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3박4일 데이트
엄마와의 3박4일 데이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5.01 18:3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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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인숙/진주보건대학교 간호학부 교수
 

우리 인생에서 가장 뭉클하고 따뜻한 말을 꼽으라면 ‘엄마’라는 단어일 것이다. 삶의 든든한 밑바탕으로 언제나 나를 지켜봐주고, 준비된 내 편인 사람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까.


나는 3녀 1남 중 장녀이다. 연달아 딸을 셋이나 낳은 엄마의 심적 스트레스를 어려서부터 봐왔고, 그 때는 몰랐지만 내 머릿속에 남겨진 어린 시절의 이미지들은 철이 들면서 하나씩 이해되었다. 막내 남동생이 태어났던 그 날은 잔칫날이었다. 그러나 셋째 여동생이 태어난 날은 적막감이 맴돌았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내가 8살 정도였을 때 병원에 계신 엄마를 보러 갔다가 내 키만큼 높은 침대에 혼자 쓸쓸하게 누워계셨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붙게 들었던 말은 ‘여자’로 살지 말고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었다. 엄마 시대에 겪어야했던 차별은 여자들에게서 교육을 비롯한 많은 기회를 박탈시켰다. 그래서 그 한을 우리 여형제들에게 풀고 싶었던 것 같다. 덕분에 우린 많은 기회를 받아 해외에서 공부하고 모두 전문인으로 살고 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이 일터와 집을 오가며 지냈다.

또한 어려서부터 우린 엄마의 계획아래 배낭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틈만 나면 짐을 꾸려서 버스를 갈아타고 다양한 곳을 다녔다. 엄마의 주된 목적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신속하게 적응하도록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섬으로, 산으로, 바다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텐트와 석유버너를 챙겨들고 다니면서 그야말로 ‘훈련’ 개념의 여행을 즐겨 다녔다. 강추위가 있던 겨울 서산 앞바다 모래사장에서 끓여 먹었던 조기찌개는 지금까지도 맛의 으뜸이라는 의견에 모두가 동의한다. 그 땐 식사, 잠자리 등을 엄마가 주도했고, 우린 보호 대상이었다.

이처럼 언제나 우리를 위해 이벤트를 제공하셨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었다. 그러다 올 봄 생신을 맞아 딸 셋이서 엄마와의 오붓한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엄마와 우리는 초등학생처럼 들떠서 어려서처럼 좋은 추억을 만들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 집을 떠나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이젠 엄마가 우리의 보호대상이 되었음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걸어서 여러 곳을 다니는 것이 거뜬했는데, 이제는 조금만 걸어도 지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자유롭지 못했다. 호텔조식 때에도 식판을 들고 다니다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엄마의 식성에 맞는 음식을 우리가 골라 챙겨드렸다. 다니면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은 젊은 시절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한 맺힌 내용들이었고, 그 이야기들을 또 반복하는 일도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업어서라도 같이 다닐 수 있는 능력이 되었는데, 어쩌면 그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애달픈 마음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강한 줄 알았는데, 어느 새 노쇠해 버린 엄마를 보며 시간의 무상함도 느꼈다. 자주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어 엄마 마음속에 맺혀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실컷 쏟아내서 속이 후련하도록 공감도 하고 위로도 드려야겠다. 엄마와 같이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해드렸다. 엄마가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최상의 것들을 해주셨는데 그 중 하나는 딸 삼형제를 낳아주신 것이라고. 엄마는 말없이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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