양이 새겨져 있다. 단검이나 검집 손잡이에도 사슴문양이나 말 문양이 있다.


최근 해발 2000m의 스텝지역 중간 분지인 알타이 사카이마을 우코크공원에서 적석목곽묘가 발굴되었다. 무덤내부가 얼음으로 가득 찬 목곽묘엔 묘의 형태는 물론 나무접시 등 제기용품과 토기, 양탄자, 활과 수장된 말도 있었다. 안 쪽 토곽 안에는 3중으로 된 목곽이 설치되고 그 속에 통나무관이 안치되었다. 그 관 속에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의 여인이 냉동되어 있었다. 일명 얼음공주라 불리는 이 공주의 묘는 처음부터 냉동상태로 보관된 것이 아니다. 지역이 워낙 추운 곳이라 시기적절하게 내린 비가 스며들어 얼었기 때문이다. 동토(凍土)의 얼음공주 묘의 발굴로 후세의 우리들은 그 시대의 생활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묘의 구조는 지표면에서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을 곳은 나무로 된 곽을 세 겹으로 짓고 그 안에 통나무 관을 앉혔다. 그 통나무 관 옆면에는 호랑이가 걸어가는 모습과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여러 가지 모습이 새겨져 있고 시신의 몸에도 온통 문신이 가득 새겨져 있다. 그 시신은 이집트에서처럼 장기를 빼내고 봉합한 근거가 있고 목과 머리에 동물들의 장식품들이 뒤덮여 있다. 옷은 한복을 연상시키는 복장으로 천연염색한 천이었다. 벨트의 천이나 안장깔개 등에 새겨진 여러 문양 중에 그리핀 문양이 가장 많았다. 토곽 바깥채에 순장되어 있는 말실(馬室)에는 동물의 투쟁모습이 새겨진 안장깔개가 얹힌 말 외에 가죽을 오려 붙여(아플리케) 만든 일용품과 뼈로 만든 장식품, 무기, 동물조각품들이 있다.


그동안 묘에서 무기가 나오면 보통 남자 묘로 분리하곤 했다. 이 얼음공주 묘도 시신이 부패되었다면 남자 묘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엔 모계사회가 많았다는 기록처럼 그런 모계사회의 여전사는 지금도 아마존에 남아있다. 이 얼음공주도 분명 여전사로 공을 세웠거나 귀족이 틀림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문신을 누구나 하지만 당시엔 특정한 인물만이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스키타이 문화가 우리의 청동기문화와 신라의 적석목곽분과도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스키타이 시대 동북아시아의 문화권은 오르도스로 대표되는 유목문화권과 중국문화권 그리고 비파형동검문화권으로 구분하고 있다. 비파형동검으로 대표되는 고조선은 처음에는 동호와 나중에는 흉노와 인접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키타이 문화’로 지칭된 유목문화권과 한반도는 동시대인 기원전 7-3세기의 유물을 본다면 아키나크식 단검과 닮은 마제석검을 제외하고는 유사점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스키타이 다음시대인 흉노시대의 유물은 대구 평리동에서 발굴된 청동제품과 철제프로펠러모양의 재갈멈치, 김해 대성동 29호 및 47호분의 동복, 양동리 162호분의 철복은 흉노의 전형적인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시대를 더 내려오면 스키타이 세계와 동일한 문화요소가 바로 신라의 적석목곽분이다. 천마총을 보면 거대한 규모의 봉분과 적석 아래에 목곽을 안치한 점이 카자흐스탄의 이식 쿠르간과 칠릭타 쿠르간, 그리고 알타이의 파지릭 쿠르간을 연상시킨다. 또한 부장품도 양쪽 모두 화려한 황금유물이 많은 점이다. 적석목곽분인 제5 파지릭 쿠르간에서 출토된 양탄자에는 신라의 왕관에 자주 보이는 것과 똑같은 곡옥을 매단 말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이식 쿠르간에 보이는 금으로 만든 나무와 그 위에 앉은 새의 모습은 한국의 出자형 왕관과 솟대를 동시에 연상시키기도 한다.
2012-04-23 16: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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