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와 쪽빛바다 비경속 공룡나라 고성
다도해와 쪽빛바다 비경속 공룡나라 고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2.0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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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공룡발자국화석산출지 군 전역 폭넓게 분포

▲ 당항포관광지 내의 공룡엑스포 행사장.

고성읍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려 도착한 상족암은 울퉁불퉁하고 깎아지른 듯한 층암단애로 된 해안절벽이다. 절벽 아래에는 다양한 크기의 해식동굴이 숭숭 뚫려 있어 바다에서 보면 거대한 밥상다리 모양 같다. ‘상족암(床足岩)’이라는 지명은 여기에서 나왔다. 현지 주민들은 발자국이 여럿 있다고 해서 ‘쌍족암(雙足岩)’이라고도 하고, 그냥 ‘쌍발이’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소을비포 서쪽 15리 지점에 돌기둥 네 개가 있으며 바위가 평상 같다. 조수가 밀려오면 물이 그 밑을 지나간다”고 적혀 있다.

 
▲ 상족암군립공원내 건립된 국내최초 공룡박물관.
수억 년 세월 간직한 ‘천연 자연사박물관’

상족암 해식동굴은 오랜 세월 파도에 의해 변화무쌍하고 기묘하게 뚫려 있다. 아득한 옛날에 천상의 선녀들이 이곳에 내려와 돌베틀로 옥황상제에게 바칠 금옷(錦衣)을 짰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입구가 바다와 맞닿은 동굴의 내부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목욕했다는 웅덩이도 있다. 바닷가 절벽은 돌책(石冊)을 켜켜이 쌓아놓은 듯해 전북 부안 채석강을 연상케 한다. 그 앞에는 수백 명이 한꺼번에 앉아 쉴 수 있는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다. 상족암이 유명세를 탄 것은 공룡발자국 때문이다. 상족암 주변의 평평한 갯바위에는 수백 개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지름 30㎝ 내외의 크기로 일정한 간격과 형태를 띠고 있다. 상족암 위 언덕에는 웅장한 모습의 공룡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공룡 전신 골격 진품과 복제품, 익룡 전신 골격, 부조 화석, 일반 화석, 야외 전시품 등 수백 점이 전시돼 있다.
 

▲ 조선 성종때 이황의 제자였던 허천수가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어 풍류를 즐기던 마아면 장산숲.
당항만 푸른 물결에 승전소리 드높아

고성읍에서 마산 방면으로 20여 분 달리면 회화면 당항포관광지에 닿는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1592년과 1594년 두 차례에 걸쳐 왜선 56척을 전멸시킨 대첩지이다. 특히 아군의 인적 피해는 전혀 없었던 세계해군 전사에서 전무후무한 완승의 기록을 세웠다. 1984년 고성 주민들의 합심으로 전승기념탑, 사당(숭충사), 기념관, 공원 등 당항포국민관광지를 조성했다. 뾰족한 전승기념탑 중앙에는 거북선이 있고 양쪽에는 창을 든 수군들이 늠름하게 서 있다. 해전관에는 당시 해전 상황이 모형으로 재현돼 있다. 해전관이 있는 언덕의 아래쪽엔 이순신 장군의 투구를 본떠 만든 충무공 디오라마관이 자리한다. 또 ‘거북선 체험관’에서는 함포 쏘기, 노 젓기, 키 조정을 체험해볼 수 있다.
당항포에는 승전고 외에도 ‘기생 월이’의 전설이 내려온다. 무학동의 무기정 기생 월이가 임진왜란 직전에 조선의 지리를 정탐하러 온 첩자를 술에 취하게 만든 뒤, 그가 그린 그림을 변개시켜 이순신 장군으로 하여금 승첩의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내용이다. 그 뒤 승첩을 거둔 당항포 앞바다를 왜군이 속았다 하여 ‘속싯개’라 불러오고 있다. 이밖에도 왜적의 머리가 썰물에 포구로 밀려와 ‘두호’(頭湖), 왜적이 도망간 길목이라 ‘도망개’, 골짜기가 피로 물들었다 하여 ‘핏골’, 그리고 왜병들을 잡았다고 ‘잡안개’라고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해전관광지보다는 공룡엑스포로 더 각광받고 있다. 3년마다 실시하는 공룡엑스포의 경우 올해 고성군민 수보다 30배나 많은 17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성공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들판과 산, 바다와 섬이 한눈에

고성IC에서 읍내로 들어서기 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동쪽 들판 너머로 삼각뿔처럼 우뚝 솟은 거류산(巨流山·570.5m)이 있다. 소가야 마지막 왕의 피신처였다는 거류산성이 있는 이 산은 소가야 때는 태조산, 조선시대에는 거이산이라 했고, 조선 말에는 거류산이라 불렀다. 거류산 명칭에는 전설이 전한다. 저녁 무렵 밥을 짓던 처녀가 커다란 산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부지깽이를 두드리며 “저기 산이 걸어간다”라고 세 번을 외쳤더니 산이 그 자리에 멈췄다고 해서 ‘걸어산’이라 부르다가 ‘거류산’으로 바뀌었단다.
산행의 들머리는 거류면사무소 위 당동마을. 민가 사이의 고샅길을 빠져나와 산자락에 들어서면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정상까지 2.8㎞. 완만한 산길을 오르다 보면 당동만과 당항만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바위에 이른다. 이후 암릉과 직벽에 가까운 급경사를 오르면 거북바위가 웅장한 태를 드러낸다. 여기에서 정상까지는 10분 거리. 정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여 주변을 조망하기에 거침이 없다. 산정에는 성터만 남아 있고 아무리 가물어도 자연수가 솟아나는 샘이 있다. 당동마을 반대편 등산로 입구에는 2007년 10월에 개관한 엄홍길전시관이 있다. 고성 출신인 엄홍길씨는 한국인 최초로 8000m급 14좌 완등을 한 사람이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04년 얄룽캉, 2007년 로체샤르 등 그동안 위성봉으로 여겨졌던 산 두 개를 더 올라 ‘16좌 완등’이라는 새 기록을 만들었다. 전시관에는 엄씨가 등정했던 히말라야 8000m 고봉의 사진과 텐트, 산소마스크 등 원정 당시 사용했던 각종 장비가 전시돼 있다.
 

▲ 상족암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의 발자국과 선녀탕, 촛대바위, 병풍바위가 다도해와 어우러져 절경을 더한다.
‘명경지수’를 품고 자리한 조용한 사찰

고성은 거의 모든 산마다 사찰과 암자가 자리 잡고 있다. 고성군 관광지도에 표시된 것만 30여 개에 이른다. 이 중에 옥천사(玉泉寺)와 문수암(文殊庵)이 가장 대표적이다. 대전-통영고속도로 연화산IC를 빠져나와 1000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연화산(蓮花山·528m) 자락의 옥천사에 닿는다. 절은 자유롭게 그늘 드리운 나무숲 사이에 웅크리고 있다. 천천히 걷는 고적한 숲길의 끝은 자방루(滋芳樓)이다. 크기와 형태에서 대웅전은 물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비천상, 비룡상, 산수화, 새 그림 등 단청을 이용한 장식이 사치스러울 만큼 화려하다. 자방루 뒤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의 다포계 양식의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일반 대웅전과 비슷하나, 마주보고 있는 자방루나 적묵당의 크기에 비하면 초라하리만큼 작은 편이다. 앞마당의 뜰(中庭)도 자방루에 비해 훨씬 작고 부속 건물에 둘러싸여 답답한 느낌을 준다. 옥천사에는 유독 작은 규모의 전각이 많다. 겨우 한 명이 들어가 앉을 만한 크기로 독성각(獨聖閣), 산령각(山靈閣), 칠성각(七星閣), 옥천각(玉泉閣) 등이 있다.
옥천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절의 이름은 대웅전 좌측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달고 맛있는 ‘샘(玉泉)’이 있어 이렇게 불리게 됐다. 전설에 의하면 이 샘에서 매일 공양미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한 스님이 더 많은 공양미를 얻기 위해 바위를 깨뜨리는 바람에 공양미와 옥수가 중단됐다. 노스님의 기원에 힘입어 다시 옥수가 솟아나고 옥천에 연꽃 한 송이가 피면서 신통한 약효가 있었다. 그 후부터 중병을 가진 많은 환자들이 몰려와 이 샘에서 목욕까지 해 옥수의 영험이 다소 떨어졌다고 한다.

▲ 하일면 학동마을은 전주 최씨 안렴사공파 의 집성촌이다.
다도해 굽어보고 사찰을 우러르다

상리면 무이산(武夷山·548.5m) 높은 자락에 매달려 있는 문수암은 널리 알려져 있는 절이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 한번 와본 사람이라면 그 풍광에 우선 반한다. 대웅전 앞으로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고 높고 낮은 산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문수암은 신라 신문왕 8년(688)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의상대사가 구도행각 중 걸인으로 화현한 문수, 보현 두 보살의 인도를 받아 청량산에 올랐다. 걸인들은 돌연 자신들의 집이 문수단이 있는 석벽 사이라고 가리키고 홀연히 사라졌다. 의상대사는 그 신비한 체험과 빼어난 절경에 반해 문수암을 창건했다고 한다. 실제로 법당 우측 옆을 돌아가면 바위 밑에 흰색 페인트로 칠한 발자국 모양이 있다. 여기서 문수단을 올려다보면 문수보살이 암각으로 새겨져 있다. 하지만 믿음이 깊은 사람만 볼 수 있다고 한다. 문수암에서 다도해 방향으로 내려다보이는 약사전에는 동양 최대의 금불상이 자리 잡고 있다. 다도해가 아닌 산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바깥에서는 약사전 지붕 뒤로 머리만 보인다. 약사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좌불상을 마주할 수 있다. 좌불상 맞은편의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있으며 다도해의 풍광이 끝없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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