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주년)사천의 찬란한 문화유산 보물(寶物)
(창간 6주년)사천의 찬란한 문화유산 보물(寶物)
  • 사천/구경회기자
  • 승인 2016.11.03 18:29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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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의 유구한 역사 흐름 증명한다

▲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산48-2번지에 소재한 매향비 전경
사천의 유구한 역사 흐름을 증명하는 문화재는 총 50개이며, 이중 국가지정이 7개로 보물 2개(매향비, 조선왕조의궤), 천연기념물 2개(성내리 비자나무, 아두섬 공룡화석 산지), 사적지 1곳(늑도 유적), 무형문화재 2개(가산오광대, 진주삼천포농악)가 있다. 특히 사천의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2개의 보물(寶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매향비 비문
◆보물제614호 ‘사천 흥사리 매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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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7 고려 우왕 13년에 세워져
고려시대 복을 빌기 위해
바다에 향목을 묻고 그 내력 기록
자연석으로 총 204자 비문
글자와 행이 일정하지 않아 
예스러움 담겨 있어
당시 지방 글씨체 좋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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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산48-2번지에 소재한 매향비는 1978년 3월 8일 보물(기록유산)로 지정되었으며, 고려시대 복을 빌기 위해 바다에 향목을 묻고 그 내력을 기록한 규모 783㎡의 비석이다.

 매향이란 원래 중국에서 일찍이 미인을 매장한다는 뜻으로 쓰이던 용어로 물에 넣으면 가라앉는 나무를 강이나 바닷가에 묻으면서 복을 비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를 매향(埋香) 또는 침향(沈香)이라 부르고 이 의식을 행하는 과정과 시기, 관련 집단 등을 기록한 비를 매향비라 한다.

1977년 6월에 발견된 비는 거의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총 204자의 비문을 새겨 놓았는데, 표면의 굴곡이 심하고 글자 크기가 같지 않으며, 글자 수 또한 각 행마다 같지 않다. 다만 글자체에 예스러움이 담겨 있어 당시 지방의 글씨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판독된 내용에 따르면 고려 후기 왜구의 발호가 극심하여 나라의 운명마저 불안해지는 등 사회가 혼란하던 때에 불교 승려들을 중심으로 4100여명이 계(契)를 조직하여 왕의 만수무강, 나라의 부강, 백성의 평안 등을 기원하기 위해 이곳에서 매향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 매향비 탁본
비문은 승려 달공이 짓고, 수안이 글을 썼으며, 김용이 서각을 새긴 것으로 고려 우왕 13년(1387)에 세워졌다. 건립목적과 세운 연대가 확실한 비로 우리나라의 옛 민속을 알려주고 고려 후기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이다.

매향의식과 관련된 비석으로 1335년 세워진 침향석각(沈香石刻)이 평안북도 정주(定州)에 남아 있으나 내용이 전혀 없다. 따라서 매향비의 건립목적과 건립연대가 확실한 이 비석의 가치는 아주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 사천시 곤명면에 은사리에 소재한 세종대왕태실지 모습
◆보물제1901-4호 ‘조선왕조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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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의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
세종대왕·단종대왕 태실수개의궤
3건 3책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 
특히 세종대왕태실석난간수개의궤
현존 ‘조선왕조의궤’ 가장 오래되어 
 자료 학술적 가치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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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3일 사천시청에 보관 중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4호 ‘조선왕조의궤’(서명 ‘세종대왕·단종대왕 태실수개의궤’) 3건 3책이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 ‘세종대왕단종대왕태실표석수립시의궤’ 기록
‘세종대왕·단종대왕 태실수개의궤’는 곤명면 은사리에 있는 세종대왕 태실(경상남도 기념물 제30호)과 단종대왕 태실(경상남도 기념물 제31호)을 수리한 과정을 기록한 태실관련 의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더불어 기록물과 실제 태실을 비교 분석할 수 있어 조선시대 왕실의 장태문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써 평가되고 있다.

‘태실수개의궤’는 임진왜란때 훼손된 태실을 수리한 사실을 기록한 의궤로 ▲세종대왕태실석난간수개의궤(1601년) ▲세종대왕단종대왕태실수개의궤(1730년) ▲세종대왕단종대왕태실표석수립시의궤(1734년) 등 총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상용이지만 유일본이며 완질본으로 가치가 있다.

특히 선조 34년(1601) 3월에 작성된 ‘세종대왕태실석난간수개의궤’는 현존하는 ‘조선왕조의궤’ 중 가장 오래된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의궤(儀軌)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라는 뜻으로 ‘국가전례의 따라야할 기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대표적인 국가기록물이다. 또한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조선만의 독특한 전통으로서 예법을 중시하고 기록을 철저히 보존하려는 조선시대의 우수한 기록문화 중 하나로서 국가지정문화재의 가치가 충분하다.

▲ ‘세종대왕단종대왕태실표석수립시의궤’ 그림
한편 송도근 사천시장은 “역사에 빛나는 국가지정 문화유산인 보물을 후손에게 잘 보존하여 물려 줄 수 있도록 보호 및 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사천시는 타 지자체에서 보기 드문 2개의 보물을 가진 지역의 위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신성장동력인 첨단항공우주산업과 매력 있는 해양관광산업이 조화된 역동적인 도시로 힘차게 뻗어 나가고 있다.

참고로 ‘조선왕조의궤’는 제작 방식에 따라 필사본과 활자본으로 구분할 수 있고, 열람자에 따라 어람용(御覽用)과 분상용(分上用)으로 나누어진다. 사천/구경회기자

▲ 세종대왕태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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