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 우리는 변했는가, 나는
세월호 이후 우리는 변했는가, 나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5.03 19:03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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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하루 종일 책 한 권을 읽었다. 오준호 선생님이 쓴 <세월호를 기록하다>가 그 책이다. 세월호의 침몰과 그 구조와 출항, 선원 등과 150일간의 세월호 재판 기록을 한 책이다. 우선 저자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책 제목 그대로 세월호에 관한한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세세하고 섬세하게 기록했다. 참으로 잘 절제되었지만 진실을 밝혀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우리 사회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 싶은 너무도 간절한 마음이 책 전부를 깊은 강물처럼 흐른다. 한번도 목소리를 높혀 강변하지 않는데도 저자의 간절함은 그토록 면면히 흐른다.


우왕좌왕하면 더 위험하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해놓고 그 위험의 가장 적나라한 위험인 죽음이 그들을 덮칠 때까지 가두어 두었을까. 위험을 핑계대고 죽도록 끽소리도 못하게 했을까? 나름대로 각자의 방법으로라도 살아나가라고 문이라도 열어주었어야지. 방송이 안 되면 메가폰으로, 그것도 없다면 육성으로 전달 할 수도 있었다. 시간은 충분하다, 질서를 지키면서 모두 배밖으로 나와라, 그냥 간단히 배 밖으로 나가, 라고 가능한 멀리 있는 사람에게 외치고 또 그 사람은 또 옆사람에게 전달전달 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갑갑하다. 선원들이 해경 경비정으로 올라타던 그 순간에라도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해경 경비정에 장착된 그 마이크로 구조배가 대기 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무조건 배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더라면. 그리고 실제로 나오는 사람들의 구조를 시작했더라면. 배 안의 사람들을 다 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6분 25초’라는데..... .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어떤 지시를 잘 따르게 된 것일까? 죽음이 덮치는 순간까지 그 시덥잖은 지시를 따라야 하게 되어버렸을까? 언제부터 누군가가 지시해주기만을 기다리게 버릇되었을까? 조금이라도 의아하고 납듣이 안 되는 지시를 조금이라도 의심해보고 지시를 당한 사람들끼리 서로 그 지시는 정당한가 부당한가 적절한가 부적절 한가를 서로 의논하지 못하게 버릇되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그런 것들을 교육이라고 부르게 됐을까? 책을 읽는 내내 뇌리 속으로 뱅뱅 도는 의문이었다. 우리는 교육받는 게 아니라 사육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책을 다 읽고는 자연히 우리는 세월호를 견디고 얼마나 진보했을까, 나는 내 생명에서 진정한 선을 생산하고 있는가, 그래서 내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라고 묻게 되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저렇게 촘촘한 무지와 이기성이 작용했고 그것으로 수백 명의 소중한 목숨이 졌다면 최소한 나라도 딱 부러지게 진보해야 덜 억울할 것 같기 때문이다. 사회란 결국 나, 나, 나..........들이 모여서 우리라는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가장 신속 정확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어떻게 변화해야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인가.

크고 작은 일에서 뭐만 잘못되기만 하면 원망하고 짜증내는 남편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도 하나의 진보이겠다. 돈을 잘 버나 못 버나 불쌍한 내 남편이다. 내가 가엾이 여기고 소중히 생각지 않으면 누가 그러겠는가.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에게는 더해서 책임을 다하는 버릇을 몸에 깃들이라고 훈육해야겠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으라고 충언을 하는 것도 진보이겠다. 위급한 상황일수록 위사람도 무서워하고 겁먹을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적극 강구하라고 충언해야겠다.

대기업체가 우리를 먹여살린다고 말하는 이웃에겐 예의를 잃지 않는 말투와 함께 행복해야겠다는 마음을 담아 그게 아니다, 우리가 대기업을 살찌우고 있다고 바로 얘기를 하는 것도 진보이겠다. 그렇더라도 이웃에게 말할 때는 너무 당당해서는 안 되겠다. 길을 가다가 아이들이 싸움을 하고 있으면 적극 개입해서 싸움을 말리자. 너무 혼내지는 말고 한쪽이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한쪽편만 들리는 말자. 나만 돈 많이 벌어 잘 살겠다고 바쁘게 돌아갈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함께 해보자고 돈 벌리는 일은 권해도 보자.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는 세월호 이후에 크게 변화를 창출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온 나라를 돈이 많은 사람들이 더욱 더 돈을 잘 버는 쪽으로 몰고 가던 거대 여당을 얼마쯤 주춤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여소야대'를 선거로 창출했다. 선거 결과가 난 신문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믿기지 않았다. 돈과 권력을 움켜쥔 사람들의 지시에 주눅이 들대로 들어있던 내 의식이 여소야대의 사실을 인정이 안 되던 것이다. 지금도 불가사의다. 그간에 얼마나 지는데 습관이 되었으면 이렇게 사실을 받아들이기조차 힘들것인가. 그래도 다행이고 기분이 좋네.

이번 국회의원 당선자 중에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했고 앞으로도 노력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당선자도 있다고 들었다. 서로의 마음을 믿고 의지해서 진실이 밝혀져서 더 살기좋은 세상쪽으로 다가가고 싶은 열망으로 세월호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인형옷을 입고 인형탈을 쓰고 선거 운동으로 춤도 추면서 그 당선자의 당선을 도왔다는 얘기를 들으며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낮이면 더웠을 텐데 얼마나 더웠을까, 춤을 추고 있지만 웃고 있는 인형탈 속의 진짜 눈에선 피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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