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이 걸어온 길
한명숙이 걸어온 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4.05 19: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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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 진주문화원 회원
 

한명숙(1945년생)은 1950년 다섯살때 6.25가 일어나자 평양에서 서울로 월남하여 불문학을 전공한 학도로서 시대의 아픔에는 어두운 당달봉사와 같았다.


인생이 바뀐 것은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한 남자를 알게되어 사랑에 빠짐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남편을 옥바라지하며 반독재 투쟁에 나섰고 자신도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절망에도 무릎을 꿇지 않은 건 여동생이 보내준 편지에 “매 맞는 것 죽는 것이 고통스러운 건 아니다. 나를 참으로 괴롭힌 것은 내가 감옥에서 핍박받는 동안 밖이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다” 고 했다 그의 자서전에 쓰여 있다. 한명숙이 그 이름은 한국 여성운동의 순정과도 같아 대한민국 민주화 이후 여성운동에 뛰어들어 가정폭력방지법, 성매매 특별법 호주제 폐지라는 개혁적으로 한국 여성의 오랜 숙원을 차례차례 일궈나갈 때 대열 맨 앞에 서 지휘했던 이가 한명숙이다.
따뜻한 미소 푸근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는 대모(代母)라는 수식어가 어울렸고 차별의 아픔으로 눈물 흘리는 여성들에게 한없이 너른 품이였다. 그가 여성부 환경부 장관에 이어 대한민국 최초의 총리로 임명(노무현 정부때) 됐을 때 자신의 승리인양 기뻐한 여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한 전총리가 불법 정치자금(9억) 수수 혐의로 2015년 서울 구치소에 수감 됐을 때 상복(喪服)을 입고 백합꽃을 들고 선 그가 배웅 나온 지지자들을 향해 “대한민국 사법 정의는 죽었다”고 외칠 때 가슴으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다. 대법관 전원이 유죄를 인정한 명백한 증거 앞에서 정치 탄압을 주장할 만큼 그의 양심과 정의감을 무너지게 한 건 무엇일까 모든걸 잃게 될까 두려웠을까.

억울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한 돈을 받고도 법망을 피한 정치인들이 한둘이 아닌데 왜 유독 자신에게만 가혹할까.

그러나 티끌만한 흠도 보여선 안되는게 최초 여성들이 감내해야 할 숙명이다. 여성에게 감투란 영광이기 전에 시험대이며 온갖 유혹을 물리치며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임을 정녕 몰랐을까 한 전총리는 정치인생의 가장 큰 버티목이고 조력자인 여성들에게 사과부터 했어햐 했다 그를 정계에 입문 시킨 비례대표 국회의원 여셩 할당제는 남성 정치인들과 사뭇 다른 청렴함과 실력으로 사회 약자들 목소리를 대변하라는 뜻에서 여성운동이 관철해낸 성취였다.

그 여성 몫으로 총리가 된 이가 바로 한명숙이였다. 여성이란 이유로 맹목적 지지만 했지 도덕적 해이를 모른체 했던 여성계도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한다.

정말 참담하다 한 손에 성경을 들고 구치소로 향하는 칠순의 “대모” 뒷 그림자가 암울했다. 사랑했던 민주당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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