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영암사 무지개 한자락은 아직도 빛난다
찬란했던 영암사 무지개 한자락은 아직도 빛난다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1.05.2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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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합천영암사지

▲ 우리나라에만 있는 쌍사자석등과 아치형 돌계단
찬란했던 영암사 무지개 한자락은 아직도 빛난다

영암사지 금당지 오르는 무지개 계단

계단을 하나의 화강암 이용해 통째로 만들어
불자들 조심스럽고 경건한 마음 가질 수 있게
계단 오르면 발뒤꿈치는 허공에 떠 있게 제작


몇해 전 유홍준교수(명지대)가 문화재청장을 역임하던 때, 진주를 찾은 적이 있다.
시간이 제법 흘러 당시에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유교수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잘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영암사지를 예로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면서 합천 황매산 자락 영암사지에 있는 쌍사자 석등과 금당지(址)에 에둘러 있는 미려한 조각품들에 대한 찬탄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된다.
특히 폐사된 영암사지 금당지에 오르는 비스듬한 계단에 대해 의미를 담아 설명했다. “계단은 조각조각 제작해 짜 맞춘 것이 아니라 하나의 화강암을 이용해 통째로 계단을 만들었는데 사부대중들이 이 계단을 통해 올라가게 되면 발바닥의 전면만 닿고 뒤꿈치는 허공에 떠 있게 된다”고 했다.
이어 “이는 본존불을 만나기 위해 오르는 사부대중들이 그만큼 조심스럽고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제작한 아주 특별하고 기막힌 것이다”고 강조했었다. 그리고 유교수는 이 화강암으로 만든 통계단 혹은 돌다리에 대해 ‘무지개를 옮겨 놓은 것 같다’라고 표현했었다.
이후 유교수는 공직을 떠나면서 ‘나의문화유산 답사기 5’가 나온 지 10년 만에 ‘답사기 6’ 을 펴냈다. 첫 표지에는 황매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영암사지의 쌍사자석등을 메인사진으로 채택했다.
올해 5월 출간된 ‘답사기 6’에는 영암사지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했는데 당시‘무지개’라고 표현했던 화강암 계단에 대해서도 특별한 애정을 붙여 기술해 놓았다.
대략 정리하면 "토목과 교수 한 사람이 물어오기를 다른 문화재는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하면서 영암사 멋진 돌다리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갔느냐”고 하더라는 것. “그러면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겠냐”고 되물었더니 그 교수에게서 돌아온 대답. "싸인(sine)12도!" 라고 하더라고.

▲영암사지는 황매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폐사지이다.
현재 문화재청 주관으로 매장문화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유홍준교수가 문화재청장 재직 시 체계적인 발굴 의지를 밝혔던 결과물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었다.
가람의 흥망성쇠는 아니더라도 영암사의 쇠락해 가는 모습은 지켜봤을 600년 된 늙은 느티나무가 영암사 주차장 앞에 서 있다.
▲구전(口傳)에 영암사라는 절이 있었다. 실체는 없고 위치마저도 어딘지 확인되지 않았으며 확인할만한 자료도 별로 없었다.
중국 진시황릉 병마용갱처럼, 잉카문명의 마추픽추처럼, 뱃사람들의 입으로만 전해지면서 상상에서만 존재했던 우리나라 최남단의 이어도처럼,
영암사가 그랬다. 폐사된 뒤 아주 오랜 세월 땅 밑에 침묵해 있다가 드디어 1959년 세상 빛을 봤다.
당시 출토된 유물들이  8세기 것의 특징을 보이면서 천년의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거의 유일한 기록이라면 ‘적연국사자광지탑비명’의 한 구절에 있는 내용이 영암사의 실체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것도 탁본첩 만이 전해지는 기록이다. “스님의 간곡한 청을 받은 왕은 스님을 가수현 영암사에 편안히 머물도록 했다.
가수현(嘉壽縣)은 지금의 합천군에 있던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행정구역명. 영암사가 있는 삼가면과 가회면 일대로 추정된다.
이로써 마을 주민들의 입으로만 전해지던 절(이름이)이 실체를 드러내 수 백년만에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외 절터에서 수습된 갖가지 유물들의 특징으로 미뤄봐서 영암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져 적어도 고려 후기까지는 남아 있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특히 폐사지 임에도 불구하고 화강암으로 만든 조각품 ‘쌍사자 석등’ ‘3층석탑’ ‘무지개계단’ 금당지의 ‘가릉빈가’돋을새김 한 자유로운 동물들, 가람 배치형태 등에서 가장 화려하고 찬란했던 시절의 포스(Force)를 지금까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먼저 전체적으로는 영암사의 차경(借景-경치를 빌려옴)이 걸작이다. 부석사의 차경이 앞에 펼쳐져 있는 백두대간이라면 천년고찰 영암사는 뒤로 펼쳐지는 황매산, 거기서도 화강암의 산세가 화려한 모산재였다.
다음은 가람배치형태, 3단으로 추정되며 각 단마다 석축이 있다.
1단은 가장 아래 중문지에서 회랑지로 이어지는 석축과 2단은 쌍사자 석등이 세워져 있는 석축, 그리고 금당지를 형성하는 낮은 석축이 3단으로 구성돼 있다.
△1단은 아래쪽 높은 석축, 석굴암 본존불 머리 위에 있는 쐐기돌 형태의 툭 튀어나온 돌이 보인다. 넓지 않은 곳에 사찰을 건립하면서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긴 장대석을 박아 놓은 것이다. 토성을 쌓을 때 튼튼한 나무를 곳곳에 박은 이치와 비슷하다.
별 생각 없이 본 것인데 아직까지 형태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의 건축가나 사학자들이 눈여겨 본 이유를 알만하다.
△2단 격인 금당지 앞 쌍사자석등이 세워져 있는 석축이 압권이다.
금당 앞에 좌우로 길고 높은 석축을 쌓았는데 정중앙 석등이 있는 곳만 앞으로 돌출돼 있다.
결국 석등의 배치를 위해 축대를 앞으로 내쌓은 설계로 보이는데, 이는  금당 전체를 넓게 하는 수고를 더는 실용과 함께 금당과 석등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효과를 낸다. 물론 쌍사자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우월하게 하는 효과는 두말할 나위가 없는 기발한 발상이다.
그렇다면 이 석등은 어떤 존재이기에 이런 특별대우를 받았을까.
유교수에 의하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없는 통일신라 석공의 창작품이라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 법주사와 중흥산성에 있는 쌍사자 석등 2개는 모두 국보로 등록돼 있을 정도.
두 마리의 사자가 가슴과 발을 맞대고 화사석을 들고 있는 형태인데 뒷발을 살짝 든 역동적인 모습이다. 유교수는 두 사자 사이의 뻥 뚫린 공간에 주목하고 이를 서양 근대조각사 9세기 것보다 빠른 ‘공허공간’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앞으로 튀어나온 축대 양옆으로 금당에 오르는 돌계단은 유교수가 눈여겨 본 대목이다.
통으로 된 돌을 무지개처럼 밖으로 휘어지게 6계단을 파낸 뒤 밑에 받침대를 놓고 사다리처럼 걸쳤다. 디딤돌을 파낸 좁디좁은 계단에 숨은 뜻은 단 한사람씩 조심스럽게 경건한 마음으로 올라가시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직선 일색인 석축에 곡선을 넣어 변화를 꾀한 발상은 설계에 있어 현대의 디자인 철학과도 연결시킬 수 있는 탁월한 것이다.
답사여행 길잡이 ‘돌베게’의 표현에는 이를 두고 “아마도 무지개다리가 이보다 더 컸다면 모양새가 넘데데하여 보기도 싫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도드라진 축대나 그 위에 자리한 석등과 어울리며 연출해내는 군더더기 없는 상승효과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덜거나 보탤 것 없는 기막힌 석축이요 돌계단이다.”라고 했다.
마지막 3단은 본존불을 안치했던 금당지의 낮은 석축. 이곳은 차라리 조각 전시장이라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4면을 빙 에둘러 새긴 동물 조각에는 얼굴은 개, 얼굴을 덮은 털은 사자로 새겼는데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사실감이 예사가 아니다.
계단 양옆으로는 극락조인 가릉빈가를 새겨놓았다.
특히 금당지 불상을 모셨던 지대석에 새긴 미니어처 형식의 아주 작은 팔부중상을 보면 손이 오그라들 정도다.
이름 없는 신라 석공, 조각가의 여유와 해학 자유로움, 상상력이 천재적이다. 어떤 이는  ‘돌로 이룬 이상향’이라고 까지 했다.
이 외에도 인근의 조사당지 동서 돌 거북은 비명을 잃은 채 앉아 있다.
영암사지 곳곳에 숨어 있는 조각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치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감동적이다.
영암사지는 일반 사찰과 약간 다른 면이 있다고 한다. 금당 중앙 돌출부의 좌우 계단 , 4면에 있는 돋을새김 동물상, 서남쪽 건물 터의 기단 좌우 계단 등이 특이하다. 이런 특징들로 인해 색 다른 느낌을 주는데 신라 말 성행한 밀교의 수법으로 건립된 도량이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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