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노자 특강(2)
아침을열며-노자 특강(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3.15 18:2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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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노자 특강(2)


지난번에 이어 노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려 한다.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고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은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무는 천지의 시작을 이름함이며 유는 만물의 어미를 이름함이다. 고로 진정한 무는 그로써 그 묘함을 보고자 함이며 진정한 유는 그로써 그 밝음[또렷함/깨끗이 나뉨]을 보고자 함이다. 이 양자는 같이 나와서 이름을 달리한다. 이를 같이 일컬어 그윽함이라 한다. 그윽함의 또 그윽함이 뭇 묘함의 문이다.

이 제1장에서 노자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무’와 ‘유’이다. 그것도 그 이름의 한계 저 너머에 있는 진정한 무, 진정한 유이다. 무? 유? 없음과 있음? 이거 만만치 않다. 이미 앞서 지적했듯이 이것을 ‘무명’ ‘유명’으로 끊어 읽으면 완전히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전체 문맥을 보면 이 장의 주제는 명명백백히 ‘무와 유’다. 바로 뒤에서 ‘상무’와 ‘상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존재론 내지 형이상학인 셈이다.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사실 저 서양철학과도 그 맥이 닿는다. 물론 직접적인 연관은 전혀 없다. 하지만 정말 흥미롭게도 노자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약 2500년 전에) 저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가 이와 똑같은 것을 그의 입에 올리고 있다. {자연에 관하여}라는 철학시를 보면 그는 신비로운 마차여행 끝에 여신을 만나고 그녀로부터 ‘둥글디둥근 진리의 흔들림 없는 마음’을 듣게 된다. 그 내용이 바로 “있다는 것, 무가 아니라는 것”(he men hopos estin, te kai ouk esti me einai) 그리고 “없다는 것, 반드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he d’hos ouk estin, te kai kreon esti me einai)…등이었다. 그의 이 언급 이후 ‘존재’와 ‘무’라는 것은 서양철학의 특히 형이상학의 주제 중의 주제가 되었다. 현대의 하이데거도 사르트르도 이 주제를 계승했다. 하이데거는 ‘존재’라는 단어 하나를 100권이 넘는 책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존재와 시간}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도 했다. 그런 엄청난 주제다.

바로 그 주제를 노자가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가 처음이었다. 처음 보고 처음 말하는 것이었다. 가르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그 표현이 궁색하고 어려울밖에.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무’ ‘유’라 이름했고, 이 양자를 함께 일컬어 ‘현’이라고도 이름한 것이다. (이런 어려움의 토로는 노자의 다른 곳에서도 등장한다. ‘도’라는 표현과 관련해서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을 말하고픈 것일까. 하나씩 그의 생각을 추적해보자.

아마도 엄청난 사유 뒤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는 무에 대해 ‘천지지시’ 즉 천지의 시작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무가 천지의 시작을 일컫는 이름이다? 이건 무슨 말일까. 이 말을 별 설명도 의견도 없이 넘어간다면 그건 노자를 제대로 안 게 아니다. ‘무, 명 천지지시’라는 이 말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무’라고 하는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이고 그것을 천지라는 것과 결부 혹은 대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무는 천지 자체는 아니고 그리고 그것과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다는 말이다. 시작이라는 말은 적어도 무가 천지와 맞닿아 있음을 알려준다. 천지란 하늘과 땅이니까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세계다. 아니 좀 더 정확한 한국어로는 세상이다. ‘세상 천지에 그런 일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그 세상천지다. 그 세상의 시작이 바로 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은 곧 유의 영역이다. 무가 바로 그 유 즉 세상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시작?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어떤 점에서 무가 유의, 즉 세상의 시작이 되는 걸까? (그리고 왜 무가 유보다 먼저 언급되는 걸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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