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우리의 힘
선거는 우리의 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3.01 18:17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영/소설가

내가 아직 어렸을 때는 선거를 나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어렸다고 해서 나이가 어렸던 건 아니다. 거의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는 의식이 살아났다. 그 전에는 그저 자연산 가재미처럼 납작 업드려 살던 자연인이었다. 의식이 살아났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마치 같은 사람이라도 깨닫으면 부처고 못 깨달으면 범부인 것처럼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 손해? 이익?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의식화 되고부터 물심 양면으로 부자가 되었다. 내 스스로의 인생을 장악하게 되었고 내 인생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스스로 막차인생이라 할 만큼 뭐든지 늦었다. 굵직한 일들만 뽑아도 대학을 가는 것도 늦었고 결혼을 하는 것도 늦었고 아이를 낳는 일도 늦었고 등단을 하는 것도 늦었다. 그러나 늦었다고 해서 손해본 건 그다지 없는 것 같다. 늦으나마 정신을 제대로 챙긴 덕분이었다. 얼마나 야무지게 의식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전후의 손익 계산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객관적으로 내 자신을 평가하면 나는 그다지 손익 계산에 야무진 사람이 아니다. 크게 양보해도 나는 보통의 사람이다. 어느 면에서는 아주 어리버리 하기도 하다.

내가 아직 의식화가 진행되기 전으로 둘째를 임신하고 겨우 3개월을 넘기는 때였다. 남편과 운영하던 학원을 말아먹고 역시 남편과 함께 집꼭을 하든 중에 충동적 사고로 임신을 한 것이었으니 앞이 캄캄 안 한 게 더 이상할 것이었다. 아기를 낳은들 무슨 수로 키우느냔 말이지. 부족한 사람들이 급하면 남에게 손벌리기는 잘한다. 나도 남에게 손벌릴 궁리밖에 다른 궁리가 없었다. 가장 나에게 잘해주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임신도 하고 학원도 접고…형편이 이러저러하니 돈 5십만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친구의 대답에 소름이 돋았다. “돈이 없는 건 아닌데 이제 그런 일에 얽히기 싫다” 친구의 대답이었다. 소름돋지 않은가! 나름 친한 친구라고 여겼는데 얽히기 싫다니, 나는 정말이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났다. 이토록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가 있구나.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되겠구나. 친구가 없구나. 사람이 변할 수도 있네. 이제 이 아이는 어떡하지? 지우자니 지울 돈도 없네? 빌어먹을, 책이라도 볼 일이지 심심하다고 거시기를 해서는 임신을 했지? 나는 구제불능인가? 진짜,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중에는 누구에게서라도 그 친구에게 빌리고 싶었던 돈을 빌리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시퍼렇게 살아났다. 얽히기 싫다는 친구 외에 또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더니 즉각 돈을 부쳐주었다. 어찌나 고맙든지, 어찌나 귀하든지. 이래저래 일단 등단하는 일에 매진했다. 친구의 돈을 무사히 갚아야 했다. 또한 글쓰기는 밑천없이 상금을 받을 수 있는 잇점이 있었다. 바로 그해에 천만원을 받고 지방신문으로 1차 등단을 하고 다음해엔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문예지로 재등단 했다. 물론 천만원 상금을 받아서 가장 먼저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았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몇 가지 중요한 결심을 하고 결의를 하게 되는데 이른바 의식화의 시작이었다. 먼저 나는 남에게 돈을 빌리지 않되 특히 나보다 열등한 사람에게서는 죽는 한이 있어도 돈을 빌리지 않는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누군가 급히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즉각 빌려줄 수 있는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다음이 필요한 돈은 내가, 내가 벌어서 쓴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도 좋다!! 남편, 너야말로 나를 도와주지 않아도 너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 새끼까지 내가 부족함 없이 키운다, 알아들어??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얼마나 강해지든지, 스스로 강해지는 기운이 팍팍, 느껴졌다. 돈? 그것도 어느 지점을 넘기면 곧잘 불어난다. 그리고 재미도 있다.

그러나 10년을 나부대도 장편소설 출간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어렵게 어렵게 출판사를 열었다. 이게 또 신의 한 수였다. 세상을 발칵 뒤집을(안 뒤집어지는 건 세상의 사정이고) 작품을 쓰고 내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건 내 맘이었다. 만약 어딘가 원고를 투고하고 당선이 되어 몇 천만원을 상금으로 받았으면 난 그걸로 소고기 국이나 끓여 먹고 끝이었을 것이다. 당선이 지연되는 바람에 나의 출판사를 열었다. 덕분에 아들은 이미 중3 때 책을 냈다. 무명 시인 남편의 시집도 내주려고 하다가 뭔가 껄쩍지근해서 그만 두었다. 출판비용을 전액 다 나보고 대래니, 내가 무슨 바보여? 웃자, 난 이제 잘 안 속지. 어쨌든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의식하고 장악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흔히 누구에겐 하루 24시간이 누구에겐 48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이 명백한 사실을 믿게 되었다. 시간을 배로 살기, 기가 막히는 일이다.

선거도 내 인생이다. 선거야말로 한 개인이 대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다. 단순히 선거만 해서도 안 된다. 선거를 통해 자기 자신이 원하는 대표가 선출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후보를 왜 원하는지 알려야 한다. 알리기조차 얼마나 편리해졌는가? SNS를 조금만 활용해도 내 소신을 충분히 밝힐 수 있다.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잘못하면 추상같이 꾸짖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대통령을 내가 뽑다니, 국회의원을 내가 뽑다니, 시장을, 시의원을… 어찌 신나는 일이 아닌가. 선거, 우리의 힘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